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사회에서 폭력이란 사적 폭력이 뿐이었다. 전근대사회에서 군대든 어떤 공권력이든 단지 권력자의 사유물이었지 그 사회이 공적 기구는 아니었다.
근대사회와 전근대사회를 나누는 기준이다. 전근대사회에서 그럴 능력만 되면 얼마든지 사적 폭력을 소유하고 휘두를 수 있었다. 그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 폭력은 국가가 독점하여 소유하게 되었으며 모든 사적폭력은 국가의 공적 폭력에 대항하는 항거의 수단 이외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간단히 무협소설을 보면 될 것이다. 여자친구가 강간당했다. 복수한다고 강간범의 집으로 쳐들어가 갓태어난 아기까지 모두 때려죽인다. 통쾌한가? 요즘 난 이래서 무서워서 무협소설 못 본다. 과연 이런 일이 현대사회에서 일어났을 때 어떻게 될까?
부모를 죽인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그러나 이미 고대사회에서부터 부모를 죽인 원수를 갚았더라도 살인을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았다. 어쨌거나 살인이니까. 만일 처벌을 하고 싶다면 국가에 의뢰할 일이다. 개인이 해결할 것이 아니라. 하물며 지금이야.
가끔 보면 어이없는 글을 보게 된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블로거 가운데도 그런다.
"타블로가 진작 나와 해명했으면..."
"타블로가 미적거리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커졌다."
그 근거란 뭐냐면 네티즌에 대한 맹신이다. 네티즌의 정의와 폭력에 대한 맹신이다. 네티즌은 옳고 옳기 때문에 그 폭력은 정당하다. 설사 그들의 주장이 틀렸더라도 틀린 것이 확인되는 그 순간까지는 정당하다.
이게 뭐와 같느냐면 전에도 말한 전근대사회에서의 수사와 같다. 신고가 들어온다. 피의자가 잡혔다. 그러면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고문하는 것이다. 때리고 주리틀고 불로 지지고. 그래서 아니면 마는 거고. 오히려 그런 의심받을만한 행동을 한 것이 잘못이다. 권력은 항상 옳으므로.
그러나 말하지만 이 사회 어느 누구도 네티즌이라고 한 개인을 단죄할 권리따윈 주지 않았다. 멋대로 의심하고 멋대로 추궁하고 멋대로 모욕하고 멋대로 상처주고... 정히 의심가고 진실이 필요하면 경찰에 의뢰할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것을 공식적으로 허락받은 것은 경찰이므로. 공적인 영역이면 모를까 남의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까지 네티즌이 단죄할 권한이 있는가?
누구도 네티즌이라고 그런 권한을 준 적도 없고 사람들이 반드시 그에 따라야 할 의무도 없다. 그런데 당연하게 여긴다. 네티즌이 원하면 들어주어야 한다. 네티즌이 요구하면 들어야 한다. 하다못해 4년 전 찌질이 하나가 달라붙어 헛소리 늘어놓던 그 순간에 이미 인증했어야 한다.
이미 졸업장을 공개했다. 단지 그 졸업장을 못 믿겠다는 것 뿐이다. 아무 근거 없이 자기만의 이유로 그것을 못 믿겠다고 저 난리를 피운 거다. 그런데 네티즌이니 알아서 기어야 한다? 네티즌이 요구하니까 알아서 그에 따라 공개해야 한다? 이 뭔 개방구로 지하철 굴리는 소리인가?
하긴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는 거다. 아직도 원시적인 사적 폭력을 신봉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적 폭력의 정의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다. 마치 뉴스에 살인범에 대해 나왔을 때 저 새끼 때려죽이라는 소리들처럼. 근대화된 어느 사회에서 흉악무도한 살인범이라고 사적으로 처벌하던가? 그러나 저들이 사는 세계는 그런 세계라.
그 머릿속이... 하여튼 이래저래 생각할수록 입맛이 쓴 사건이었다. 한국사회의 바닥을 보여주었달까? 그나마 좀 생각도 하고 글도 쓴다는 인간마저... 하긴 그래서 인터넷이다. 바로 저런 모습들이 개티즌인 것이다. 협객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떼강도들. 말이 협객이지 그건...
이래서 무협소설이 애들 교육에 안 좋다. 하여튼 애들 보는 앞에서는 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 모든 무협소설을 청소년 금지도서로 지정해야 한다. 저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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