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조용필 - 비련...

까칠부 2010. 3. 22.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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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 - 조용필

비 련

기도하는 사랑의 손길로 떨리는 그대를 안고
포옹하는 가슴과 가슴이 전하는 사랑의 손길
돌고도는 계절의 바람속에서  이별하는 시련의 돌을 던지네
아 눈물은 두뺨에 흐르고 그대의 입술을 깨무네
용서하오 밀리는 파도를 물새에게 물어 보리라
물어 보리라  몰아치는 비바람을 철새에게 물어 보리라
기도하는 사랑의 손길로 떨리는 그대를 안고
포옹하는 가슴과 가슴이 전하는 사랑의 손길
돌고도는 계절의 바람속에서 이별하는 시련의 돌을 던지네
아 눈물은 두뺨에 흐르고 그대의 입술을 깨무네
용서하오 밀리는 파도를 물새에게 물어 보리라
물어 보리라 몰아치는 비바람을 철새에게 물어 보리라
돌고도는 계절의 바람속에서 이별하는 시련의 돌을 던지네
아 눈물은 두뺨에 흐르고 그대의 입술을 깨무네
용서하오 밀리는 파도를 물새에게 물어 보리라
물어 보리라 몰아치는 비바람을 철새에게 물어 보리라

가사 출처 : Daum뮤직

 

 

아, 이 노래를 생각 못했었다. 이 노래에는 숨겨진 가사가 한 마디 더 있다. 처음 시작할 때,

 

"기도하는~~"

 

하면 이어지는,

 

"꺄아아악~~~!!"

 

생각났다. 목소리 말고도 내가 조용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 바로 아이돌이었다.

 

아마 잘 와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조용필도 아이돌이었다. 아니 아이돌의 원조였다.

 

남자아이돌의 여성팬을 일컫는 빠순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오빠부대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오빠부대의 원조가 조용필이었다.

 

오죽하면 사회문제까지 되어 있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어린이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에서 조용필의 집 근처에 잠복하며 한 번 만나기를 바라는 여자아이의 모습은 요즘 말하는 사생팬과 닮아 있었다. 그 오빠부대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저 "비련"의 첫마디,

 

"기도하는~~!"

"꺄아아악~~!"

 

아마 부활의 김태원이 네버엔딩스토리를 부를 때, "부활 짱!"을 외친 것도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당시는 아이돌이라 하지 않고 우상이라고 했다. 아이돌을 그대로 번역하면 우상이 된다. 젊은이의 우상, 10대의 우상, 가수에만 한정되지 않아서 배우 가운데서도 우상이 존재했다. 하희라, 채시라, 이상아가 또 또래 사내아이들에게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책받침과 연습장과 사진과 브로마이드들.

 

다만 차이라면 지금은 기획사에 의해 아이돌로서 기획되고 생산된 상품을 두고 아이돌이라 한다면 당시의 아이돌이란 원래의 아이돌의 의미에 더 가까웠다.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찬탄받는 스타. 즉 감탄의 대상이 되고 동경의 대상이 되고 경애의 대상이 되는 스타를 뜻하는 것이었다. 비틀스도 아이돌이고, 엘비스 프레슬리도 아이돌이고, 마이클 잭슨도 아이돌이었다. 이 가운데 10대가 추구하는 아이돌이 틴아이돌.

 

지금의 아이돌이라 하면 사실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라 할 테고, 그것도 본격적으로 일본식 아이돌이 소개되기 전까지 우상이란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아이돌에 더 가까웠다. 이미 기존의 음악인이거나 배우인 스타가 있고, 그에 대한 열광적인 추종자들이 있어 떠받들려지는. 그 1호가 조용필이었고, 그 뒤를 잇는 것이 아마 전영록이었다. 전영록의 별명이 그래서 영원한 오빠였었다.

 

당시 조용필이 아마 서른을 넘겼을 것이다. 가만있자... 분명 서른을 넘겼었다. 그러나 그래도 10대 소녀들에게 조용필은 오빠였다. 거의 아빠연배였음에도 국민학교 다니는 여자아이들에게도 조용필은 오빠였가. 그에게는 그만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의 노래에는, 그의 음악에는 당시의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었다.

 

문제는 나같은 허세덩어리들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목소리도 마음에 안 드는데 여자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하니 어쩐지 고깝게 보이더라는 것. 그래서 전영록이며 박남정이며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서태지도 2집의 "하여가"를 듣고서야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가 사는 세계는 원래 다르다. 당시 내 지론이었다.

 

아마 당시 조용필을 오빠라 부르며 쫓아다니던 여자아이들도 벌써 아이엄마가 되고 또 나이가 많은 또래에서는 손주를 볼 나이가 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때 그렇게도 쟤들 커서 뭐가 되려 그러느냐고 혀를 차고 했었지만 다들 자라 자기 할 몫 찾아 잘 살고 있다. 그럴 것이다.

 

일과성도 아니었다. 조용필은 물론 전영록은 모르겠지만 이승철도 당시 오빠팬들이 그대로 나이를 먹어 여전히 팬으로 남아 있다. 나이를 먹어서도, 그래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가 있고 체면이 있고도 팬은 여전히 팬인 것이다. 철없는 여자아이들의 한때 불장난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깊은 경의였던 것. 동경이란 인간이 가진 가장 강하며 고귀한 감정이다.

 

하긴 HOT는 어떨까. 젝스키스는. 서태지와 아이들은. 신화는. GOD는. 그들도 팬이 있었다. 오빠부대는 그들에 이르러 빠순이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 빠순이들은 지금 어쩌고 뭐하고 살고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동방신기 팬클럽에 대해 HOT 팬클럽 출신들이 점잖게 충고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

 

그러나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마주 그리 말해준다.

