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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 내가 유명인의 군대문제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유

까칠부 2021. 9. 7. 03:26

아마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연예인의 병역문제로 말들이 나왔을 때 그리 말한 적이 있었다. 굳이 명백한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그럴만한 사유가 있어 그를 이용해서 병역을 회피하는 것은 문제삼지 않겠다. 이유는 간단했다. 군대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지랄같고 좆같은 곳이니까.

 

군대가 존재하는 한 어디서나 이른바 똥군기란 존재해 왔었다. 단지 시대와 사회와 문화와 가치의 차이에 따라 그 정도와 형태를 달리해 왔을 뿐이었다. 사람이 셋만 모이면 그 안에서 위계가 생겨나고, 위계가 생겨나면 그를 과시할 대상을 찾게 된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떠벌이는 미국에서는 똥군기가 없었을까? 괜히 베트남전쟁 당시 병사들이 하극상을 일삼았던 게 아니었다. 불과 1990년에도 병영내 부조리를 다룬 '어 퓨 굿맨'이란 영화가 제작되어 크게 히트한 바 있었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떨까? 

 

죽음을 벗삼아 가장 위험한 전장에 서야 하는 이들이란 것이다. 한순간에 삶과 죽음이 갈리고, 자신의 선택이 아닌 이유로 다치고 죽는 일이 일상으로 일어난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런 전장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타인을 몰아넣으려면 그만한 동인이 필요한 것이다. 이익이거나 아니면 공포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혹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목숨을 건 전장으로 스스로 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공포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었다. 여전히 최저임금의 절반도 받지 못하는 대한민국 군대가 과연 얼마나 대단한 이익을 미끼로 젊은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전장으로 향하게 할 수 있는가.

 

더구나 어차피 돈 있고 힘 있고 빽 있으면 이리저리 빠질 구멍도 많은 약자에게만 더 촘촘한 그물이기도 한 것이다. 옆집 누구는 정치인 아들이라 빠지고, 같은 학교 다니는 누구는 재벌을 친척으로 두고 있어서 편한 보직을 받았고, 그런데 자신은 아무것도 없어서 현역으로 입대해야 했었다. 그런 자괴감과 열등감이 계급이라는 알량한 권위와 만나고 군이라고 하는 경직된 위계 아래 놓이게 된다. 아무도 책임지려 않고 책임지울 사람도 없는 그 속에서 과연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그마저도 결국은 인간이란 존재의 나약한 본성이기도 한 것이다. 씨발 다 좆같은데 내가 더 좆같다고 뭐 그리 대수로울 게 있겠는가.

 

진짜 좆도 아닌 알량한 우월감인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체력이 좋고, 조금 더 군대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자신을 위해 이용할 수도 있었다. 그래봐야 군대 제대하면 편의점에서 알바하며 점장에게 야단이나 맞는 신세란 것이다. 군대 제대하고 나면 어디 내세울 것 하나 없이 어디서 빌빌대며 사는 이 사회의 수많은 청춘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군대의 위계가 주는 달콤함에 취할 수밖에 없다. 명분까지 좋다. 군이란 조직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쭉정이는 제대로 바로잡거나 걸러내야만 한다. 그런 사명감이 자신의 행동까지 정당화시킨다.

 

그냥 군대따위 아무렇게나 돌아가든. 그래서 내가 안준호의 행동에 그리 분노했던 것이었다. 군대 좆같은 건 좆같은 건데 그렇다고 자신의 바로 맞선임의, 그것도 자기에게 호의를 보이던 이의 사정까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짓밟을 정도였는가 하는 것이다. 하긴 어렸을 테니까. 그래봐야 20대 초반이다. 그때야 세상 다 산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핏덩이 시절인 것이다. 그래서 더 어설프다. 어설퍼서 제대로 판단조차 하기 힘들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깊이 고민할 여유조차 없다.

 

인간은 악한 것인가? 약한 것인가? 그렇게 좆같던 군대 선임들도 제대하고 보니 대부분 멀쩡한 인간들이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좋은 아들이고, 친구고, 연인이었다.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고 숨어서 우는 꼬라지야 그놈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에는 그들이 바로 내 위치에서 그들의 선임들에게 나와 같이 당하곤 했을 것이다. 그렇게 군대라는 조직에 길들여지며 익숙해지며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군대 가면 사람 된다는 말의 진짜 이유인 것이다. 이재명 지사가 좋은 말을 했다. 자기가 공장 다니던 시절 공장도 비슷했었다. 야근한다면 하는 것이다. 철야한다면 하는 것이다. 추가수당 안나와도 주말에 나오라면 나와서 일해야 하는 것이다. 지하철이 바쁘게 오가는데 혼자서 자동문을 수리하고, 롤러가 사납게 돌아가는데 혼자서 그것을 살펴봐야 한다. 그래도 한 마디 반항조차 못한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산다. 쥐어주는대로 받으며 시키는대로 일해야 한다. 어째서 아직 어린 20대 청년들까지도 노동자가 더 많은 급여와 더 높은 대우를 받고 일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가. 고용이 보장되고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에 오히려 불공정하다며 분노를 드러내는가. 군대에는 사람이 없다. 인간이 없다. 마찬가지로 현장에도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 인간이 있어서는 안된다.

 

인간은 단지 대상이다. 수단이다. 병사들을 대하는 장교들의 태도에서 그런 인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자기의 필요를 위해 얼마든지 병사를 사살할 수 있다. 병사의 사정을 이용할 수 있다. 인신을 수단화할 수 있다. 그런 곳이 군대고, 그런 곳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재 사회다. 구조다. 그래서 여전히 젊은 남성들은 군대에 가야 하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사람이 된 젊은 남성들은 당연하게 인간을 대상화 수단화하는 사고에 익숙해진다. 오히려 그런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군대의 기억마저 희미해지는 30대 이후일 것이다.

 

그다지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안준호의 겉넘는 행위가 나를 분노케 만들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이다. 서로를 대상으로 수단으로 여기며 이용하는 수라장이. 아귀든 수라든 지옥이 아닌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인간의 본능에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공간이 군대라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가 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바꾸려 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다.

 

그야말로 우연히 보았다. 추천목록에 있길래 어디서 새로 시작한 드라마인가? 그래서 짧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다운 6회 분량의 짧은 내용이었다. 들어갈 것은 다 들어가 있었다. 역시 군대는 갈 곳이 못된다. 사유가 충분하다면, 충분하게 만들 수 있다면 역시 빠지는 것이 옳다. 전쟁이 악인 이유다. 군대란 존재 자체가 악이다. 인간이 악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