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200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 게임전문지에 한 개발자가 그런 칼럼을 기고한 바 있었다. 게임이 평범해진다.
원래 대부분 게이머들은 게임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잘 이해받지 못하는 측면이 강했다. 그래서 너드란 말도 나오는 것이다. 달리 오타쿠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폐인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저게 뭐라고 그리 빠져서 하는가. 저게 뭐하는 거라고 그리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빠져 사는가. 그래서 바랐을 것이다. 주위에서도 내가 즐기는 게임들을 같이 즐기면서 이해해 주기를.
그런데 어느새 그렇게 되어 가고 있었다. 더이상 게임은 특별한 취미가 아니게 되었다.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기는 것이 아닌 다수의 보편적인 대중이 즐기는 문화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효과로 게임이 더이상 기존의 게이머들만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다. 사실 그래서 더 좋기도 하다. 전처럼 게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없다 보니 게임에 익숙지 않은 대중들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가 더해진 게임들이 더욱 편하게 다가오는 때문이다.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없는 디자인과 그러면서도 진입장벽없이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시스템은 분명 하드코어 게이머들에게는 불편한 요소일 수 있지만 그러나 그로 인해 게임은 더 평범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현실들을 받아들이라.
더불어 그와 함께 병행해서 이루어진 또 다른 변화가 개발자들 또한 원래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건 사실 우리나라가 더 빨랐는데,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의 성공으로 게임이 돈이 된다 싶으니까 진짜 오만 놈들이 죄다 게임 쪽으로 몰려들었던 때문이었다. 수익을 바라고 게임에 투자한 전주 가운데도 게임이라고는 쥐뿔도 모르고 그저 성공한 게임을 답습하기만 바라던 놈들이 당시에는 진짜 채이도록 많았었다.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고는 아예 상관없이 그저 팔릴만한 게임만 당장 내 눈앞에 가져오라. 당연히 그런 투자자들 대부분은 게이머들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개발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면서 게임의 판매량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늘어난 만큼 더 큰 수익을 바라고 더 많은 돈이 게임에 투자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에 관심이 있고 게임에 대한 이해도 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이 투자도 하고 제작도 했지만 더이상 그런 것들과 상관없는 바깥세상의 보편적인 논리에 익숙한 채로 게임개발에 뛰어드는 사람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그같은 일반적인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게임을 만드는데 성공해서 크게 돈을 버는 이들도 나왔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게임업계에 남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과연 기존의 게이머들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더구나 더 큰 문제는 원래 게임을 즐기지 않던 일반 대중들이 게임에 빠져 사는 이른바 너드를 대하는 시각이었을 것이다. 저 새끼들은 세상의 상식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식도 갖추지 못한 그냥 아싸 찌질이들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새끼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자기들이 은혜를 베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최근 게임개발자들과 유저들 사이의 감정까지 동반된 충돌들의 이면에는 아마 이같인 이유들도 적잖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바깥세상에서는 이런 것들이 상식인데 너희 놈들은 게임이나 쳐하느라 그런 상식도 모르고 무시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너드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대로 그런 상식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살고 있었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를테면 트럼프가 아무리 반PC를 주장한다 해도 대부분, 특히 한국의 게이머들보다는 훨씬 PC적인 인사라는 것이다. 게임에 단순히 성소수자와 관련한 선택지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PC를 강요한다고 지랄하는 일부 게이머들과 달리 정작 미국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조차 동성애의 인정이 아닌 동성애자들의 혼인인정 여부가 논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성년자들의 성전환수술이나 그와 관련한 교육들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겠지만 그렇다고 성소수자에 대한 인정여부나 차별에 대해서는 이미 모든 논의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유색인종은 말할 것도 없고, 소수인종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런데 유독 게임에 그같은 요소들을 집어넣으려 하면 아예 발광들을 해댄다. 정상은 아니지만 그러나 같은 게이머가 보기에 그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러한 괴리다.
같은 게이머들 가운데 프로그램 좀 할 줄 아는 인간들이 알음알음 모여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자기들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어 팔던 시절에야 당연히 그런 일따위 없었다. 어차피 만느는 놈이나 하는 놈이나 똑같은 인간들이었을 테니 뭔 생각으로 만들고 뭔 생각으로 사서 하든 서로 신경쓸 일따위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병신새끼 한 마디 내뱉고 끝나는 것이다. 그딴 게임 돈 주고 할 일 없으니 그냥 쳐망해라, 꼬시다. 무슨 게임을 뭐 그딴 식으로 만드냐,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만들지 마라, 너같은 새끼들은 아예 게임 자체를 만들지 마라, 이렇게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일 따위 따라서 그때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질적이다. 저 새끼들은 뭔가 나와 다르다. 일단 잘 배우고 잘 사는 것 같고 멀쩡하게 인싸로 잘 지내는 것 같다. 그런데 하물며 그런 새끼가 날 가르치려 한다. 어쩌겠는가? 그렇게 되었는 걸.
더이상 게임만 잘하는 놈들로 개발진을 채우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임 하나 만드는데 못해도 세 자릿 수는 사람이 필요해졌는데 그걸 죄다 게임까지 잘하는 놈들로 채우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게임만 잘하는 놈들은 말까지 많아서 투자하는 입장에서 그리 괜찮은 선택지가 아니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코드 짜고 도트 찍고 쉐이더 돌릴 놈들이 더 요긴하다. 그런 놈들이 또 게임 하나 성공하면 디자이너가 되고 디렉터가 되고 프로듀서가 된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원래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고 그런 만큼 동류가 아니면 그 또한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그래서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글쎄... 지금보다 게임시장이 더 작아지지 않으면 그런 일따위 없지 않을까. 아직까지 돈이 되고 더 많은 실력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말까지 잘 들어야 한다.
내가 느끼는 이른바 게임씬에서의 PC논란의 실제 이유다. PC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이상 만드는 놈과 하는 놈들 사이에 공감대가 없다. 동류로서 동질의식이 없다. 만드는 놈들은 만드는 놈들대로 하는 놈은 또 하는 놈들대로.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어쩌면 PS5 pro의 가격설정이었을 것이다. 게임을 하는 놈이면 하지 않을 짓이지만 그러나 장사하는 놈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아마 대부분 대중들은 PC가 뭔지 관심도 없지 않을까. 재미있으니까 하고 재미없으니 안한다. 처음 보는 게임인데 추천이 없으니 괜히 모험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대개 그런 유저들은 또 발매 당일에 기다려 사거나 하지도 않는다. 아이러니다. 게임시장이 커지니 게이머가 정작 소외된다. 마니아를 위한 시장은 없다. 그 혼란 속인 것이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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