 

"너희들도 그때 다 그랬거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는 거다. 누군가는 새로운 아이돌을 찾고, 누군가는 아이돌을 잊고 현실의 삶에 충실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자신의 아이돌을 쫓아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그러면서 나이를 먹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일상은 또 다른 시간으로 그렇게 흘러간다. 누가 뭐랄 것 없이. 아마 그 가운데는 아이돌 팬클럽 활동에 여념이 없는 딸이나 아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이는 학부모도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이번 조용필 환갑이라고 신문광고 낸 것도 조용필 팬클럽이라 했었지. 지금이야 삼촌팬이라고 말이 돌고 있지만 그 삼촌팬보다 한참 연배인 팬들도 그 안에는 적지 않으리라. 그들은 벌써 그렇게나 시간을 자신들의 아이돌과 보내고 있는 것이니.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

 

하여튼 그래서 덕분에 나는 조용필의 "비련"을 둘로 나누어 기억한다. 처음의 "기도하는"에서 "꺄악~!"은 따로, 그 뒤의 "아 눈물은 두뺨에 흐르고 그대의 입술을 깨무네"부터는 또 따로. 도저히 둘이 하나로 이어지지가 않아서. 그 뒤로도 한참을 두 부분을 한 데 이어 듣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듣고 있는데 문득 "꺄악~!"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아니 들려야 할 것만 같다. 그래야 "비련"이라는 노래라.

 

가사는 참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비련이라는 말 그대로 헤어짐을 간직한 연인의 마지막 만남을 담담하고도 아름답게 그 깊은 슬픔을 묘사하고 있다. 멜로디도 아름답고, 사운드는 더욱... 그야말로 70년대, 80년대, 사랑함에도 사연을 간직하고 헤어져야 하는 비련의 남녀를 그린듯이 묘사하고 있는 가사에 멜로디라. 어디 주제가였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유장하고 장엄하며 그래서 더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 유독 이 노래에서만큼은 조용필의 목소리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대신 그 "꺄악~!"에 대한 거부감만이.

 

아무튼 그래서 이 노래여야 했다. 조용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조용필이란 어떤 존재였던가. 조용필이란 어떤 의미였던가. 조용필의 노래 한 마디에 저절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던 기때 그 여자아이들을 통해서. 그녀들의 순수한 감동과 동경을 통해서. 따로 팬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디어가 지금처럼 발달하기도 전, 순수하게 그의 음악에 이끌려 그를 오빠로 불렀던 그 순수들을 통해서. 누구처럼 꽃미남도 아니고, 몸짱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능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연 당시의 소녀들은 무엇에 이끌렸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조용필이라.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이돌이었다. 그 시대의 우상이었다. 설사 그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마저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랬기에 차마 무시하지조차 못하고 그를 미워했었다. 가장 대중적이기에 가장 저평가된 음악인이라... 나도 그런 저평가하던 한 사람이었으니까. 너무 어렸던 것이다.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듣기엔. 음악은 단순히 멜로디와 보컬만이 아닌 것을.

 

어쩌면 지금 유행하는 아이돌 가운데 조용필과 같은 이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 10년 뒤, 20년 뒤, 아니 50년 뒤, 여전히 오빠부대를 거느리고 나와 같이 지난 날을 회상하는 이들에 의해 새삼스레 이야기될지도 모르겠다. 아이돌이라는 것이 어느새 쇼비즈니스의 인형이 되어 버린 지금, 그러나 그런 가운데 진정 아이돌이라 할만한 사람이 있을지도. 내가 그리 무시하고 있는 누군가 가운데서도.

 

그러고 보면 이제 나도 아이돌을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하고 그네들의 무대를 좋아하고 그네들 자체를 좋아한다. 물론 의미는 다르다. 동경이라기보다는 - 아니 동경이다. 돌아오지 못할 시절들에 대한 동경. 그네들이 갖고 있는 시간에 대한 동경이다. 나로서는 감히 가지지 못할. 반짝반짝 빛나는 그 활기찬 시간들이.

 

누구나 같지 않을까. 시대가 다르고 이유가 다를 뿐 결국은 같은 것일 게다. 사랑할 수밖에 없기에 사랑하는 것. 좋아할 수밖에 없기에 좋아하는 것. 이유는 단지 나중에 사족처럼 붙을 뿐이다. 설사 10년 뒤 그가 누군지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잊혀지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지금인 것을. 그것이 영원이기를 바라며 꿈꿀 수 있으면 좋을 것을. 그리고 그 시절 가장 빛나던 존재가 조용필이었던 것이고. 그는 지금도 가장 큰 빛이다.

 

지금도 음악을 듣는데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조용필이 "기도하는~"을 외치고, 거의 동시에 "꺄악~!"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음악은 흐르고 기억도 흐르고 시간은 흘러간다. 그런 가운데 음악만은 홀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모든 것들을.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조용필을 오빠라 부르며 자지러지던 계집아이들과, 그런 계집아이들을 비웃으며 허세를 부리던 어린 나와,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들과, 음악들과, 그 철모르던 시간들을,

 

여전히 조용필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그와 함께하는 지금의 시간들이 좋다. 그의 음악들이. 그 기억들이. 이야기들이. 나와 그 시간의 무수한 누군가의.

 

밤은 깊고 시간은 흐르고 단지 다른 시간 속 다른 사람들에 의해. 시간은 음악으로 기억된다.

 

 

덧, 확실히 늙었다. 글 동시에 세 개 쓰려니 머리에 쥐 내린다. 한 번에 하나씩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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