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타블로 사태 정리(7) - 관용과 불관용...

까칠부 2010. 6. 11. 15:38

불관용에는 관용이 없다. 왜? 불관용을 관용하는 순간 관용이 아니게 되니까.

 

어디 흑인을 차별하는 사람이 있다. 흑인을 차별하여 불이익을 주고 심지어 학대한다.

 

말한다.

 

"이건 나의 다양성이야. 권리를 인정해줘."

 

과연 그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관용은 인정될 수 있는가?

 

간단한 거다. 다양성을 인정하란다. 취향을 존중하란다. 다른 의견도 들어달란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한 개인을 단정하고 단죄하고 있었다. 미리 예단하여 처벌하려 들고 있었다. 과연 그런 것들에 대해서까지 관용해야 하나?

 

그러면 이건 어떤가? 이번에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그 범인이 말한다.

 

"이것도 취향이야. 가치관이 다른 거야. 존중해줘."

 

물론 그 인권은 존중한다. 그러나 그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처벌해야 한다. 왜? 그런 행위를 용납한다면 그 사회가 유지되지 못하니까.

 

한 개인에 대한 집단의 폭력을 과연 다양성으로 인정해주어야 할까? 가치관으로 존중해주어야 할까? 그런 식으로 예단하여 단죄하는 폭력이 증가하게 되면 그 사회의 다양성은 유지되는가?

 

상식적인 이야기다. 스스로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하라.

 

하여튼 개자식들이다. 그렇게 할 소리 못 할 소리 다 지껄이던 인간들이 이제 와서 말 심하단다. 말 너무 심한 게 아니냔다. 존중해달란다. 뭐 이런 쓰레기들이 다 있나?

 

그러나 납득했다. 그래서 개티즌이다. 괜히 개티즌인 게 아니다.

 

아직도 이런  주장도 있다더라... 유아포르노도 취향이라는 개새끼들이 있다. 어떤가?

 

진짜 머리는 생각하라고 달려 있는 거다. 좀 생각을 하고 살라고.

 

자기는 관용받고 싶고 남들에게 관용하기는 싫고. 내가 쓰레기라는 단어는 무척 싫어하는데.

 

그냥 같잖다. 나는 네티즌 아니다.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