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노인 오일남은 진짜 가난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돈이 너무 많은 사람과 돈이 너무 없는 사람의 공통점이 무얼까? 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너무 돈이 많아서,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가져 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돈의 가치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쉽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돈에 대해 무감각하다 보니 돈을 어떻게 모으고 불려야 하는가 하는 최소한의 감각조차 없다. 바로 내가 그렇다.
성기훈이 456억이라는 상금을 받고서도 1년 넘게 한 푼도 쓰지 않았던 이유였다. 어차피 그 돈 없어도 사는데는 지장없다. 조금만 더 비참해지면 그깟 돈따위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서 한 번 쓰기 시작하니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여기저기 잘도 쓰고 다닌다. 약속했으니 강새벽의 동생도 챙겨주고, 그래도 한동네에서 살았던 인연으로 조상우의 어머니에게 거액을 건네기도 한다. 그야말로 딱 내 신세다. 돈 10원이 아까워 별 짓을 다하면서도 정작 쓰기 시작하면 잔고가 바닥나는줄도 모른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그보다는 그냥 적당한 삶을 기대하게 된다. 아마 그 적당한 삶이 내가 돈에 욕심을 부리게 될 기점일 것이다.
드라마는 평이했다. 그냥 데스게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주제도 고만했고, 설정도 고만했고, 다만 게임의 내용만이 흥미로웠다. 오래전 즐겨 놀던 놀이들이 데스게임의 소재로 등장하는 신선함이랄까? 첫게임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그럭저럭 괜찮았었지만 이후 등장하는 게임들이 하나같이 기대이하였었다. 뭐였더라? 일단 뽑기에서 침바르면 아웃이었다. 하긴 침바르기가 아니면 우산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다른 뽑기는 뽑기 하나 더 얻어먹는 정도지만 우산만은 예외였었다. 현금으로 천 원이었었다. 짜장면이 500원이던 시절에 무려 천 원을 상금으로 내걸었던 것이엇다. 그만큼 성공확률도 낮았다. 별도 그리 어려웠는데 하물며 우산이야. 물론 난이도를 생각하는 게임은 아니었을 것이다.
줄다리기는 그냥저냥했었고 구슬치기는 말 그대로 최악이었었다. 구슬로 할 수 있는 게임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홀짝인가. 그리고 그런 홀짝을 보면서 과연 돈을 댄 vip들은 어떤 재미를 느꼈었을까? 그보다는 장덕수가 하던 구멍이 넣기나, 강새벽과 지영이 했던 금에 가까이 맞추기가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구멍에 넣기는 아마 삼각형에 넣기를 변형한 듯한데 차라리 그 쪽이 전략성도 있고 여러 변수를 통한 흥미도 유발할 수 있다. 그냥 짝을 이룰 정도로 친밀하던 사람들끼리 서로 속이고 배신하는 추악한 군상의 모습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라면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일 수는 있다. 덕분에 군상의 모습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또한 같은 이유로 게임 자체는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다리건너기는 심지어 그 이상이었었다.
기대했었다. 다리의 모습에서 어려서 즐겼던 땅따먹기의 재현을. 우리동네에서는 땅따먹기라 불렀는데 다른 동네서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다리 모양으로 땅바닥에 모양을 그리고 깨끔발로 그곳을 통과한 뒤 돌을 던져 자기 영역을 만든다. 자기 영역에서는 두 발로 쉬어갈 수 있지만 남의 영역에서는 깨끔발도 못하고 건너뛰어 가야만 한다. 가위바위보와 주사위를 사용한다면 얼마든지 전략적으로 상대의 이동을 제한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 있다. 그야말로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오마주였을 것이다. 오일남이 어릴 적 즐기던 게임을 응용했다면서 이 게임에서만큼은 오히려 그보다는 '카이지'의 게임을 그대로 응용하고 있었다. 마지막 오징어는... 오징어는 떼로 무리지어 즐겨야 더 살벌해지는 게임이란 것이다.
주제도 평이하고, 게임도 기대이하고, 더구나 다양한 군상들이 오히려 난잡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무엇보다 대부분 설정들이 어디서 본 듯한 것들 뿐이다. 어렸을 적 즐겼던 게임들이란 것도 앞서 이야기한 이유들로 흥미를 반감한다. 그럼에도 굳이 의미를 찾자면 기존의 환경에서 한국에서는 이런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거의 어려웠다는 사실일 것이다. 오로지 넷플릭스이기에 가능했던 드라마라고나 할까? 이미 해외에서는 익숙한 장르지만 한국에서는 매우 낯설기만 하다. '라이어게임'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패배자를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데스게임의 형식은 아니었다.
그냥 한국배우들이 한국어로 한국 국적을 가지고 만든 드라마라는 사실에만 의미를 두고 보았다. 구구한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지영 말고는 그냥 스킵하고 지나갔었다. 감독이 한국 개신교에 대해 가진 반감은 공감하는 바가 컸기에 그 부분만큼은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도 주님의 은혜를 찾는 목사와 목사인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살해당하고 자신 또한 성적으로 학대당했던 지영의 사연이 무척 흥미로웠다. 단 거기까지 뿐. 그런 정도의 드라마에 지나지 않았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징어게임' 표절논란에 대해 (0) | 2021.09.29 |
---|---|
천성장가 - 국사무쌍 (0) | 2021.09.22 |
중국 역사드라마의 한계 - 대의와 명분에 대한 고찰 (0) | 2021.09.09 |
D.P - 내가 유명인의 군대문제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유 (0) | 2021.09.07 |
절대쌍교 2020 - 강소어와 비육지탄... (0) | 2021.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