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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가 청주보다 오히려 비싼 이유?

까칠부 2024. 1. 5. 17:46

현행 주세법상 전통 청주보다는 막걸리가 세금이 싸다. 몇 년 전 주세법 개정으로 막걸리와 맥주만 종량제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뭔 말이냐면 술의 도수와 생산량에 비례해서 세금을 매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외의 다른 술들은 종가제로 술값에 비례해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뭔 차이냐?

 

종가제를 예로 들면 아주 좋은 재료를 써서 오랜 시간을 들여 아주 좋은 술을 만들었는데 원가가 10만원이다. 그래서 15만원 받으면 거기에 비례해서 세금을 더 붙여 받는 것이다. 정확한 세율은 모르겠지만 대충 판매가의 70퍼센트가 세금이면 10.5만원을 술값에 더 붙여서 팔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주세만 붙지 않으니 이것저것 다 붙여 내놓으면 거의 처음 책정한 판매가의 두 배를 넘기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그래서 이 경우 좋은 재료 써서 오랜 시간 들여 좋고 비싼 술을 만들면 오히려 세금으로 인해 불리한 구조다. 반면 종량제는 어차피 내는 세금은 같기에 차라리 같은 도수면 더 적은 량을 생산하고 대신 더 단가가 높은 고급술을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 최근 막걸리 가운데 10만원을 훌쩍 넘는 놈들도 심심찮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기왕에 좋은 재료로 시간을 들여 만들려면 세금도 더 싼 막걸리 쪽이 사업자 입장에서 더 유리하다.

 

나도 처음에는 그래서 막걸리 가운데 더 비싼 것들이 많은 줄 알았다. 세금 때문에 굳이 청주로 만들 수 있는데도 막걸리로 내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얼마전 무려 두 달에 걸쳐서 쌀가루로 사양주를 만들어 걸러보고 난 뒤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한 달 이하로 발효한 술들은 오히려 지게미가 있으면 더 찌르는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차라리 지게미가 가라앉도록 하루 정도 냉장고에 두었다 먹으면 그쪽이 더 부드럽고 맛있다. 그런데 웬걸? 두 달 정도 지나니 쌀들이 제대로 삭아서 쌀가루라는 느낌 자체가 없다. 그냥 원래 하나인 것처럼 부드럽게 넘어간다. 우유인 줄 알았다.

 

물론 그냥 청주로 먹어도 맛이 있다. 오래 발효하고 쌀도 많이 들어간 만큼 거른 양이 적은 것에 비례해서 맛도 달고 향도 무척 진했다. 그런데 여기에 가라앉은 지게미가 섞이니 이건 뭐... 우유같은 곡물향이 기름이라도 칠한 듯 그냥 술을 목구멍 너머로 미끄러뜨린다. 아, 이래서 굳이 고급술을 막걸리로 만드는 것이로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나 다시 같은 술을 만들 생각은 없다. 팔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한다. 쌀을 추가하는 것도 문제고, 그때마다 몇 번 씩 저어주는 것도 문제고, 더구나 쌀가루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아래로 가라앉으며 서로 엉키기 쉽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 저어줄 필요가 생기게 된다. 이건 진짜 낭비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술은 딱 한 달 정도까지가 적당하지 않을까. 사양주보다는 삼양주다. 청주로 먹기 딱 좋은 정도다. 그래도...

 

막걸리가 청주보다 비싸지는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청주란 우리 전통의 청주를 뜻한다. 물론 대부분 청주들은 막걸리보다 비싸다. 앞서 말한 주세법의 문제와 양조에 들어가는 원가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청주는 낭비가 심한 술이다. 그런데도 막걸리가 더 비싼 경우가 생긴다. 새삼스런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