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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누룩과 개량누룩, 막걸리 회사들이 입국을 쓰는 이유

까칠부 2023. 12. 15. 18:20

원래 술만드는 걸 개량누룩으로 시작했다. 일단 쌀씻고 고두밥 찌고 식히고 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다. 백세를 하는 것도 일인데, 밥을 찌는 동안에는 불을 봐야 한다. 더구나 쌀이 많으면 속까지 안 쪄지는 경우가 있어 도중에 뒤집어주기도 해야 한다. 아니면 진짜 오랜 시간 쪄야 하는데 그러면 또 물이 없어서 냄비가 타버리기도 한다. 밥을 찌는 동안 물을 부어주기도 해야 하는 것은 쌀이 속까지 쪄지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냄비에 물을 보충하는 용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식혀주어야지. 그에 비해 개량누룩을 사용하면 그냥 쌀가루 사서 물과 섞어주기만 하면 된다. 한 10분이나 걸리나? 그래서 원래는 정년퇴직하고 나면 집에서 놀면서 소일거리로나 하려 했는데 개량누룩의 존재를 알고 조금 일찍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개량누룩으로만 술을 만들다가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전통누룩도 한 번은 써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깨달았다. 어째서 막걸리 회사들에서 전통누룩을 잘 쓰지 않는가. 당장 술만드는데 밑술이 필요하단 것부터 회사 입장에서 관리해야 할 공정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밑술 없이 전통누룩으로 술을 만들려면 인내심을 시험당하게 된다. 그렇다고 결과가 항상 잘 나올 것이란 보장도 없다. 대량생산이 기본인 현대의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일관성인데 전통누룩은 그 일관성을 지키기가 너무 힘들다.

 

일단 전통누룩은 효모가 적다. 누룩 안에 효모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숫자 자체가 적기 때문에 누룩냄새가 나네 어쩌네 해도 밑술을 만들 때 상당히 많은 양을 섞어 주어야 한다. 개량누룩으로 술을 만들 때는 10g 단위로 누룩을 넣다가 전통누룩으로 술을 만들면서는 100g단위로 누룩을 넣어주어야 하니 거기서부터 무언가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술이 익는 속도가 다르다. 개량누룩과 효모를 쓰면 발효통에 넣자마자 바로 발효가 시작된다. 발효통에 넣어두고 한 시간 쯤 지나면 술이 끓어오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전통누룩은 조금 더 시간을 들이고 지켜봐야만 술이 끓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효모를 따로 넣어 준 이유다. 성미가 급해서 못기다리겠다.

 

더구나 가장 큰 문제는 전통누룩이란 자체가 다양한 미생물의 조합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항상 일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생물마다 하는 역할이 다른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조건도 또한 다르다. 지난주처럼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더워졌다 하면 술이 미쳐 날뛰게 된다. 어떤 미생물은 신맛을 내고 어떤 미생물은 단맛을 내고 어떤 미생물은 향을 내는데 그 결과가 매번 달라지면 상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공장은 그런 변수를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설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자체로 너무 성가시고 번거롭다. 그에 비하면 특정한 미생물만으로 일정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개량누룩이나 입국은 얼마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가.

 

더불어 전통막걸리에서 밑술이 필요한 이유부터가 효모가 부족한 누룩에서 효모를 증식시켜 늘리기 위한 일환도 있는 것이다. 밑술 속에서 여러 미생물들과 함께 효모가 수를 늘리면서 보다 안정적인 발효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로 곰팡이균에 의한 당화도 효모에 의한 발효도 일정하게 통제할 수 있는 현대의 제법이라면 굳이 밑술 없이도 바로 일정한 완성도의 술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개량누룩이면 이양주로도 사실 충분한 완성도의 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니 단양주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고보면 한 번 만 쌀을 넣어 만든 단양주도 그리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 결론은 전통누룩은 비효율의 극치다. 물론 취미를 위한 것이라면 효율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일하며 쉬는 짬짬이 만드는 것이라 시간의 제약이 심하다.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그래서 일을 하는 이상에는 효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잘 만들어 놓으면 쌀과 누룩과 효모만으로 만들었어도 배의 향과 맛이 난다는 것이 아주 보람이 없지는 않다. 저번에 만든 술에서는 꽃향기 같은 것이 났었다. 위스키맛이 나더라는 사람까지 있었다. 누룩에 포함되어 있던 곰팡이균을 쓰는 것이다. 아직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남은 누룩은 내다 버리든 해야지. 다시는 못쓰겠다. 성격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