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AAA급 게임이 망하는 과정? 집단지성의 함정

까칠부 2024. 12. 30. 00:23

사실 이건 게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착각 중 하나다. 남들이 하지 않았으면 새롭고 놀라운 대단한 것이다.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자신에 감탄하고 또한 도취된다. 그리고 그것을 집단이 공유할 경우 착각은 자기연마와 자가발전에 빠져들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걸 더 재미있게 만들까?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런 아무도 하지 않았을 법한 새롭고 놀라운 아이디어는 하나가 아닌 여럿이, 그것도 다양한 경로로 추가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아이디어에 놀라고 감탄하고 칭찬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집단적인 최면에 빠지게 된다. 이건 정말 놀랍고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이다. 이른바 확증편향이라 불리는 것이다. 집단의 무의식이 자신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면서 집단적인 착각에 빠져들면서 더이상 자기객관화가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 개발진 모두가 동의했으니 이건 진짜 대단한 게임이 될 것이다. 심지어 여기에 투자자까지 끼어들게 되면 상황은 이제 겉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치닫고 만다.

 

실제 현장을 경험했으면 아마 대부분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 집단지성이라는 게 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도 하지만 모두가 같이 함정에 빠져드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집단 안에서 그에 대한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긴 창작 뿐만 아니다. 전쟁에서는 오히려 그런 경우가 더 허다하다. 대부분 역사에 남은 바보같은 작전들이 그러나 실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휘관들의 확신에 찬 판단과 결단에 의해 입안되고 추진되고 실행되었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보면 진짜 병신같은데 당사자들은 그것이 실제 가능할 것이라 믿었었다. 그 한 예가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실행했었던 콘크리트를 채운 드럼통을 굴리며 고지로 올라간다는 작전이었다. 콘크리트를 채운 드럼통이면 기관총과 약간의 포탄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었지만 그러나 고지를 올라가다 힘이 빠지면 오히려 무거운 콘크리트에 깔려 죽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실제 그런 예가 속출했었고.

 

아무튼 오히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대단한 기대를 받던 게임 가운데 졸작이 나오기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차라리 규모가 작은 게임이면 개발자들 스스로가 의심이 많아져서 이런 경우가 매우 드물다. 그런데 규모가 커지면 자기에 대한 확신이 만들어질 게임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긍정과 낙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기들이 만드는 게임이니까 반드시 재미있을 것이다. 이만한 자본과 인력과 시간을 투입했으니 당연하게 재미있는 게임이 나올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새롭고 놀랍고 남들과 다른 디자인과 시스템과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문제는 정작 그런 게임들에 대해 왜 실패했는가 따져 볼 지능이 대부분 게이머들에게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실패의 책임을 PC로 돌린다.

 

이미 성공한 게임들 가운데 캐릭터들이 백인이 아니거나 못생긴 경우가 매우 상당하다. 흑인과 아시아인, 히스패닉이 주인공이면서, 심지어 생긴 것도 그리 잘생기지 않았는데 성공한 예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주인공의 설정이 게이나 레즈비언, 혹은 트랜스젠더나 바이섹슈얼인데도 성공한 경우도 적지 않다. 왜? 그럼에도 잘 만들었으니까. 재미있게 만들었으니까. 그런 경우는 굳이 PC라며 욕하는 사람따위 찾아보기 힘들다. 실패하면 PC때문이다. 그렇게밖에는 원인을 분석할 지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개임이 재미없고 문제가 많은가? 오히려 그런 부분에 대해 분석하는 전문가가 있으면 PC때문이라고 욕부터 하고 보는 지능들이라 더 이상 파고들기도 어렵다.

 

그래서 게임들은 오로지 PC때문에만 망하는가? PC만 아니면 AAA게임들이 망할 일따위 없는 것인가? 그에 대한 반증따위 없다. 그냥 PC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이거야 원 뭐만 하면 다 PC라고 뒤집어씌우는 걸 보니 이런게 바로 무지성떼창이구나 새삼 깨닫고 만다. PC하나를 알고서 PC 하나만 생각한다. 그를 다수가 공유하며 집단화한다. 역시나 자기객관화가 안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영화나 만화 만들어 본 사람들이면 실제 경험해 봤을 것이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는 낄낄거리면서 그리 재미있을 것 같다고 고무되어 있다가 정작 결과가 나왔을 때 자괴감에 빠져 할 말을 잃었던 적이 한 번 씩은 다들 있을 것이다. 비슷한 놈들끼리 모이면 더욱 그런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실 많은 영화나 만화들이 기대와 달리 폭망하고 하는 것이다. 자기들 딴에는 재미있다고 만들었는데 정작 시장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영화 엄복동은 PC때문에 망했을까? 그런 점들을 분석하는 게 바로 전문가의 역할일 텐데 정작 인터넷에서 목소리만 큰 인간들 가운데 그런 전문가는 매우 드물다. 그런 이유다. PC면 통한다. 모든 것은 PC 하나로 설명된다. 한심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