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이라 쓰고 우매한이라 읽는다. 근거없는 오만은 우매함이다.
그런다.
"왜 타블로는 나서지 않고 자꾸 다른 사람이 나서서 인증하느냐?"
그러면 묻고 싶다.
"그 사람들도 나서서 찾는 걸 왜 당신들은 못 찾는가?"
못 찾는 게 아니지. 안 찾는 거다.
이미 타블로는 방송에 나와 졸업장까지 보여주었다. 어지간해서는 학교 졸업여부는 졸업장 하나면 끝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었다. 누구에게 입증의 책임이 있을까?
그랬다면 먼저 증거를 모았어야 했다. 이랬을 것이다가 아니라 확실한 증거여야 했다. 비슷한 시기 스탠포드 영문학과를 다닌 사람의 증언이나, 타블로가 스탠포드에 없었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들, 하다못해 NSC를 통해서 증명서를 받으려는 노력이라도 했어야 했다. 누가 했는가?
결국 타블로가 나서기도 전에 그 개티즌과 같이 한데 묶여 네티즌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알아서 다 찾아 인증해 보여주고 있었다. 굳이 타블로가 아니어도 된다는 소리다. 그런데 하는 말,
"논문번호,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여권..."
논문은 없다고 말했고, 졸업증명서는 NSC에서 떼는 그것 맞고, 성적증명서는 보여줬고, 여권? 웬?
그런데 여직 그 소리 떠들고 있다. 왜? 안 듣는 거다. 남의 말은 죽어라 안 듣는 거다.
논란의 와중에도 그랬다. 속속 그들이 제시하는 논거들이 박살나고 있었다. 타블로의 허풍에 대해서조차 그것이 과장되었으며 왜곡되었음이 직접 보고 확인한 사람들에 의해 부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어땠던가? 계속 한 소리 또 하고 반복하고 있었지? 왜일까?
원래 대화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듣는다는게 그냥 귓구멍으로 소리를 통과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더하는 것이다. 팔짱을 끼고 앉아서,
"너 한 번 말해봐?"
그런 건 대화가 아니다. 묻고자 한다면 최소한 들을 수 있는 데까지는 먼저 듣고 이해한 다음에 묻는 거다.
인터뷰 그냥 찾아가서 막 던진다 생각하는가?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기야 하다. 그러나 인터뷰를 할 때도 사전에 상대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파악해 놓고 간다. 먼저 상대를 이해해야 질문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스스로 이해할 생각도 다가갈 생각도 없이 한 번 이해시켜 봐라. 어여 이리 와 봐라.
이게 뭐냐면 자라난 환경 탓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어른들께 뭐라 하면,
"어디 감히 말대답이야!"
학교에서 선생님께 뭐라 하려 하면,
"어디서 감히 선생님한테..."
군대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에는 대화란 없다. 수직적 관계 속에 일방적인 전달과 수용만 있을 뿐.
"뭣으로 밤송이를 까라고 해도 깐다."
네티즌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어찌 감히 밍기적거리고 있느냐? 네티즌님께서 궁금하시다 하지 않느냐? 어여 타블로 나와 대령해서 묻는 말씀에 대답하라.
자기가 들을 생각은 없다. 자기가 이해할 생각도 전혀 없다. 타블로더러만 이야기하라. 이해시키라. 그러고서는 하지 않는다 지랄.
악플러라 하기엔 그 범위가 너무 넓다. 제법 인지도 있는 인사들도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같은 거다. 타블로는 연예인이다. 연예인은 대중에 봉사한다. 네티즌도 대중이다. 따라서 대중이 바라면 뭣으로 밤송이를 까라고 해도 까야 한다. 거부하는 것은 물론 늦장부리는 것도 안 된다. 나는 전혀 생각이 없으니 타블로가 알아서 해라.
머릿속에 박혀 있는 거다. 연예인따위... 그리고 네티즌님...
하긴 이런 모습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한 음악인이 앨범을 냈다.
"이건 내 취향에 안 맞는다."
좋다. 그런데 여기서 나간다.
"왜 이런 음악을 했는지 모르겠다."
"저런 음악을 했어야 했다."
그 음반은 음악인 자신이 낸 것이거든? 들을 생각도 없다. 이해할 생각도 없다. 내가 내린 결론에 아예 상대를 끼워맞추는 것이다.
오죽하면 신해철이 그럴까?
"최소한 이름만 보고 음반을 사주는 음악인이 100명은 되어야 하는데..."
어딜 감히. 내가 원하는 음악을 하는가의 여부가 중요하지 내가 음악인의 음악을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내가 리플 안 읽는 이유도 그것이다. 제목만 본다. 첫줄만 본다. 세 줄 본다. 단어 하나 보면 끝이다. 도대체 읽지도 않고 다는 리플 내가 왜 보고 있어야 할까? 리플의 길이는 본문의 이해도와 반비례한다. 거의 같다 보면 된다. 왜? 답은 자기 안에 있으니까. 한 눈에 보자 마자 자기 할 말부터 떠오른다.
조금만 더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면 어떨까? 연인과 대화할 때 어떻게 하는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최대한 집중해 듣는다. 진정 좋아한다면 말하기보다 드기를 더 좋아할테지.
물론 연예인에게 그러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듣기 위한 작은 노력 정도는 필요치 않을까? 타블로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왜 의혹을 제기하기 전 사실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았는가?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타블로만 어려운 게 아닌 게 아니다. 의혹을 던진 네티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전히 하는 소리...
참 인간들이 이렇게 오만하다. 음반을 팔아주는 대중? 과연 그 가운데 몇이나 실제 음반을 샀을까? 대중이란 허상의 뒤에 숨어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던 그같은 유아적 오만에 면죄부를 주는 인간들은 또 무어고. 타블로는 4년 전 이미 찌질이 하나 나와 설칠 때부터 인증했어야 했다?
참고로 어느 분께서도 다른 사람 말 죽어도 안 듣는다. 오로지 자기 할 이야기만 할 뿐이다. 듣지는 않고 이야기할 때는 사회의 공적 자원까지 들여 이야기하고. 어쩌면 이리 닮았을까?
타블로 주위에서 이미 인증해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혀 처음 보는 근거들이라는 자체가 어이없는 거다. 무려 4년이나 붙박이로 안티질하던 것들이. 그런 정도의 정보도 없다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나 역시 가장 재수없는 건 또다시 생각없는 양비론자들.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혼자 튀어보고자 점잫기 훈장질이나 하던 인간들. 정작 옹호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결국 타블로도 인증했고.
선후는 바로 따지자. 과연 타블로에게 인증을 요구한 측에서는 철저한 사전조사를 하고 있었던가?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입증하라 요구하고 있었던가? 그 다른 네티즌들이 찾아 인증한 그것들을.
타블로 이외에 타블로를 옹호하려 나서서가 아니라 바로 그것이 정상이라는 거다. 까기 전에 먼저 증명.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인터넷 보고 있으면 왜 우리나라 현실이 이런가 알게 된다. 과연 이래서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이렇구나. 타블로가 당하는 그 모습들이. 구조적이다.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타블로 자신이 비난의 타겟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심한 일이다.
대중이라는 이름 뒤에 갇혀 있는 것으로 히어로가 되고 마는 게티즌이라는 거다.
그냥 지나치려다 어이없는 소리들이 있어서. 어이가 다 없다. 치료가 아닌 방송의 목적이구나.
그냥 웃는다. 한심해서.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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