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블로그를 뜸하게 해서 예전에 오던 사람들 중 몇이나 남았을지 모르겠다. 벌써 8년 전이다. 쭈그리 놈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 그리고 바로 다음해 꼬맹이도 쭈그리를 쫓아 내 곁을 떠났었다. 오래전 보았던 만화영화 '집없는 소년'을 떠올렸었다. 그 만화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을 산 할아버지와 함께 공연하던 개들을 하나씩 잃고 마지막에 개 한 마리만 남았었을 것이다. 서울을 떠난 것은 넷이었는데 그렇게 하나씩 세상을 떠나고 어느새 나와 쭈꾸미 둘만 남게 되었다. 워낙 길고양이 출신에 어느 정도 자라서 강제로 유인해 잡아 온 놈이라 야생성이 강하게 남아 한결같이 나를 의심하고 겉돌던 녀석과 단 둘이 남아 함께 살게 된 것이 벌써 7년이 세월인 것이다.
그 동안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니 쭈꾸미를 들이고서부터 진짜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06년이면 아직 노무현이 대통령일 때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파동 때 갑작스런 환률상승으로 고양이놈들 먹이던 사료까지 바꿔야 했던 기억이 선하다. 보다시피 쭈꾸미놈 처음 찍은 사진부터가 워낙 옛날 핸드폰이라 카메라 화질이 정말 눈물겨울 정도다. 쭈꾸미놈과 싸우다 꼬맹이놈이 요로질환으로 병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하고, 그 사이 나는 또 맹장염으로 수술까지 받고, 이사도 네 번이나 했었다. 그때마다 쭈꾸미놈 이동장에 넣느라고 상처가 늘었었다. 내 손과 팔뚝, 다리에 난 상처 절반은 저놈 이동장에 넣다 생긴 것이다. 아파도 병원에는 데리고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진짜 반항조차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지면 아마 그동안 두 번 정도 병원에 갔을 것이다. 그래서 이빨도 아랫송곳니 하나만 남았다. 나머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 있더라. 아마도 어려서부터 콧등에 있던 까만 얼룩의 원인인 구강 주위의 염증으로 인한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집이라고 가출했다가도 돌아오면 엉겨붙는 것이 아주 남은 아니라고 같이 서로 의지하며 그렇게 7년을 더 살았었다.
그만큼 긴 세월이었다는 것이다. 집만 옮긴 것이 아니다. 직장도 세 번이나 옮겼다. 그래서 꼬맹이 때와는 달리 쭈꾸미는 어이없이 떠나보내는 일 없이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월급도 올랐고, 무엇보다 일하는 시간이 줄었으며, 연차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쭈꾸미놈 위독할 때마다 연차를 내고 곁에 있어주며 몇 번의 고비도 넘길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쭈꾸미가 더이상 전처럼 건강하지 못한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런 섭리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나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몇 번이나 미뤘지만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마지막 이별을.
그래도 며칠 전까지는 자기 힘으로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갔다 오더니 어느 순간부터 그마저도 어려워지고 있다. 녀석이 침대에 오줌을 흘린 흔적을 보았던 것이 벌써 5월 초다. 똥을 싸다 말고 매단 채 들어와서 방안에 흘린 것도 몇 번 보았다. 건식사료는 아예 먹이지 않은 지가 꽤 되었고 먹던 습식사료조차 더이상 먹지 못해서 유동식인 츄르와 비슷하게 갈아서 페이스트로 만든 사료로 바꿔 먹이게 된 것이 벌써 한 달 반인데, 이제는 더이상 츄르조차 먹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서 있으면서도 몸도 못가누고, 눈에는 고름이 차고, 힘없이 이불 위에 늘어져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아예 화장실에서 오줌 누는 것조차 힘겨워서 자꾸 침대 위에서 흘리고, 똥은 아예 며칠 째 누지 못하고 있다. 눕는 것조차 제대로 못해서 펄썩 무너지는 녀석이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루 한 번 하던 수액 투석을 하루 두 번 씩 하고, 제 힘으로 먹지 못하니 의사는 염분이 많아 신장에 안좋다는 츄르마저 겨우 주사기로 입에 짜서 넣어주고 있는 중이다. 오줌이 마려워서 버둥거리거나 혹은 나를 보고 울면 내가 직접 들어다가 화장실에 데려다 주고 다시 오줌을 다 누고 나면 침대로 데려온다. 그럼에도 똥도 못싸는 녀석이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괜히 나를 보며 나직이 울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이유다. 시한부라 그동안 연명치료를 하며 마음의 준비가 끝난 줄 알았는데 18년의 세월을 떠나보내기에는 아직 준비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구슬프게 울다가 다시 똬리틀고 잠들어 있다. 자고 있는 품안으로 힘겹게 다가와서 안겨 기대는 그 가볍고 앙상한 몸이 그저 서글프기만 하다.
최근 사실상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이유다. 이래서 오랜 병에 효자가 없구나. 조금 좋아지는 것 같다가 나빠지고, 괜찮아지는 것 같다가 안좋아지고, 그러면서 결국은 더욱 증상이 악화되어 언제인지 모를 마지막 신간에 점점 더 마음은 지쳐만 간다. 그래도 나를 보며 애처롭게 우는 녀석을 보면, 그저 몸을 기대고 잠들어 있는 녀석의 숨소리와 심장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래도 아직은 더 무언가를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녀석이 살려 하는 동안에는 나도 녀석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꼬맹이 그리 보내고 몇 년을 그리 후회하고 아팠었다.
아무튼 그래서 깨달은 한 가지가 사람에게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것이다. 고양이 아프다고 하니 그냥 포기하라는 놈들이 그리 많다. 그런데 또 그게 그리 화나거나 서운하거나 하지가 않다. 어차피 그 이상을 기대할 만한 관계가 아니었던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은 서로 가깝고 친하기도 하다고 여겼었는데 그 순간 깨닫게 된다. 18년이라는 세월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그들도, 그런 그들에게 조금의 서운함을 느끼지 못하는 나 역시도 서로를 단지 그런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책임지기로 한 생명을 마지막 순간까지 나 자신의 어려움이나 곤란함을 감수해가며 책임지고자 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기만 한 일일 것인가.
준비는 이미 대충 마쳐 놨다. 쭈그리 때랑 꼬맹이 때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수의도 이미 오래전에 사놓은 상태다. 녀석이 떠나고 나면 해야 할 일들도 대충 정리해 보았다. 일단 침대부터 바꿔야 한다. 녀석이 오줌을 너무 싸서 그 냄새가 아주 지독하다. 녀석이 깔고 있던 이불이며 옷들도 모두 빨아야 하고, 무려 17년 째 쓰고 있는 화장실도 버려야 한다. 그동안 녀석 신경쓰느라 내버려두었던 방안청소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녀석이 침대를 점령하고 있느라 미뤄두고 있던 에어컨 설치도 서둘러야 한다. 그러면서도 녀석을 위해 49제 동안에는 향도 피워주어야겠지. 그리고 쭈그리와 꼬맹이가 그랬던 것처럼 집앞 개천에 떠나보낼 생각이다. 그리고 오랜동안 그리워하겠지. 전에 떠난 녀석들처럼.
마음이 심란하다. 그래도 며칠 전까지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주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거의 없다.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 드디어 긴 인연의 끝을 맞이할 때가 된 모양이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니면 그 다음의 어느 날일지. 아마 다음 주를 넘기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지난주 받아온 일주일치 약과 수액들은 다 쓰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진짜 긴 시간이었다. 너무 고마웠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항상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던 그 존재 자체가. 서러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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