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의 소설 '상록수'는 농촌의 현실의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지식인들이 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강요하는 내용이다. 한용운과 이육사, 이상화 등의 시는 대한민국 독립을 바라지 않는 조선의 청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강요하는 것들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역시 당시 프랑스의 불편한 현실을 굳이 대중들에게 가르치려드는 것으로 부당하다. 톨스토이의 소설들 역시 기독교적인 윤리를 개인에 강요하는 것이므로 시장에서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들이다. 또 뭐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SF를 science fiction보다는 social fiction으로 이해하는 편이다. 실제 지금도 쏟아지고 있는 많은 sf작품들을 보더라도 과학적인 발전이나 비전보다는 오히려 그를 통해 현재 자신들이 사는 사회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투영하려는 시도들이 더 많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SF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나온 판타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작가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가 자신이 사는 사회와 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는가를 때로는 노골적으로 혹은 때로는 은연중에 읽을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아예 그를 목적으로 작품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이 과연 잘못된 행동들인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내가 믿고 있고 추구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드는 이야기 속에 그것들을 넣고 싶다. 그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감케 하고 싶다. 그냥 재미있으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보기에만 즐거우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노벨문학상도 단순히 글만 재미있게 잘쓰는 것을 넘어서 그 내용과 주제가 보편적인 인류사회에 끼치게 될 긍정적인 영향까지 고려해서 작가를 선별해서 수여하고 있는 것이다. 글만 잘쓰는 사람은 널렸지만 그 글 안에 의미있는 주제를 잘 녹여서 담아낼 수 있는 작가는 드물다. 그래서 한강 작가도 자신의 사싱을 소설을 통해 강요했으니 문제가 있는 것인가?
당장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역시 소외된 사회적 약자와 그들과 유리된 경제적인 강자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헤프닝과도 같은 잔혹환 우화를 담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는 사람들에게야 계급적인 의식을 강요하는 PC적인 좌파영화라 여겨질 수 있을 테지만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한 부분이라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카데미 작품상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 사상을 강요하는 것이니 봉준호 감독도 문제있는 감독이고 기생충 역시 잘못된 작품일 것인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오징어게임' 역시 그냥 표면만 보면 흔하디흔한 배틀로얄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회적인 함의를 찾으려는 이들이 있었고, 인류사회를 공통하는 보편의 담론을 찾아서 이해하려는 이들이 있었기에 세계적인 화제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탈북민이 나오고, 노조활동하다가 이혼까지 하고 늙으신 어머니의 등이나 쳐먹는 백수가 나오고, 성공한 엘리트가 나오고, 깡패와 종교인까지 나오니까 이것도 작가의 사상을 강요하는 것인가?
특히 반PC를 주장하는 아마도 젊을 것으로 여겨지는 일련의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나아가 인간사회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의 결여를 염려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원래 이야기란 그렇게 쓰여지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설부터 만화와 영화, 나아가 게임까지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만드는 경우가 당연히 많은 것이고 그 가운데서 소비자들 역시 선별해서, 혹은 적극적으로 선택해서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나와 다른 사고를 한 번은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서 혐한물을 일부러 찾아보는 한국인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런 것을 전제로 작품을 통해 작가과 대화하고 소통한다는 것이 또한 창작물을 대하는 자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전제 자체를 부정한다.
작품에는 작가의 사상이 담겨 있으면 안된다. 작가가 주장하는 바, 작가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믿고 추구하는 모든 개인적인 것들이, 심지어 그것이 사회 일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절대 작품 안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이게 뭐와 같느냐면 독재시대의 순수문학론과 닮아 있을 것이다. 순수한 문학은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오로지 독립되어서 경제적인 이익도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문장이 추구하는 아름다움만 담아내야 한다. 그건 늬들 생각이지. 개발자가 그렇게 믿어서 그리 만든다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안사면 그만이지 아예 만드는 자체를 문제삼는다. 그런 놈들이 입으로는 검열을 말한다. 다른 게 검열이 아니다. 그게 검열이지. 내가 그렇게 상각하고 믿고 주장하고 싶기에 그런 내용의 작품을 만든다. 시장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은 그의 신녕이고 양심일 것인데 그에 대해 누가 강제할 수 있을 것인가?
작품에 작가의 사상이 들어갔다고 강요라고 지랄하는 새끼들을 보고 있으면 본능적인 혐오감부터 느끼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표현을 굳이 일부러 순화시키고 싶지가 않다. 벌써 꽤 오래전부터 그런 조짐이 보이기는 했었다. 내가 타진요 사태 당시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굳이 참전해서 욕을 사서 들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대중의 무지가 권력화되었다. 파쇼가 되었다. 심지어 뭐가 PC인지 기준도 명확지 않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PC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좌파 빨갱이인 것처럼. 그런데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그들은 다수가 되고 권력이 된다.
원래 이념이나 사상은 강제하는 것이다. 결국에 행동과 실천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자신이 믿는 바대로 당연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능력과 노력을 투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거도 치르는 것이다. 그에 동의하는 이들이 다수면 그대로 되는 것이고, 소수라면 어쩔 수 없이 양보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그런 전제조차 부정한다. 그래서 파쇼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그들은 이미 파쇼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 끔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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