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빈센조 - 빈센조의 악의가 장한석을 이긴 이유

까칠부 2021. 4. 26. 06:42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공포야 말로 가장 순수하다.

 

인간을 행동하게 만드는 두 가지 감정인 것이다. 바로 증오와 공포다. 미움과 두려움이야 말로 인간을 다시 원초의 존재로 돌려놓는 근원의 감정인 것이다.

 

그 공포를 지배한다. 그 공포를 통해 타인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장한석이 빈센조를 이길 수 없는 이유다. 장한석이 이복동생인 장한서와 최명희, 한승혁 등은 물론 검찰의 요인인 남부지검장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이 가진 공포가 그들이 가진 혐오와 증오의 감정을 억눌렀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에서 동료 검사가 살해당하는데도 분노하기보다 자기가 살기 위해 굴복하고 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공포가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로지 공포가 아닌 이익과 목표를 공유해 온 최명희만이 빈센조의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여전히 장한석의 주변을 지키고 있다.

 

더구나 빈센조의 공포는 장한석과 같이 무차별적이지 않다. 옛말에 바보가 되더라도 미친 놈은 되지 말라는 이유인 것이다. 예상할 수 없는 공포는 오히려 반발을 불러오기 쉽다. 역대 수많은 폭군들이 자신이 불러일으킨 공포로 인해 가장 가까운 측근을 반역자로 돌변케 만든 이유였었다. 최소한 그 공포가 자신을 향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지 그 방법을 자신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공범이 될 수 있다. 공포란 오히려 자신의 더 큰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포가 언제 자신을 향하게 될 지 모른다. 뭘 어떻게 해야 자신이 공포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 지 확신이 없다. 어떻게 되겠는가?

 

장한서가 차라리 빈센조에게 친형과 같은 친근감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빈센조의 공포는 대상을 가린다. 그 공포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로울 수 있을 지 방법도 분명하다. 그러니까 차라리 대응이 가능한 빈센조 쪽이 장한석보다는 덜 위험하다. 장한석보다 더 위험하면서도 덜 위험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한승혁이 아무렇지 않게 장한석을 배신하고 빈센조와의 협상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그 전에 장한석보다 더 큰 권력인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에 줄을 대며 다른 선택을 하고 있었다. 고작 그 정도인 것이다. 이제는 장한석이 자신을 위협하는 공포를 피해 구치소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빈센조가 지배하는 공포의 정체다.

 

적이 바뀌었다. 한승혁의 변심으로 싸움의 상대가 차기 유력 대권후보로 바뀌고 말았다. 지하실의 정체를 알고 있다. 어떻게 지하실의 문을 열지 방법까지 알아냈다. 아마 빈센조를 이탈리아로 데려가려 찾아 온 마피아 조직원은 그를 위해 준비한 계획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호랑이를 산으로부터 끌어내어 위험으로 제 발로 걸어들어가게 만든다. 이탈리아로 돌아가면 파울로의 조직원들의 손아귀에서 살아날 방법이 없다. 이탈리아 내부사정을 고작 루카라는 이름의 조직원으로부터 전해들었을 뿐 아니던가. 지하실에 금이 모두 사라졌고 빈센조가 이탈리아로 떠나지 않고 돌아온 모든 것이 그런 계획들과 관계가 있지 않겠는가. 조사장이 빈센조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나, 난약사 스님들이 빈센조에게 묻고 난 뒤 탁발을 자주 다닌 사정들도 그를 위한 복선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거대한 정치권력과 맞서게 된다. 아마도 언론까지 장악한 유력 대선후보가 장한석과 함께 빈센조와 마지막 싸움을 치르게 될 것이다. 어차피 2회 남았을 뿐이라 빈센조의 승리를 아예 의심도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더 시원하게 더 후련하게 더 확실하게 승리를 거두고 악을 응징할 수 있을 것인가.

 

악이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가. 이정재 같은 깡패들을 죄다 감옥에 보내고 끝내 교수대에 세웠던 것은 그보다 더 악랄한 군사반란군들이었다. 사회의 악일 깡패들이 그보다 더한 악인 권력의 개가 되어 정치깡패로 전락하기도 한다. 재벌이 미쳐 날뛰어봐야 권력자의 발 아래 있고, 그때그때 정권의 선택에 따라 경찰과 검찰과 국정원과 기무사가 서로 물고 물리며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다. 차라리 악이 악을 상대하는데 더 나은 이유다. 선하고 정의로우면 그런 악들에 대해서까지 관용을 베풀다 도리어 당하고 만다. 법과 언론마저 장악한 저들을 상대로 정도를 지킨다는 게 무슨 의미이겠는가.

 

분노의 크기인 것이다. 원수라 해서 죽어도 마땅한 것인가. 부모를 죽인 원수지만 그 목숨까지 빼앗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법이 용서해도 내가 용서하지 못한다. 세상이 다 괜찮다고 해도 내가 괜찮지 못하다. 그래서 사적 복수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수의 죽음까지 받아들일 정도로 자신은 부모의 죽음에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 홍차영의 반응이 흥미롭다. 혹시나 다른 반전을 위한 복선은 아닌가. 아니면 이대로 홍차영도 빈센조의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인가.

 

악은 악으로. 악이 차라리 악을 상대하는데 더 유용한 이유다. 검찰이 저 악을 응징할까? 검찰이 저 악을 단죄할까? 언론이 고발하여 여론으로 만들어줄까? 오로지 빈센조 뿐이다. 빈센조의 악의 뿐인 것이다. 적나라한 현실이 그래서 한 편으로 후련하면서도 답답하다. 마피아 따위가 외칠 정의가 나이었을 텐데.

 

마지막 싸움이다. 마지막 적의다. 빈센조의 승리는 당연하다. 일주일의 기다림이 더 답답하다. 2주를 기다린 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