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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검과 양손검, 무협소설만 보고 쓰는 무협소설들

까칠부 2023. 2. 27. 18:51

내가 일본만화나 애니를 띄엄하게 보기 시작한 이유는 별 거 아니다. 만화만 보고 만화를 그리는 놈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애니만 보고 애니를 만드는 놈들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 만화와 애니속 세상을 벗어난 일상의 세계가 최근의 작품들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새끼들 그냥 오타쿠다.

 

이른바 한국 장르소설들을 보면서도 자주 느끼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무협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무기인 검에 대한 것이다. 무협영화를 많이도 아니고 딱 한 편 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는 양수검이 없다. 아니 없지는 않은데 그리 흔하게 쓰이지는 않는다. 와호장룡에서도 아주 잠깐 등장한다. 양자경이 자기 집 연무장에서 싸울 때 이 무기 저 무기 다 꺼내쓰는 가운데 무슨 클레이모어만한 길다란 검이 잠깐 스치고 지나간다. 그게 양수검이다. 아니면 왜구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생산되었던 왜도가 양손검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국무술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무기들이 아니었다. 중국 무술에서 흔히 쓰이는 도씨검이라 부르는 검들은 전부 한손검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중국의 검은 유럽의 레이피어와 그 생김이나 용도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살상을 위한 검이 아니라 제압을 위한 검이다. 정확히는 권위를 세우는 검이었고, 그 권위를 이용해서 술법을 부리던 도인과 술사들의 검이었다. 중국에서는 실전에서 거의 검이 쓰이지 않았다. 주로 창을 썼고, 칼을 쓰면 외날의 도를 더 많이 썼다. 검은 의장용이었고, 그래서 지금의 중국검처럼 실전성과는 거리가 먼 모양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었다. 베기에는 너무 얇고 찌르기에는 끝이 뭉툭하다. 그래서 민간에서도 중국검은 살상보다는 제압의 목적으로 쓰였다.

 

중국검만이 아니다. 중국무술에서 흔히 쓰이는 창이나 도 역시 살상력이 최대한 배제된 형태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민간에서 흔히 쓰이는 유엽도는 날이 정말 얇아서 조금만 힘을 주어도 휘거나 부러질 정도였다. 중국무술 표연에서 쓰이는 도를 떠올리면 된다. 진짜 연검처럼 낭창낭창 잘도 휘둘린다. 창도 역시 화창이라 해서 겨우 사람 키 정도 길이에 날도 작았다. 중국 무협에서 문파에서 창을 쓴다고 전장에서도 창으로 활약하는 장면은 개구라라는 것이다. 말 위에서 쓰는 긴 창은 삭이라 해서 생김도 달랐고 용도도 전혀 달랐다. 보병용 장창 역시 대부분 3미터를 넘는 길이로 민간의 창술을 그대로 적용했다가는 땅만 수도 없이 때리게 된다. 그나마 민간에서 도끼를 겸해서 일상도구로 쓰이던 박도가 차라리 실전에서는 더 유용했을 것이다. 괜히 수호전에서 호걸들이 박도를 들고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다른 무기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무협영화나 드라마 한 편 만 제대로 봤어도 오해가 생길 수 없는 검마저 뻑하면 두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것은 결국 이전의 오류투성이 소설들만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라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소설들은 일본 활극만화의 영향으로 일본도를 들고 설치던 이전 한국 무협만화들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다. 대표적인 한국 무협작가인 하승남부터 원래는 일본 활극만화를 베껴서 그리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승남의 초기작을 보면 심지어 사카모토 류마의 일대기를 그린 '용마가 간다'를 그대로 베껴서 무협으로 그러낸 것도 있을 정도로 뼛속부터 일본통이었다. 그러고보면 초기 무협작가들 가운데 중국검을 그나마 비슷하게 그렸던 것은 중국무협물을 베껴 그리던 황재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다. 이재학도 천재황도 죄다 일본도를 들고 설치는 만화를 그려댔으니.

 

검을 높이 치켜들고 내려치는 것부터 그래서 넌센스라는 것이다. 레이피어 들고 그런 자세를 취한다 생각해 보라. 레이피어로 숭덩숭덩 사람의 목을 잘라내는 것은 어떠한가. 진짜 영화 소오강호를 추천해 주고 싶어지는데. 마지막에 악불군과 영호충이 중국검으로 겨루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안타까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