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넘어져 머리가 깨졌다. 원래는 바닥에 깔판을 깔아두는데 하필 냄새난다고 세탁기에 넣어 돌리는 사이 목욕한다고 들어갔다가 그 사단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바닥에 물기가 있는 위에 젖은 발로 불안하게 딛으니 바로 주욱. 문턱에 타일은 왜 그리 날카롭게 붙여 놓은 것인지.
그래도 별 문제 없었다. 머리가 크게 찢어지기는 했는데 뉴스에 흔히 나오는 뒤로 넘어져서 어떻게 되었더라 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었다. 당연한 것이 머리가 부딪힌 순간 통증을 느끼며 바로 일어났고, 욕조의 물이 아직 한참 빠지고 있는 와중에 샤워기로 머리를 씻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단 기절은 없었다. 그리고 수건으로 머리를 지혈하며 멀쩡히 걸어서 20분 거리의 외과의원까지 찾아갔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흔들림 같은 건 없었고, 막 운동 마치고 목욕한 뒤라 배가 고픈 것 말고는 구토나 오심도 전혀 느끼지지 않았다. 뇌에는 이상이 없다.
결론은 그동안 열심히 운동해서 승모근 단련한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격투기 선수들의 목 주위로 승모근이 불쑥 솟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머리에 정면으로 타격기를 맞아도 바로 이 승모근이 목을 지탱하며 그 충격을 모두 흡수해준다. 일단 먼저 팔꿈치가 문턱을 찍으며 속도를 줄였고, 그 사이 승모근이 긴장하며 충돌하는 충격을 흡수했다. 도대체 언 놈이 승모근 빼는 운동 같은 걸 만드는 것인가? 이리 중요한 게 승모근일 텐데.
일단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와 관련해서 역시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근육이 승모근이란 것이다. 승모근이란 자체가 목에서 시작해서 등 아래까지 넓게 붙어 있는 근육이다. 목과 어깨와 등을 모두 연결해주는 근육인 것이다. 삼각근 운동을 한다고 열심히 레이즈해도 승모근은 쓰이고, 광배근 키운다고 열심히 로우를 하면 역시 승모근이 함께 큰다. 스쿼트는 바벨을 승모근에 얹는 것이고, 데드리프트는 승모근이 견갑을 잡아 바벨을 당겨 버티며 일어난다. 참고로 승모근 성장에 가장 좋은 운동 가운데 하나가 데드리프트다. 데드리프트 자세에서 등만 움직이면 바로 로우가 되고, 자세 그대로 상체를 세워 움직여 주면 승모근 운동인 슈러그가 된다. 과연 프리웨이트 가운데 승모근이 쓰이지 않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그런데 이 승모근이 목을 지탱하고 움직이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예 목이 돌아가지 않으면 견갑거근, 돌아가다 어느 지점에서 막히면 승모근은 많이들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덕분에 팔꿈치 깨지고 목이 뻣뻣한 가운데 머리속까지는 충격이 없고 가죽만 좀 심하게 찢어지고 말았다. 마취도 않고 깨진 머리 보더니 바로 스태플러로 찝어서는 CT 찍으러 보낸다. 봉합이고 뭐고 그냥 스태플러 찝은 상태에서 약이나 꾸준히 발라주란다. 불행 중 다행. 앞으로 조심해야지.
그리고 또 하나 다치기는 어제 다쳤는데 치료는 오늘 받은 이유가 아주 더렵다. 외과의원에서 여기서는 안된다고 큰 병원 응급실에 가보라 진료의뢰서를 써줬는데 정작 가까운 큰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없단다. 간호사가 기본적인 처치는 해 줄 수 있는데 의사가 없어서 검사도 봉합도 안된단다. 그래서 날이 밝아 외래로 가렸더니 그마저도 또 없다. 40분 걸려 버스타고 가서 겨우 치료받고 돌아왔다. 빌어먹을. 의사에는 두 종류의 의사가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 의사. 근데 후자는 형용모순이지? 그런데도 의사새끼들이다.
운동해야 하는 또 하나 이유일 것이다. 근육이 있으면 다치더라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지난 3년 간 넘어지거나 접질린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은 그만큼 다리에 힘이 붙으며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머리가 깨지는 상황에서도 더 큰 부상을 막을 수 있었다. 운동하자. 난 참 운동빨이 잘 받는 체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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