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문득 웹소설을 통해 느끼게 되는 일본사회에 대한 부러움

까칠부 2024. 12. 25. 22:13

한국 장르소설에서 주인공이 착한 일 하다가 죽는다? 대부분 후회하거나 원망한다. 자기가 남을 위해 희생한 것을 후회하고, 자신의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한다. 그래서 대부분 회귀나 전생은 그런 후회와 원망을 전제로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다.

 

그렇다보니 대부분 장르소설들에서 주인공들의 행동은 거의 일관되게 사이다를 추구하게 된다. 괜히 남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어려움을 자초하는 고구마보다는 바로 어제까지 같은 건물에서 일하던 동료직원들이 죽어나가는데도 가까운 몇 명 만 외면하고 도망쳐서 살아남는 그런 사이다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장 죽어나간다는데 내게 이익이 없으니까 그냥 나는 다른 일이나 하겠다는 사이다다. 눈 앞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어차피 내 일이 더 급하니 상관하지 않는 그런 사이다다. 그래서 읽다가 아예 포기한 장르소설들이 꽤 많다. 특히 1인칭시점인 것들 가운데 그런 게 많다. 그래서 더욱 그 과정에서 떠드는 개똥같은 소리들을 읽고 있으면 뇌가 썩어 버리는 느낌마저 받는다. 어떻게 이런 것들이 출판까지 되는 거지?

 

그런데 며칠 전 넷플릭스 보다가 애니메이션이 하나 올라와서 보는데 주인공이 두 어린 자매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주인공이 아니었어도 두 자매는 죽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도 선행은 선행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라이트노벨 코노스바에서도 주인공은 어찌되었거나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가 쪽팔려서 죽은 것이었다. 슬라임으로 전생하는 것도 결국 다른 사람을 구하다 죽은 것이었고. 그래서인가 이세계로 가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내용이 대개 주를 이룬다. 내 이기심을 위해 다른 사람은 죽든말든 오로지 자기 이익만 추구하면서 그것을 쿨하다 여기는 한국 장르소설과 다른 부분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차이가 나오는 것일까? 그래도 아직까지 일본사회에서는 공동체라는 가치가 남아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차라리 자기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적인 사건들을 주로 다루는 장르소설들을 일부러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거대서사가 없는 것들. 특히 아포칼립스물은 웬만하면 피하려 한다. 너무 역겹다. 그냥 내가 힘이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 그런 걸 누군가는 시원하다며 사이다라고 재미있게 보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다기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띄어서. 이런 것도 세대차이인가. 아니 그래서 반PC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치적 올바름은 싫다. 그렇게 이어진다. 그래서 그들은 PC에 거의 본능에 가까운 발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