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게임의 발전과 정체, 개발자가 미친 짓을 저지르는 이유

까칠부 2025. 2. 9. 20:27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훨씬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여기는 폭이 매우 좁다. 개인에 따라 그 폭이 어느 정도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 압도적인 다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재미의 폭이란 것은 극단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헐리우드 영화가 매번 비슷한 패턴인 이유가 그것이다. 대부분 장르소설이나 라이트노벨이나 애니메이션과 만화등이 거의 비슷한 패턴을 답습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흔히 대중성, 혹은 상업성이라 부른다.

 

게임시장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여기는 게임들이란, 그 가운데서도 수 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재미있다고 여길 수 있을 만한 게임이란 장르나 스타일이나 디자인에 있어 어느 정도 그 범위가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라고 하는 것은 또한 자극이기도 해서 같은 자극이 반복될 경우 인간의 신경은 쉽게 무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매번 비슷한 방식의 게임만 하다 보면 지루해지고 지겨워질 수 있다. 그런 경우 새로운 자극을 주어야 하는데 그러면 무엇으로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할 것인가. 

 

그래서 과거부터 게임시장에는 일정한 주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의 게임이 성공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들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정체되기 시작한다. 아니 정확히 새로운 시도가 나오기는 하는데 대부분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시장의 선택을 받는 게임들 대부분은 지루하고 지겹지만 그러나 그나마 안정된 재미를 줄 수 있는 기존의 방식을 답습한 경우들인 것이다. 과거 슈팅게임도 그랬었고, 어드밴처도 그런 과정을 밟았었고, 롤플레잉 게임도 디아블로가 나오기 전까지 그런 식으로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기존의 방식을 벗어난, 그러면서 보편적인 다수가 동의할만한 새로운 방식의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 그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워크래프트도 그런 경우 중 하나였었고, 디아블로 또한 그러했었다. 스트리트파이터가 격투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었고, 버추어파이터가 3D 대전격투의 시장을 열었으며, 툼레이더를 통해 어드밴처는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발전하다가 결국 또 한 번 벽에 부딪히고 만다. 사람의 상상력은 어쩌면 무한할 수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그것을 재미로써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 자신은 놀라운 상상력으로 지금껏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는 놀라운 게임을 만들려 하겠지만 그런다고 그런 모든 시도들이 시장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실패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이 되면 시장이 좋아할 것 같은 비슷비슷한 게임들만 남아서 대중의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흔히 장르의 한계에 부딪혔다 말한다. 이제는 더 나올 것이 없다.

 

물론 그럼에도 지난 십 수 년 동안 특히 AAA게임들을 중심으로 게임시장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꾸준히 성장해 온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매번 새로운 게임이 나왔고 그 게임들이 시장에서 이제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게임시장은 정체없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것같은 느낌마저 받게 된다. 그러나 그마저도 정작 조심스럽게 그 이면을 살펴보면 결국은 2000년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하드웨어 기술의 영향으로 실제 게임에 대한 체험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각적인 요소의 발전 또한 비례해서 이루어진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같은 장르에 같은 스타일의 게임이라도 게임그래픽의 발전만으로도 전혀 다른 게임을 즐기는 듯한 경험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크고 세밀해진 화면과 그에 어울리는 더욱 치밀해진 사실적인 그래픽과 현실처럼도 느껴지는 고도로 정교해진 효과와 연출들이 같은 게임플레이로도 전혀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것이었다. 그저 비슷한 레이싱게임임에도 차가 더 사실과 같고 운전서 실제 느끼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효과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은 이미 전혀 다른 게임이 되는 것이다. 같은 오픈월드라도 세계가 더 방대해지고, 더 치밀해지면서, 그 안에서 더 많은 상호작용도 가능해진다. 그래서 실제 게임으로서도 그만큼 재미있는가 하면 그냥 그 자체가 이미 재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전의 다른 게임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집이 80인치 이상 대형TV를 거실에 두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PC게임은 게임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40인치 이상은 오히려 비효율에 낭비일 수 있다. 그 전에 컴퓨터 책상에 그 이상 사이즈를 올려 놓는 것도 부담이다. 그러면 한정된 디스플레이 환경 안에서 과연 게임그래픽만 홀로 그 이상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이미 지금 수준에서도 그에 맞는 최고의 그래픽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막대한 인력과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과거 폴리곤 20개로 사람 하나 만들던 시절에야 그냥 버텍스 조금 당겨주고 텍스쳐도 정해진 해상도 안에서 적당히 알아볼 수 있게 붙여주면 끝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입고 있는 옷의 섬유질감까지 구현해내는 수준이란 것이다. 심지어 캐릭터를 확대하면 땀구멍까지 보인다. 그런데 그런 그래픽들을 게임이 실제 출시될 몇 년 뒤의 하드웨어 발전까지 고려해가며 당장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과 시간과 노력들을 감안했을 때 과연 얼마나 그 결과물에서 지금 현재 환경에서 얼마나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게임플레이에 있어 얼마나 유의미하게 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지금 게임시장에 있어 가장 큰 딜레마일 것이다. 결국에 이미 성공한 IP들에 계속해서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IP들 역시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 대부분 AAA게임이라는 것들도 보면 이미 성공한 게임의 후속작인 것들이 많다. 그리고 기존의 방식을 꾸준히 답습해 온 만큼 그 대부분이 새로운 시도에 막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가 괜히 엉뚱한 짓을 저지르거나 하는 경우 대중이 정해 놓은 선을 넘어서서 IP자체가 큰 타격을 입기도 한다. 그렇다고 전혀 새로운 방식의 게임을 만들기에는 뭘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가끔 개발자들이 미쳤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이상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원래 과도기에는 그런 경우가 많다. 뭔가 막혀 있는 것 같을 때 창작자들은 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이상한 생각에 빠져들고는 한다. 남들과 다르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래서 더 새롭게, 그런데 정답이 없다 보니 맨땅에 헤딩해야 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기들끼리는 이만하면 새롭고 재미있기도 하다 여기며 만들었는데 그러나 정작 결과물은 그것이 아닌 것이다. 결국 그것을 소비하는 것은 대중일 것이고 대중이 보기에 재미있어야 진짜 재미있는 것이다. 가장 개발자와 게이머와의 사이에 괴리가 커지는 시기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해오던대로 하기에는 이미 그런 게임들이 재미가 없다.

 

이를테면 게이머들이 가끔 빠져드는 게임불감증과도 비슷한 메커니즘인 것이다. 새로운 게임은 불편하고, 그렇다고 그동안 해 오던 게임들은 지겹고 지루하다. 안하던 짓을 하려니 어색하고 불편한데 그렇다고 하던 짓 계속 하려니 이제는 너무 지겹고 지루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괜히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한 10년 게임에서 손을 놓았을 것이다. 해도 재미없고 안해도 재미없다. 벽이다. 요즘 게임시장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캐릭터만 남게 된다. 그래서 요즘 게임계에서 가장 크게 이슈가 되는 것이 캐릭터의 피부색과 얼굴과 몸매일 것이다. 다른 건 아예 언급도 되지 않는다. 피부색이 검으냐 희냐, 얼굴이 예쁘냐 못생겼냐, 몸매가 뚱뚱하냐 말랐느냐, 글래머냐 슬랜더냐. 그런 것이 마치 게임의 전부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제 다른 것은 의미가 없다. 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