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하승남과 유세옥, 그리고 백무결, 무협의 이유

까칠부 2021. 8. 17. 05:44

솔직히 나는 만화가 하승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승남보다는 황재와 이재학이 내 취향에 더 가까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하승남의 무협은 일본 사무라이물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초기 하승남의 작품들을 보면 일본 사무라이물의 변주에 가까웠었다. 사마모토 료마의 일화라거나, 혹은 츄신구라의 전설이라거나, 아니면 잔잔바라바라물의 영향이라거나. 하지만 그럼에도 하승남만의 강점이 있었으니 바로 고증이었었다.

 

80년대 무협작가 가운데 일본도가 아닌 중국검을 그대로 묘사해 그리는 작가는 하승남 정도가 전부였었다. 이재학도 양인철도 정작 주인공들이 쓰는 무기는 일본도의 변주였었다. 덕분에 지금도 많은 무협에서 일본도와 중국검과 서양검을 혼동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하승남의 작풍이 바뀌게 된 계기... 솔직히 20년 전까지는 알았지만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다.  오랜 옛날만화들을 쌓아 둔 변두리 만화방을 통해 겨우 알게 된 지식인 때문이다. 그때 글을 썼어야 했는데 다른 이유로 미처 쓰지 못했었다. 대신 그 결과 하승남 무협의 작풍이 바뀌게 되었다.

 

하승남 무협에서 가장 중요한 두 주인공 캐릭터 유세옥과 백무결의 유래인 것이다. 유세옥이야 말할 것 없이 김용의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방세옥이었을 것이다. 홍화회를 이끌고 반청복명을 행하던 방세옥에서 성만 바꾼 것이 하승남의 주인공 유세옥의 유래인 것이다. 그리고 고룡의 무협 가운데 '절대쌍교'에 등장하는 화무결이 백무결의 모델이 되고 있었다. 때로 적이고 때로 강력한 아군이 되는 캐릭터다.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방세옥은 김용이고 화무결은 고룡이다. 한국무협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두 작가인 것이다.

 

최근 고룡의 '절대쌍교'를 중국드라마로 다시 보는 중이다. 곤륜의 풍광을 감상한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무협의 관점에서 보는 곤륜의 풍광이란 무협 마니아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하승남이란 이름이 새삼 떠오른 이유다. 그리 하승남을 무시하더니 하승남의 원화를 보고 감복하여 그를 추종하던 얼치기가 있었다. 일본 만화가 최고다. 한국 무협만화가 그에 못지 않다. 내가 끌고가서 보여 준 것이다. 하승남의 필력이 이 정도다.

 

다시 하승남의 만화들을 정주행하고 싶어지는 이유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고등학교 시절 만화방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구간들을 통해 나 역시 하승남의 무협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황재와 천제황과 하승남은 전혀 다르다. 같은 무협만화를 그리더라도 그 뿌리가 전혀 다른 작가들이다. 어째서 유세옥이었을까? 어째서 백무결이었던 것일까? 중국이란 대륙을 배경으로 한 무협들이 환상을 현실로 끌어내린다. 아름다운 이유다. 무협을 사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