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방송출연을 삼가던 언더그라운드 실력자들...

까칠부 2010. 6. 27. 16:40

지금도 그런 게 있지만 예전에는 실력이 있는 음악인이면 굳이 방송출연을 않는다는 그런 이미지가 있었다. 거꾸로 방송출연을 않는 언더그라운드에 진정한 실력자가 있다는 이미지도 있었다.

 

사실이었다. 굳이 방송출연을 하지 않아도 밤무대에서 최고의 페이를 받고, 굳이 방송출연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음반을 팔고 공연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가수들이 있었으니. 이승환이 방송에 나와 자기를 알리고 음반을 100만 장이나 팔았던 게 아니다. 이문세도 가요순위프로그램 출연 없이 수십만 장 팔았었다.

 

당연히 그런 가수들은 그다지 방송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첫째 일단 방송에 출연하려면 곡의 길이를 맞춰가야 했다. 4분 이내, 대개는 3분. 부활 1집에 타이틀곡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아닌 '희야'인 이유였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무척 길다. 기껏 만든 음악을 줄여서 불러야 하는 건 또 무슨 수모일까?

 

그리고 또 하나가 그놈의 음향. 특히 밴드의 경우는 세팅 자체가 안 되어 있어 악기를 들고 가서 MR틀고 핸드싱크 립싱크하기 일쑤였다. 라이브란 자체가 힘들었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순위프로그램의 경우는 한 번에 출연하는 팀만 여러 팀이다. 그런데 그 팀마다 일일이 세팅을 바꾸고. 현실적으로 무리다. 그래서 아예 립싱크, 핸드싱크를 권장했다. 아이돌 MR에 핸드싱크한다고 비웃을 게 아니다. 그거 일일이 세팅 맞추고 하려면 방송 못한다. 더구나 자신들에 맞춰지지 않은 세팅에 라이브한다는 자체가 웃기는 것이고.

 

그래서였다. 물론 싸우기도 많이 싸웠을 것이다. 김태원이 어느 인터뷰에서 그러더라.

 

"그동안 많이 싸웠는데 이제는 지쳤다."

 

김태원도 이제는 방송에서 핸드싱크한다. 8집 시절에는 이승철도 립싱크했었다. 환경이 안 따라주는 걸. 이승환도 라디오스타 나와서 그냥 립싱크했다. 환경이 되어야지.

 

음악이란 게 소리다. 자기가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기타를 들고 이렇게 쳤는데 소리는 저렇게 나더라. 음악하는 입장에서 그보다 견디기 힘든 게 없다. 그래서 아예 방송에서는 립싱크, 핸드싱크하고, 콘서트에서만 라이브하는 가수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책임은 가수가 떠안았지만.

 

뭔놈의 가수만 가지고 지랄이더라. 라이브 안 된다. 립싱크만 한다. 물론 라이브 안 돼서 립싱크하는 가수도 있었지만, 방송국의 여건 자체가 안 돼서 차라라 최고의 소리를 들려주고자 립싱크하는 가수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욕은 가수가... 라이브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던가.

 

그래서였다. 차라리 방송출연을 삼가자.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는 제대로 된 무대에만 서자. 공연을 주로 하는 콘서트형 가수란 것도 그래서 나타났다. 어쩌는가. 제대로 음악을 하자면 방송국에서는 안 되는데.

 

서태지도 아마 그래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방송에서는 립싱크했었을 거고, 솔로로 돌아와서는 아예 사전녹화에 관련한 전권을 자기가 갖겠다 했었던 것일 테고.

 

음악인에게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면, 그를 위한 최선의 준비를 갖출 책임이 방송국에는 있다. 방송국 PD와 스탭과. 그러나 워낙에 방송국이란 강자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출연하려고 너도나도 줄을 선다. 말이 음악적 자존심을 위해 방송에 출연 안한다지 출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모든 책임은 음악인에 떠넘기고. 대중도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나는 그래서 지금도 차라리 립싱크를 하는 쪽이 더 낫지 않겠나 생각할 때가 있다. 되도 않는 라이브 되도 않는 환경에서 듣느니, 어차피 MR로 듣느니 그냥 깔끔하게 립싱크로 듣는 귀나 괴롭지 않게 하자.

 

다들 꽤 오랜 시간 훈련이 되어 있던 터다. 그냥 아무렇게나 데뷔한 경우란 드물 것이다. 최소한의 라이브는 다들 되겠지. 그러나 충분한 준비 없이, 제대로 된 여건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라이브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런데도 라이브를 잘 하라? 차라리 립싱크로 기왕에 최선을 듣자는 거다.

 

아무튼 왜들 그렇게 음악방송 PD에 빙의된 경우가 많은지. 음악방송PD의 역할이란 음악인이 최고의 무대를 보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PD의 역할이 있을 때 음악인은 편안히 자신의 최선을 보여주는 것이다. 음악인의 실수는 곧 PD의 실수다. 하기 싫으면 말던가. 여건이 안 되면 다른 수단을 찾던가. 도저히 안되겠어도 결국에 그 책임은 PD에게 돌아가는 거다.

 

과거 카라의 무대도 그랬다. 진짜 욕 나오도록 말도 안 되는 무대였는데, 그 무대의 책임은 결국 PD에게 있었다. 사전준비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리고 편곡조차 제대로 살피지 않은 작곡가 방시혁에게 책임이 있었고. 그러나 욕은 누가 들어먹었는가. 참 PD는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냥 대충 발로 무대 만들어도 그 모든 책임은 음악인에게 떠넘겨지니.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여전히 개선할 생각은 없고.

 

다시 말하지만 차라리 립싱크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다. 준비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라이브따위. 또 저런 문제가 터질 수 있으니 그냥 사전녹음으로 립싱크하고 깔끔하게 끝내는 게 낫겠다. 물론 그렇더라도 모든 책임은 음악인에 돌아갈 테지만.

 

아마 입장의 차이일 것이다. 대충 만들어진 무대란 자체가 정상이라 여기고 단지 가수의 최선만을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충 만들어진 무대란 비정상이고 그런 상황에 어떻게 가수에게 최선을 바랄 수 있는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나는 그런 것을 너무 많이 보아 왔고.

 

뭐 이제는 음악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방송출연을 삼간다는 말 자체가 의미없어졌지만. 음원을 팔려 해도 방송을 타야 한다. 26년차 밴드가 방송에 나와 핸드싱크 하면서까지. 씁쓸하달까.

 

내가 인지하고도 도대체 한 세월이다. 그 동안 나아진 것은 전혀 없고, 나아질 기미도 전혀 없고, 대중도 그에 대한 요구가 전혀 없다. 그저 보이는 가수만 탓할 뿐. 시간은 뭣하러 흐르는가. 하여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