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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밥주기...

까칠부 2010. 6. 25. 02:28

얼마전부터 근처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다.

 

원래는 고양이를 셋이나 기르고 있다. 그 가운데 막둥이가 또 그렇게 들인 업둥이다. 창가에 와서 매일같이 빤히 쳐다보길래 밥 주다가 정 들어서 들여 기른 놈이다.

 

그러나 솔직히 길고양이 밥 주려면 그렇게 눈치가 보인다. 내 집도 아니고 세 사는데 길고양이에 밥 주는 것 괜히 안 좋게 보면 나만 곤란한 것 아닌가. 고양이보다는 역시 내가 중요한 거다. 그래서 막둥이놈 말고는 그동안 굳이 길고양이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었다.

 

그런데 지난 겨울 1월이었지. 눈이 그렇게 내렸다. 아예 땅이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였다. 그 추운 날에 먹이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텐데 눈까지 내렸다. 못 먹을 걸 먹고 죽은 고양이가 그때 그렇게 많았다. 쥐 잡으라는 쥐약을 고양이 잡는데 쓰고 배고픈 고양이가 그것을 경계심 없이 먹은 결과였다.

 

안 되겠다. 그래도 집 근처 사는 놈이라도 먹여살리자. 그래서 조금씩 밤에 몰래 남들 보지 않게 밥을 주었다.

 

처음에는 누가 먹는지도 몰랐다. 그냥 밥을 놓으면 알아서 다음날이면 사라지길래 누가 와서 먹기는 하나보다. 지난달에야 겨우 녀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살? 두 살이 채 안 되어 보였다. 우리집 큰 놈과 닮은 놈이었다. 워낙 가출을 좋아하는 놈이러 설마 그놈이 나와 저러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집에는 큰 놈이 떡하니 밥달라 보채고 있고.

 

한 번은 문 열어놓으니까 집안까지 들어오더라. 이제는 당연히 밥을 주는 게 우리라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보답이 없는 것일까? 막둥이 녀석은 밥 몇 번 주니까 쥐를 물어다주던데. 그 쥐가 막둥이를 집에 들인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아무튼 그래서 요즘 보이지 않는 신경전중이다. 오후 여섯시면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문앞 계단에 웅크리고 나를 기다린다.

 

"어서 밥내놔!"

 

그러면 그런 녀석을 보고 나는 우리집녀석들 밥을 헐어 녀석 먹으라고 집앞에 내놓는다. 내가 보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 내가 보지 않을 때만 녀석은 밥을 먹는다. 냠냠냠... 가끔 마트 가는 길에 녀석을 보고 밥을 준 뒤 볼 일 보고 들어오면 문 앞에서 또 신경전이다. 나는 집에 들어가야 하고 녀석은 밥을 먹어야 하고... 양보하고 싶지만 또 내가 보이면 녀석이 밥을  또 못 먹으니까.

 

밥을 다 먹고도 그냥 떠나는 법이 없다.

 

"더 없어?"

 

당연히 없지. 언제 이사갈 지 모른다. 언제 더 밥을 주지 못하게 될 지 모른다. 괜히 내가 주는 밥에 의존하다가 야생성을 잃으면 오히려 살기 불편할 뿐이다. 막둥이만 없었어도 들여 기르겠건만.

 

아무튼 재미있다. 이래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불가근불가원 더 가까워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은 묘한 느낌이랄까? 길들여진다는 게 이런 것인 모양이다. 그저 놓아둔 밥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 누가 먹겠거니. 그러다 그것을 먹는 녀석을 보고 확인하고, 점차 녀석을 가까이 느끼고. 다만 그 녀석도 그런가는... 가끔 창가에 와서 우리집 녀석들과 그리 소리 내며 싸우더란 것이다.

 

아마 지난 겨울 그렇게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시작되지 않았을 인연이 아니었을까. 이런 걸 두고 인연이라 하는 것일게다. 도대체 그 녀석과 나와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길래.

 

다만 아쉽다면 내가 조금 더 열심히 살아 지금 더 성공했다면 녀석은 물론 동네 고양이들에게 조금 더 많은 것을 베풀 수 있을 텐데. 자본주의 사회란 선량하기 위해서도 자본이 필요한 사회다. 조막만한 녀석들이 때도 꼬질꼬질하게 음식물 쓰레기나 뒤지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다른 건 몰라도 괜히 쥐잡는 약으로 고양이나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양이 몇 마리 더 살아있다고 일상에 피해를 주는 건 그리 없다. 살자는 것 아니던가.

 

 

추천, <기묘한 고양이 쿠로>라는 만화가 있다. 상당히 동화풍의 그림의 만화인데 이게 진짜 고양이를 잘 묘사하고 있다. 우리집 녀석들이나 인근 길고양이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고 있다. 조금 마이너한 편이라 대여점에서도 찾기가 힘든데,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정말 강추다. 재미있다.

 

덧, 사진을 찍고 싶은데 녀석이 워낙 경계심이 강해서 몇 번 실패했다. 다음에는 기필코 사진을 찍어 올리리라. 잘 생긴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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