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그레이트마징가 저화질 동영상이 떴길래 옴니아2에 담아두고 틈틈이 보고 있다. 워낙 어려서 본 것이라 사실 기억은 별로 없다. 처음 보는 내용들도 많고, 기억에 없는 것들도 많고...
그런데 보면서 느낀 게 이게 참 구식이다... 예전 로보트 카니발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에도말기 도쿄를 배경으로 증기기관 로봇이 활약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마치 그것을 보는 느낌이다. 일단 계기판이 죄다 아날로그다. 요즘 전투기에 기본적으로 달려 있는 HUD나 통합형 디스플레이는 커녕 매번 버튼식...
더 어이가 없는 건 그레이트 마징가 조종석에는 안전벨트가 없다. 기계수와 싸우는데 맞으면 맞는대로 좌석에서 튕겨나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상식. 그레이트 마징가 조종석은 무척 넓다. 러시아제 폭격기처럼 조종석 내부에 화장실이며 조리실까지 갖추어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웃긴 것이 도대체 뭣한다고 그렇게 복잡하게 출동하는가 말이다. 어려서는 그렇게 멋있었다. 긴 튜브통로를 미끄러져 브레인콘돌에 타고, 브레인콘돌을 몰아 그레이트 마징가의 머리부분에 결합... 그런데 그거 그냥 그레이트 마징가 머리에 올라타서 가면 끝나는 것 아닌가.
하긴 그런 게 또 미학이겠지만. 어쩐지 딱딱 맞아떨어지면 재미없다. 지금도 괜히 최첨단의 디지털 디스플레이보다는 아날로그 계기판이 훨씬 눈에 당긴다. 최신 슈퍼컴퓨터보다 릴테이프가 돌아가는 구식 중형컴퓨터의 이미지가 더 가깝고. 그러고 보니 그레이트 마징가에서도 텔렉스다. 아니 그레이트 마징가만이 아닌 우주전함 야마토에서도 텔렉스를 쓰고 있다. LCD는 물론 PC도 핸드폰도 없는 참 애매한 시대.
벌써 이렇게나 와 버렸다. SF보다도 멀리. 패트레이버가 아마 지금부터 11년 전이지? 아톰이 깨어난 것도 아마 7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스페이스오딧세이는 9년 전 이야기. 또 뭐가 있더라...?
참 그림도 유치하고, 대사도 유치하고, 줄거리도 유치하고... 아마 10년 전만 같았어도 그닥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으리라.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런 유치함을 좋아하게 되어서... 유치함이란 또한 순수함이기도 한 터라. 너무 능숙하면 또 징그럽다. 요즘의 컴퓨터까지 동원된 너무나 깔끔한 그림들은.
아, 그러고 보니 그레이트 마징가가 그리 오래지는 않다. 내가 즐겨 하는 게임 가운데 하나가 슈퍼로봇대전이라. 플스2 이후로만 못해보고 이전 시리즈는 다 해 보았다. 아주 최근까지도. 그레이트마징가와 마징가제트는 성능을 떠나 내가 항상 마지막까지 데리고다니며 쓰던 놈들이다. 철벽 걸고 필중 걸고 적진에 던져놓으면 꽤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건담패밀리와 마찾가지로 자코처치용.
추억이라기에도 너무 먼...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만화영화. 애니메이션이 아닌 만화영화다. 어떤 그리움? 유치함을 사랑할 줄 아는 나이가 된다는 건 그런 의미인 모양이다. 재미있었다.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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