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가사 출처 : Daum뮤직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상당히 멜로디가 아름다운 노래였다. 장엄하고 웅장하고 듣기에 좋았다. 가사마저도 비장하여 남자의 가슴을 당기는 그런 것이 있었다.
솔직히 노래가 좋아서 불렀다. 멜로디가 좋아서,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그래서 곧잘 부르고 다녔다. 그 의미를 알게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서. 그때의 충격이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왈칵 눈물이 솟으려 했다.
앞서서 나가는 이들이란 누구인가? 뒤의 산 자가 그를 수식한다. 산 자가 뒤를 따른다면 앞서서 나가는 이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당시의 광주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 하나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 있는가. 누구 하나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해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사랑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고, 사랑해주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누리는 지위도 있었을 것이고 우러르던 명예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이름마저. 그 맹세 아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죽은 것인가. 그것도 국군에 의해서. 국민을 지키라고 있는 국군에 의해서. 국민의 아들이자 형제이자 친구인 그들에 의해서. 불의한 권력에 의해. 부당한 압제에 의해서.
그들은 당연히 하고자 하는 바를 했을 뿐이다. 그들은 당연히 해야 할 바를 했을 뿐이다.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그들의 정의감을, 불의에 대한 너무나 당연한 분노를 표출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돌아온 것은 무도한 폭력과 학살 뿐. 그리고 그것은 북한 괴뢰집단의 사주를 받은 불순한 무리들의 폭동으로 매도되어 묻혀 버렸다. 잊혀지는 것 같았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그것을 전한 것은 바로 광주와 인근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도 역시 대학에 진학했고 아직 뜨거운 정의감에 들끓던 또래의 젊은 영혼들과 만날 수 있었다. 묻혀졌던 진실은 순식간에 대학가로 전해졌고, 그들의 순수한 정의감은 분노가 되어 불의한 권력과 부당한 현실에 대한 항거로 이어졌다. 민주화의 열기는 70년대와도 또 다르게 더욱 뜨겁게 80년대를 불사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열망이 수많은 희생 위에 1987년 마침내 6.29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시간은 광주를 일깨웠고, 일깨워진 영혼들은 마침내 민주화를 이루며 당시의 주역 가운데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를 권좌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제한적이나마 자유가 찾아왔고,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며, 죽어간 이들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슬픔이고 아픔이고 분노였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그리고 앞서간 그들의 뒤를 쫓으며 동시대의 사람들은 - 그리고 그 후인들은 그들이 간절히 바라던 그 당연한 정의를 실현해갔다.
자유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차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당연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느렸다. 한 순간에 모두 된 것은 아니었다. 87년 이래 조금씩, 역시나 다시 크고작은 희생을 겪으며 산 자들이 먼저 간 이들의 뜻을 받들어 이루어낸 것이었다.
5.18은 그런 의미였다. 그것은 다짐이었다. 산 자들의 죽은 자들을 위한 다짐이었다. 아니 산 자들의 살아있는 자신을 위한 다짐이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그들을 잊고 - 모르고 살았던 시간들에 대한 후회로. 미안함으로.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그것을 이루어 갈 것을.
물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쓰여진 시기는 그보다 한참 이르다. 80년 백기완씨가 쓴 시에 김종율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가 이 노래였으니. 처음 음반으로 나온 것도 벌써 82년이었다. 그때는 바람이었던 것이 하나하나 현실로 이루어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이란 어떠할까. 영혼이 있었다면 그들도 기뻐했으리라.
그러나 2007년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5.18은 다시 시민으로부터 멀어지려 하고 있다. 대통령이 아닌 총리가 기념사를 한다고 한다. 공무원은 아예 참배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불법이고 처벌하겠다고. 광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도 금지되었다. 더구나 선거를 앞두고서. 과연 그같은 일들로 선거에 영향이 있다면 저리 당당히 공공연히 행동할 수 있었을까.
너무 긴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로부터도 벌써 30년, 6.29로부터도 2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버렸다. 많은 이들이 잊어버렸다. 광주가 어떤 의미인가를. 어째서 광주인가를.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하긴 민주주의따위는 개에게나 갖다주라는데.
그러나 역시 당시의 그분들에 빚을 진 후인의 한 사람으로서 - 어쩌면 어리지만 동시대의 사람이기도 한 나이기에, 그래도 작으나마 한 가지를 하려 한다. 정부가 금지시켰으면 내가 울려퍼지게 하리라. 정부가 부르지 말라 한다면 내가 부르리라. 최소한 나 혼자서만이라도.
앞으로 일주일 - 아니 그보다 오래 이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과 "타는 목마름으로""깊은 밤의 서정곡"만을 배경음악으로 깔 생각이다. 가신 임들을 위해서. 남은 우리들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많이들 스크랩했으면 좋겠다. 부르지 말라 했으니 더 크게 울려퍼지도록. 부르지 말라 했으니 더욱 널리 들리도록. 가신 임들의 영면을 빌며. 원도 한도 모두 훠이훠이 지우고 가시도록.
강물은 거슬러 흐르지 않건만 역사는 때로 거꾸로 흐르기도 하는 모양이라. 새삼 비장해지는 나 자신이 우습기만 하다. 여름이 다 되어 가건만 봄은 여전히 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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