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이지연 -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까칠부 2010. 6. 1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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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 이지연

잊는다는 슬픔보다 잊어야한다는 이유가
내겐 너무도 서글픈 아픔이었네
잊어야하는 마음을 가을비는 아는듯이
내게 찾아와 조용히 손짓을 하네
뺨을 스치는 찬바람도

보고픔에 목이메어 고갤 숙이고
내게 손짓하던 가을비도
할말잃어 차가운 눈동자에 줄을댄다
잊어야하는 그이유가

내게는 아픔이었네
내게는 아픔이었네

가사 출처 : Daum뮤직

 

87년은 돌이켜보면 또래의 녀석들에게 무척이나 행복했던 한 해였지 않았나 싶다. 그 전해인가 김완선이 데뷔했었다. 마치 전설의 고향에서 튀어나온 듯한 독특한 삼백안의 소녀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춤과 무대로 단숨에 또래 사내아이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말 그대로 그녀는 또래 녀석들의 마돈나였다.

 

그리고 이듬해, 부활이 해체되고 백두산의 소식이 감감하던 그해 김완선의 2집과 더불어 그녀가 나타났다. 김완선이 뜨거운 물이라면 그녀는 고요한 호수였다. 김완선이 숲과 산을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 열정적인 임프였다면 그녀는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부르는 창백한 달빛의 요정이었다. 이지연이었다.

 

참으로 대조적인 두 사람이었다. 아마 김완선이 이지연보다 한 살 더 많았던가? 그래봐야 아직 10대. 그 또래였다. 당연히 두 사람은 항상 함께 거론되었고, 그만큼 비교도 많이 되었다. 내 주위에서도 김완선이 좋다, 이지연이 좋다 다투는 녀석들이 적잖이 있었다. 물론 나는 둘 다 좋아했다. 내 이념은 원래 다다리즘이다. 다리는 많이 걸칠수록 좋다. 김완선의 열정도 좋았고, 이지연의 차분함도 좋았고, 김완선의 섹시함이 두근거렸고, 이지연의 청순함이 설렜고...

 

그러고 보면 80년대 중후반은 10대들이 대거 가요계의 전면에 나서게 된 시기였다. 아마 김승진이 가장 빨랐을 것이고, 그 뒤를 이은 것이 박혜성과 김완선... 물론 전에도 그런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이은하가 데뷔한 것이 13살이었고, 민혜경도 고등학생 때 이미 무대에 서고 있었다. 이미자 선생님도 아마 17살에 데뷔하셨던가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았고 어떤 구조화가 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데뷔했어도 그들이 부른 노래는 어디까지나 성인을 위한 성인가요였다.

 

그러나 80년대 나타난 10대들은 달랐다. 그들이 부르는 것은 그들의 노래였다. 그들 또래가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 어느새 성장한 10대는 또래의 정서를 담은 노래를 부르며 또래의 대변자가 되었다. 김완선은 조금 예외라 할 수 있겠지만 이때부터 10대는 10대만의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서태지를 거치면서 대중음악의 주류는 10대를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게 된다.

 

아무튼 이지연은 당시 과도기에 남학생들의 선망과 여학생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았던 최초의 아이돌이었다. 물론 김승진, 박혜성도 아이돌이라 할 수 있었다. 김완선이나 박남정도 엄밀히 따지면 아이돌로 분류해도 좋았다. 소방차 역시. 전영록과 조용필도 아이돌이었다. 그러나 최근 말하는 기획사에 생산된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이라면 이지연이 최초였다. 그녀는 유현상의 작품이었다.

 

백두산이 해체되고 유현상은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일본의 앞선 쇼비즈니스 산업을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우고 돌아온다. 그리고 일본에서 보고 배운 바를 바로 적용하여 한국 음악계에 하나의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니, 바로 그것이 이지연이었던 것이다. 음악에서부터 패션, 이미지메이킹까지 철저하게 기획사의 관리 아래 만들어나가는 최초의 아이돌이었다.

 

이지연의 모델은 아마 일본의 마츠다 세이코나 쿠도 시즈카 등의 청순가련형 아이돌이었을 것이다. 마치 동화책속에서 튀어나온 듯 가녀리면서도 곱상한 외모에 레이스와 리본 등의 여성성을 극대화하는 소품으로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던 아이돌의 한 전형이다. 요즘은 잘 없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도 일본에서도 이미 90년대 이후 멸종해 버린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 이지연의 청순가련형 아이돌의 계보는 이후 강수지와 하수빈이 잇는다. 다만 문제라면 청순가련형이라는 게 남자들에게는 어떤 로망을 자극하지만 여자들에게는 꽤나 반감을 사기 쉽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재수가 없다. 얼마나 당시 이지연과 강수지가 여학생들에게 시달렸는가는 각각 두 사람이 방송에 나와 과거의 일을 회상한 것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이지연이 그렇게 도망치듯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 버린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같은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했을까?

 

최고의 위치였다. 당시 이지연의 인기는 가히 따라올 사람이 없다 할 정도로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모든 남학생의 그야말로 우상이었다. 김완선이냐? 이지연이냐? 당시 남학생은 이 둘로 나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에 반드시 속해 있다고 보아도 좋았다. 아니면 나처럼 양다리 걸치던가. 그런데 그 최고의 위치에서 모든 걸 버리고 유부남과 미국으로 도망쳐 거기서 결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랑해서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고 싶어서.

 

그러고 보면 강수지와 하수빈 이후 청순가련형 아이돌의 계보가 끊긴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 하수빈도 루머가 장난 아니게 심했다. 심지어 여장남자라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만큼 여자들의 증오는 무섭다. 끝까지 가요계에서 버티며 활동한 것은 강수지 하나 뿐이었다. 하긴 강수지가 그러더라. 먼저 이지연이 욕을 먹고, 다음에는 하수빈이 욕을 먹었다고. 자신은 둘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편했단다.

