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의 만화 실사화에 관심을 끊은지가 꽤 되었다. 유치하다. 한심하다. 민망하다. 부끄럽다. 안타깝다. 안쓰럽다. 불쌍하다. 대충 그런 감정들이 보는 내내 내 안에서 휘몰아치기 때문이다. 이런 건 볼 게 못 된다.
일본드라마를 보지 않은지도 벌써 몇 년 째, '오늘부터 우리는'의 실사드라마가 만들어진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주연배우들도 거의 이름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야마시타 토모히사나 나가사와 마사미, 호리키타 마키인 때문이다. 지금은 아마 정상적이라면 중견연기자가 되어 있겠지만 과연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넷플릭스에서 추천컨텐츠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런 드라마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결론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 그러고보니 1980년대 말부터 연재된 만화인 것이다. 일본의 양키 스케반 문화라는 게 거의 그때쯤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츳파리라 부른다. 솔직히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더 많으므로 뭐라 말하기 어렵다. 아무튼 만화가 종결된 시점이 아닌 연재를 막 시작하던 무렵의 정서로 돌아가면서 기묘하게 일본의 대중문화를 막 접하기 시작하던 무렵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 전해지기까지 딱 그 정도 시간차이가 존재했었다. 실시간으로 일본의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소수를 제외하고 알음알음으로 겨우 선망처럼 그 정보를 대할 수 있는 나같은 경우들에게는 딱 그 정도 시간차가 평균이었다. 다카하시 루미코가 '우루세이야츠라'를 연재하고, 아다치 미츠루가 '터치'를 히트시키던 시간대라니. 씨발 눈물까지 나려 한다.
그런 시대의 아련함 같은 것이 있었다. 아마 지금 대부분 장년을 넘어 노년의 경계에 선 이들에게 가장 활기차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경계일 것이다. 저때는 저런 머리가 유행이었구나. 저런 차림이 유행이었구나. 그러고보니 한승태, 아니 미츠하시와 이호준, 아니 이토의 교복도 그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교복을 줄이거나, 아니면 늘리거나. 사실은 늘리는 경우가 더 위험했다. 그 안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딱 영상도 색감도 미술도 연출도 그 시간대에 맞춘 터라 말하자면 양키판 '응답하라' 시리즈랄까?
이마이의 캐스팅이 아쉽지만 사토시는 어울렸다. 실제 사토시, 아니 조한주가 존재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토도 나름대로 어울렸고, 다만 아쉽다면 쿄코와 리코의 미스캐스팅일까? 쿄코는 키가 더 컸으면 좋았을 뻔했다. 리코는 너무 노안이다. 미츠하시는, 도대체 어디서 저런 놈을 데려 온 것일까? 외모는 그다지였는데 연기가 딱이다. 이마이도 그 연기 덕분에 살았다. 일본에서도 이런 드라마가 나오는구나.
'오늘부터 우리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가운데 하나다. 마치 70년대 학원물을 보는 듯한 낭만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러면서 80년대 이후의 흉험함도 포함되어 있다. 이제는 지난 시절의 추억과 그 시대의 무모함이 박제된 듯 그 안에 숨어 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들이다. 그래서 내가 만화를 좋아했었는가.
간만에 일본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았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추억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 일본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안타깝지 않은 것은 그래봐야 남의 일인 때문이다. 오랜만에 즐거웠다. 오랜 감동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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