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 잊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이들의 사랑법

까칠부 2020. 4. 24. 06:23

너무 고통스러운데도 잊을 수 없는 사람과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억할 수 없었던 사람이 만난다. 같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면서도 공유하지 못한다. 한 사람은 일방적으로 잊었고 한 사람만이 일방적으로 기억한다. 너무 사랑했는데 과연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솔직히 중간에 스토커와 관련한 스릴러파트는 좀 지겨웠었다. 클리셰 덩어리라 새로울 것도 없고 그런 만큼 흥미도 생기지 않고 도대체 이런 걸 왜 넣었을까. 결국 뻔한 설정과 구성으로 조기에 마무리지은 이유가 있었다. 과정이었다. 단계였다. 즉 잊을 수 없기에 기억하면서도 극복하기 위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더욱 자신이 잊을 수 없는 이유를 최소한 하나는 지울 수 있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최소한 이번에는 그 사람을 스토커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잊지도 못하면서 새롭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인가. 여전히 바로 조금 전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사람 위에 새로운 사랑을 덧씌울 수 있는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범인도, 그를 오랜동안 지켜봐 온 주치의도, 어쩌면 자기 자신까지도. 그래도 좋은 것인가. 여전히 죽은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새롭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도 죽은 이의 오랜 친구와. 그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또 하나 사랑하는 사람과.

 

얼핏 바보같고 피동적으로 보이지만 여하진은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그로 인해 상처입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잊어야 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한 걸음 씩 서로에게 다가가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만큼 자신의 감정까지 깨닫게 된다. 설정만 흥미로울 뿐 대단할 것 없는 로맨스의 왕도를 걷는 드라마다. 그래서 더욱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을지도. 초반만큼의 힘은 없다. 과연 여하진이 고통스런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나서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이 만나 그들은 과연 기억을 넘어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굳은 약속은 어떤 절정의 반전을 예감케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천정명이 요즘 MBC와 궁합이 잘 맞는다. 그동안 천정명이 주연으로 나온 드라마 가운데 재미있게 본 것이 전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는데 조장풍 이후로 이번 드라마까지 꽤 흥미를 가지고 보게 된다. MBC드라마치고도 제법 잘 나온 편이기도 하다. 요즘 공중파 드라마가 볼 게 별로 없다. 격세지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