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태랑 나랑 동갑이었어?
'오늘부터 우리는'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 1988년, 그리고 그때 한승태 고1 - 미츠하시 좆까! 한승태!
내가 고1때 정부 시책으로 비인가종목 관람을 가야 했었다. 우리 학교는 사이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관객 적어서 화면 안 나올까봐 중고등딩들 동원해서 관객석을 채웠었는데 하필 우리학교가 당첨된 것이 사이클 경기장이었다. 즉 나는 고1. 전해 구로구청 사태를 중3때 실시간으로 경험했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보면서도 느꼈던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서로 사는 나라가 다르다는 이유로 정서가 이렇게나 다르구나.
벌써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들끓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기억하는 화장실 낙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오죽하면 학교 선생들까지 총출동해서 학생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찍어누르려 필사적이었겠는가. 내가 선생들 개좆으로 여기는 이유다. 기성세대를 개똥으로 여기는 이유다. 민주화에 대한 학생들의 열망을 교사라는 권위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찍어누르려던 것이 바로 당시의 교사들이었을 테니.
그런데 같은 시기 한승태는 맘편하게 싸움질이나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따위 아랑곳없이. 시민의 인권이지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것에 대한 고민따위 없이.
한 편으로 드라마를 통해 이해하게 된 부분이다. 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이 끝내 패배로 끝나고 패잔병들이 대거 대중문화계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남겨진 이후 세대들은 패배를 학습하며 그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만 노골화하기 시작한다. 양키 스케반이 연장에 있다. 포르노가 그같은 청년세대의 불만을 희석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허용되었었다. 어째서 츳파리였는가. 어째서 양키고 스케반이었는가.
그러고보면 일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청년세대가 희생해서 세상이 바뀌었는데 정작 청년들 자신에게는 돌아온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뭔 개지랄인가. 뭔 병신지랄인가. 그래서 온라인에서 츳파리 행세를 해 본다. 그동안 이 블로그 지켜본 사람이라면 내가 일베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가 기억할 것이다. 네티즌이란 어째서 저토록 기득권을 닮아가는 것인가.
아무튼 그래서 뭔가 새롭더라는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주인공들도 결국 내 또래였다는 것이다. 향서였을까. 한 가지는 분명할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한류 '겨울연가'에서 비롯된 순애물의 기폭제였다. 어째서 일본의 제작진들은 '오늘부터 우리는'을 80년대에 대한 향수로써 이해하려 했을까.
그냥 뇌피셜이다. 뇌내망상이다. 제작진이 '응답하라' 시리즈를 봤다. 그리고 만화의 연재시점을 봤다. 그리고 누군가 그 시절의 정서를 떠올렸다. 이건 통한다. 돈이 된다.
어쨌거나 한승태도 이호준도 미선도 박경자도 김상범도 나란 동갑이었다는 이야기다. 지금쯤 어디서 무엇들을 하고 있을까. 나처럼 넷플릭스 보면서 철지난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미츠하시가 아니라 한승태다. 이토가 아니라 이호준이고. 더욱 새삼스러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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