어려서 들은 이야기다. 아마 한 번 했을 것이다.
어느 집에 나그네가 잠시 멈물게 되었는데, 그런데 가난한 집에 주인이 다리를 떠는 것이었다. 다리를 떨면 복이 달아난다... 그래서 가난한 것은 집주인의 다리떠는 버릇 때문이라 나그네는 집주인의 다리를 잘라버리고는 그대로 도망치고 말았다.
시간이 흘렀다. 나그네가 다시 그 집을 찾으니, 웬걸? 집이 고대광실 기와집이 되어 떵떵더리고 사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생각했다.
"이게 다 내가 집주인의 다리를 잘라주어 이렇게 된 것이구나."
여기서 문제, 나그네가 집주인 앞에 나타나 저따위 소리를 지껄이면 어떻게 될까.
정당한 비판이란 그 사안에 대한 것만을 말한다. 그 이상 들어가서도 안되고 그 이상 옆으로 퍼져서도 안 된다. 오로지 그 한 가지에 대해 상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담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난이다. 그리고 비난은 들을 가치가 없다.
비난은 오히려 자기를 상처입힌다. 자기를 상처입힐 뿐만 아니라 움츠려들게 만들고 주눅들게 만든다. 물러서게 만든다. 당장의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아지더라도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자신을 해치고 만다. 맹자가 말한 자포자기라는 것이다. 자포자기한 인간은 더 이상 발전이 없다.
부모가 야단을 친다고 아이가 더 잘 되는가. 부모의 가혹한 야단으로 평생을 열등감에 찌들어 주눅들어 살고, 마침내 그것이 한이 되어 부모를 죽이는 자식의 이야기를 많이들 보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이 잘하라 매를 들었더니만 아예 학교를 뛰쳐나가 안 돌아오더라...
그런 건 차라리 안 듣느니만 못하다. 아니 안 듣는게 낫다. 더 나아질 것 없이 아예 안 듣고 무시하는 쪽이 훨씬 장래를 위해서도 좋다. 그런 건 그냥 독이니까. 복 달아나는 것 막자고 다리를 자를까.
도대체 왜 그런 앞에 대고 사정하는지 모르겠다. 왜 그런 앞에 대고 양해를 구하는지 모르겠다. 상처를 입히겠다는 악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앞에, 정당한 비판이라? 그런 비판은 상관없다?
왜들 그렇게 비굴한 것일까. 비난은 비난이다. 비난은 결코 비판이 될 수 없다. 인격적인 부분, 자존에 대한 부분에 대고 공격하는 것이 어찌 비판일까. 그것을 기꺼이 들어주어야 하는가.
하여튼 부모부터가 그러니까. 선생들이 그러고. 직장에서 그러고. 선배들도 그러고. 하여튼 오만 곳에서. 그래서 익숙해진 것이다. 인격따위는 아무 소용없다. 자존따위는 아무 상관 없다. 짐승이다.
가끔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그런 사람들이다. 차라리 악하고 당당한 사람은 그냥 보아넘긴다. 그러나 착한데 비굴하면 이건 정말... 더구나 남의 일에 대해서.
비난은 그냥 비난이다. 인신공격은 그냥 인신공격이다. 그것은 거꾸로 비판받아야지 양해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언제나 마찬가지다. 그런 짓거리 하는 놈들이 그냥 쓰레기다. 쓰레기는 대개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안티는 그냥 안티다. 안티가 어느 순간 팬으로 돌아서리라 믿는 것일까. 안티는 안티인 것에 존재의미를 찾는 사람들이다. 욕하고 비난하고 그로써 우월감을 챙기는. 쓰레기다.
참 오지랖들도 넓달까. 불쌍하기도 하다. 참으로. 내가 이상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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