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가수란 말 쓰지 말자!

까칠부 2010. 4. 18. 22:09

아마 한 번 한 이야기일 것이다. 예전 시나위의 신대철을 어딘가에서 소개할 때 "가수 신대철"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단다. 맙소사. 신대철은 싱어가 아닌 기타리스트다. 그리고 작곡가고. 프로듀서다.

 

김태원에 대해서도 예전 가수 김태원이라 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나는 김태원의 목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부활 1집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김태원의 목소리가 빠지면 안 되는 노래다. 2집의 슬픈사슴 역시 후반부의 김태원의 절규하는 듯한 야수성이 그 맛을 극대화시켜주고 있고. 그러나 김태원이 과연 가수인가? 그는 기타리스트다.

 

음악이라는 게 물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무척 중요하다. 밴드를 해도 대중과 직접 마주하는 것은 가장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프론트 - 보컬이다. 그러나 그 보컬이 있기까지는 그 뒤의 연주자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중가요의 마지막은 보컬이더라도 그 기초를 만들고 얼개를 짜는 것인 연주자들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무대에 선다는 게 단지 음악을 들려주고자 서는 것은 아니다. 단지 듣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차라리 음반이 낫다. 음반이야 말로 적지 않은 시간을 최고의 시설과 환경 아래에서 몇 번을 다시 연주하고 부르며 완성해낸 결정체일 테니까. 물론 예전처럼 녹음기술이 형편없을 때는 그렇지도 못했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굳이 TV를 틀고, 공연장을 찾고 하는 것은 단지 듣고자 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화려한 외모에 멋진 코스튬에 현란한 세트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멋지고 화려하고 현란하며 놀라운 퍼포먼스들.

 

발라드를 부르더라도 그냥 노래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나름 연기가 필요하다.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에 어울리는 복장과 표정과 몸동작들과... 신승훈이 괜히 발라드의 황제가 아니다. 발라드라고 그냥 뻣뻣이 서서 노래를 부르는 법은 없다. 밴드쪽으로 가면 더 심해서 노래를 불러도 그냥 부르는 법이 없고, 연주를 해도 그냥 연주하는 법이 없다. 복장도 딱 봐서 락커다 하는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체인에, 장발에, 가죽재킷에, 혹은 캐주얼한 차림도 좋고. 그리고 관객은 그같은 모습에 공감하며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무대다.

 

퍼포머가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같은 부분 때문이다. 즉 듣는 음악도 있다면 보는 음악도 있다는 것이다. 듣는 것 만큼이나 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고. 기존의 음악인들이 음악을 전제로 무대에서 연기를 해 보였다면, 퍼포머들은 연기를 전제로 음악을 고르고 들려준다. 클럽에 굳이 음악 들으려 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란 춤을 위한 수단이듯.

 

따라서 퍼포머에세 중요한 것은 노래실력이 아니다. 어떤 음악적인 심도깊은 소양도 아니다. 물론 퍼포머라고 음악적으로 수준이 낮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그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얼마나 훌륭하게 무대에서 음악을 연기해 내는가. 얼마나 훌륭하게 음악으로써 대중을 시각적으로 만족시키는가. 음악은 그 다음이다. 즉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듣는 청각이 아닌 보는 시각인 셈이다. 노래를 들려주는 사람이 아닌 노래를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싱어가 아닌 퍼포머라 하는 것이다.

 

아이돌은 또 여기서 매우 특수한 경우다. 원래 음악이 좋아 음악인을 추종하면 그것이 아이돌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현대자본은 대중이 추종할 수 있는 아이돌을 기획 생산하여 그들에게 음악을 들려 들려주게 되었다. 아이돌이란 사실 싱어도 아니고 퍼포머도 아니고 연주자도 아니고 참 애매한 존재다. 마치 줄기세포마냥 지금 당장은 무대에 서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지만 결국에 그들이 이를 곳은 음악이 아닌 연기나 다른 분야다. 단지 한시적으로 개인의 매력으로써 대중의 눈을 잡아두는 것이 아이돌인데, 따라서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미덕 또한 싱어나 퍼포머와도 다르다 하겠다. 얼마나 대중에게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는가. 하긴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다른 아티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돌은 그 자체가 목적일 것이므로.

 

그러면 이 모든 것을 하나로 가수라 뭉뚱그릴 수 있겠는가. 싱어도 가수, 퍼포머도 가수, 연주자도 가수, 그런데 가수란 싱어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러지 않는가.

 

"노래를 하니까 가수다."

 

아니, 이게 아니지. 이건 내가 쓰는 정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리 말한다.

 

"노래를 잘해서 가수다."

 

그런데 연주자도 가수, 퍼포머도 가수, 아이돌도 가수라면 이게 도대체 뭘 어쩌자고? 그런데도 가수라는 말로 하나로 뭉뚱그리니 엉뚱한 연주자에게 노래실력 이야기가 나오고, 퍼포머에게 라이브 어쩌고가 나온다. 노래를 잘해야 가수라고.

 

내가 요즘 가수라는 말에 부쩍 불편함을 느끼게 된 이유다. 이효리라면 그래도 퍼포머로써 나름 입지가 작지 않을 텐데도 여전히 이효리에게 라이브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솔직히 나로서는 이효리가 잘하는가 별로 느끼지 못한다. 이효리의 음악이나 무대나 내 타입과는 거리가 있어서.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효리쯤 되는 퍼포머조차 가수라는 굴레에 갇혀 부당한 비판에 노출되어 있으니. 내가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 그런 건 어쩐지 불합리해 보인다는 거다. 이효리의 강점은 그런 데 있는 게 아닌다.

 

결국은 가수라는 말 자체가 문제라는 거다. 노래를 하는 사람. 노래를 한다. 그러나 모조리 노래 하나로 판단한다. 그의 강점이, 그의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음에도.

 

그래서 요즘 내가 주로 쓰는 말이 "음악인", 혹은 "아티스트". 아티스트가 가장 적당하겠다. 아이돌 역시 무대 위에서 아이돌을 연기하는 아티스트이니. 음악인도 아니고 가수도 아니지만 그들 또한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아티스트일 것이다. 가수가 아닌.

 

그나저나 확실히 내가 이효리에 대해 별 관심도 감흥도 없어서인지 무대를 봐도 별로 잘 못 느끼겠네. 좋다는 것도 나쁘다는 것도. 그런 쪽은 내 수비범위가 아니라는 거겠지. 내 취향은 항상 말하지만 좁고 얕다. 이효리는 그 범위 밖에 있다는 거고.

 

아무튼 아무나 붙잡고서 가수... 무대라는 게 노래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음악이라는 게 노래가 전부가 아니고. 하긴 말 많은 사람이야 그렇더라도 대중은 알아서 반응하고 있지만. 연주자는 아니더라도 퍼포머나 아이돌에 대해서는 노래와는 별개로 순수하게 즐기며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다. 쓸데없이 말많은 인간들이나 저리 떠들고 놀고 있지.

 

가수가 아니라 음악인이다. 그보다는 아티스트다. 무대에 서는 이상에는. 자기 무대를 갖는 이상에는. 무대는 노래만 하는 곳이 아니다. 상식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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