 

예나 지금이나 안티들의 악성루머와 괴롭힘은 당사자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자살을 생각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그 상처로 미국으로 가서도 한참을 괴로워하고, 하수빈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은퇴했었다. 인터넷이 없었던 게 다행일까? 어쩌면 지금이나 당시나 그리 달라진 것이 없는지. 그런 주제에 누구도 반성도 사죄도 없이 떳떳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당시나 지금이나다.

 

당시 이지연의 도미와 결혼은 유현상에게 큰 타격이었다. 유현상은 이지연에게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심지어 락계의 후배인 김종서와 이근형을 꼬드겨 카리스마라는 밴드를 만들고서는 이지연의 백밴드로 써먹었을 정도로 락계에서의 자신의 체면마저 돌보지 않았다. 머리까지 잘랐다. 그래서 당시 소문이 돌기로 유현상이 이지연을 짝사랑한다는 소문까지 돌았었다. 그런데 그 이지연이 그렇게 떠나가 버렸으니.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아마 그런 것도 유현상이 트로트를 부르게 된 한 이유였을 것이다.

 

솔직히 내게는 별 충격이 없었다. 아마 당시도 지금과 비슷한 성격이 아니었나 싶다. 연예인으로서 좋아하지면 결국 자기 일이다. 더구나 내가 순정만화를 꽤 좋아해서. 그렇게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살겠다면 야반도주해서라도 함께 사는 게 또 당연했다. 오히려 멋지게 사는구나 감탄까지 하고 있었다. 남은 유현상이 불쌍할 뿐.

 

아무튼 이 노래는 유현상의 작사작곡이다. 이것과 "난 아직 사랑을 몰라""Love for night"등 유현상 곡이 꽤 되고, 유현상과 전영록의 친분으로 전영록으로부터 "바람아 멈추어다오"도 받았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유현상도 소녀적인 감수성의 곡을 참 잘 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중년에 접어든 남자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사며 멜로디며 지나치게 소녀적이다. 그래서 더 이지연이 안티를 불렀는지도.

 

지금도 아마 많은 남자들이 - 내 또래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많거나 적은 남자들이 그같은 로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켜주고 싶은 청순하고 가련한 미모의 소녀를. 긴 생며리와 갸름한 얼굴과 가냘픈 몸매와 풍성한 레이스와 리본의 공주같은 아가씨를. 그리고 목소리는 곱고 해맑다. 굳이 노래를 잘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노래를 잘 하지 못하는 불안불안함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도.

 

솔직히 노래는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강수지며 하수빈이며, 실력을 떠나 조금 노래가 답답한 편이었다. 목소리는 달달하니 좋았지만 그 목소리를 살리고자 내지르는 후련함을 억제한 느낌이었다. 하긴 그 깡마른 몸으로 내질러봐야 얼마나 지를 수 있었을까? 딱 여자스런. 딱 소녀스런 그런 목소리였다.

 

생각해 보면 간미연이 한때 안티를 부른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간미연도 딱 그 과였거든. 섹시하기에는 너무 말랐다. 귀엽기에는 또 너무 길다. 갸름하니 딱 남자들 좋아할 취향이다. 다만 노래는... 확실히 노래는 간미연이 잘했다. 아마 베이비복스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하수빈으로 맥이 끊기지 않았다면 그 다음 계보는 간미연이 잇지 않았을까?

 

지금도 꿈꾼다. 그런 그야말로 소녀스런 곱고 아리따운 아가씨를. 누가 있을까? 후보자는 있다. 다만 과연 할 생각이 있는가가 문제일 뿐. 털털함으로 여자들에게 더 사랑받는 지금의 위치를 포기할... 아, 요즘 여자들은 당차서 당시처럼 질투하거나 하지 않을 지 모르겠다. 이지연인가? 김완선인가? 둘 다인가?

 

한때 나의 일상의 상당부분을 - 그 와중에도 전부라 하지 않는 것은 다다리즘의 특권이다. - 차지하고 있었던 한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 아름답고 곱고 청순했으며 가련했던. 보호해주고 싶었으나 손에 닿을 수 없었기에 더 아련했던. 지금도 그 시절을 꿈꾼다. 꿈은 시간을 거스른다.

 

 

어쨌거나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노래다. 유현상 작사작곡이라. "여자야""갈바람""갈테면 가라지" 유현상 작사작곡이다. "반말마""In my Life""주연배우""말할걸" 유현상 작사작곡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난 아직 사랑을 몰라." 유현상 작사작곡이다. 그냥 웃기는 사람은 아닌 거다. 새삼 요즘 걸그룹에 맞는 곡이나 하나 써 봤으면... 사운드야 요즘 트랜드에 맞게 다른 작곡가에 맡기더라도 그 작사와 멜로디의 센스는 정말 아깝다. 원조 아이돌기획자다운 감각이랄까? 진정 아이돌스런 곡이라 하겠다.

 

그나저나 이지연이 한국을 찾았다는데... 뭔가 많이 그립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뜻한 바 이루기를. 여전히 곱고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홀로 선 여성으로서의 향기가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말해준다. 반가움과 그러나 약간은 어색함과. 시간은 이렇게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된다.

 

원래는 4월에 쓰려 했던 글이었다. 참 많이 늦었다. 한 번 꼬였던 터라. 한 번 꼬이고 그래서 다시 한 번 접고 나면 이어 쓰기가 그리 쉽지 않다. 두 개로 나눠서 이지연과 아이돌에 대해서도 써보려 했는데 하나로 올리고 나머지는 다음을 기약하련다. 이거라도 올려야 다음을 나가지. 그런 고로...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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