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 어느새 다시 아이처럼, 대수롭지 않고 대단치도 않은

까칠부 2020. 5. 16. 16:54

분명 그들은 어른이다. 특히 레지던트들에게 그들은 교수이며, 의사로서도 인생에 있어서도 한참 선배다. 환자들을 대할 때도 나이와 상관없이 그동안 겪어 온 환자들 만큼 능숙한 여유를 보여준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있을 때 그들은 철없고 세상모르던 그 시절로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바로 시간을 공유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병원이라는 공간은 그동안 드라마 등을 통해 질리도록 보아 왔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벌써 20년 째 친구관계를 이어 오는 다섯 중년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미 자기 분야에서 이룰 만큼 이뤘고, 주위로부터도 인정과 존경을 받는 그들이 그러나 자신들끼리 있을 때는 아직 미숙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같은 얼굴로 진지하게 장난도 치고, 심각하게 농담도 하며, 아무렇지 않게 욕도 하고 치고받는 모습들이 한 편으로 부럽고 한 편으로 그립다.

 

하긴 대부분 오랜 친구들이란 그런 의미일 것이다. 만나봐야 하잘 것 없고, 이야기해봐야 별 볼 일 없다. 대수롭지 않고 대단치도 않은 이야기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래서 만난다. 대수롭고 대단한 이야기들은 그렇지 않아도 할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벌써 교수소리까지 듣는데 누가 밥 빨리 먹는다고 주문까지 외게 하며 타박을 주겠는가. 아무렇지 않게 자기를 불러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관계란 또 가족 말고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이익준의 고백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채송화의 반응도 신중하다. 이제와서 사소한 감정으로 깨뜨리기엔 너무 고맙고 소중한 사이 아니던가.

 

오히려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들로 때로 웃고 때로 울고 때로 긴장하며 때로 설레게 만드는 감각이 탁월하다. 내 주위 어딘가에 있을 것처럼. 어쩌면 노래가사처럼 내가 미처 모르고 지나쳐 온 소중한 비밀처럼. 그래서 그들은 사랑하고 사랑하며 사랑할 수 있다. 무심코 나이를 잊은 듯한 유치한 비난과 욕설이 그래서 그립고 정겹기만 하다.

 

과연 나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을까? 과연 우리는 그런 관계가 되어 있을까? 그만큼 소중하고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당연한 이야기들로 남아 있을까? 그래도 사랑했으면 좋겠다.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장겨울과 추민하와 그리고 김준완과 이익준, 설레는 그들처럼. 평범한이야기다. 그래서 소중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