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이라도 어감이 다르다.
16강에 올랐다. 16강에 그쳤다.
16강에 성공했다. 8강에 좌절했다.
불과 10년 전이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월드컵 1승에 그리 목말라했다. 2002년에도 목표는 홈어드밴티지를 업은 월드컵 16강이었다. 4년 전에도 우리의 목표는 월드컵 원정첫16강이었다.
어떤가? 우리는 16강을 이룬 것인가. 8강에 좌절한 것인가. 16강에 성공한 것인가. 8강에 실패한 것인가. 16강에 오른 것을 기뻐해야 하는가. 8강에 실패한 것을 아쉬워해야 하는가.
선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6강에 올랐으니 잘했다 할 것인가. 8강에 오르지 못했으니 못했다 할 것인가. 그들은 승자인가 아니면 패자인가.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들이다. 물론 더 잘하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과연 이들을 대신했을 때 더 나은 결과를 낼 것인가.
실수도 했다. 잘못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축구다. 실수도 저지르고 잘못도 저지르는 것. 반칙도 하고 실축도 하고. 그 모든 것이 축구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실력이고, 그로 인한 것이 결과다. 16강이란 그 모든 것을 포함해 우리가 이루어낸 최선인 것이다.
물론 실수했으면 야단도 쳐야 한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욕도 해야 한다. 그것도 스포츠를 즐기는 한 방법이다. 스포츠란 투쟁이다. 그래서 즐기는 감정도 거칠다. 그렇다고 과연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
잘 한 것이다. 이만하면 충분히 할 만큼 한 것이다. 우리의 실력이 이 만큼이었던 것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그러고들 있다. 대부분 이미 나온 결과에 대해 기꺼이 받아들이며 감사하고 있다. 인정하고 기뻐하고 있다. 단지 아주 소수가.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아쉬우면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부족하다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 4년이나 남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잊지 않도록. 그 열망을. 지금의 아쉬움과 서운함을.
별로 축구를 즐기지 않는 입장에서 이런 소리 하는 게 민망하기는 하지만. 띄엄띄엄 보기는 했지만 나 역시 즐거웠다. 기뻐하고 환호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그 모든 것이 축구라. 스포츠라.
꿈은 언제고 깨기 마련. 축제는 언제고 끝나기 마련. 슬슬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여전히 축구를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월드컵으로, 국가대표에만 관심이 있던 이들은 조금 더 먼저 일상으로 그리고 축제가 끝나면 모두가 함께 일상으로.
즐거운 꿈이고 축제였다. 16강이라는 결과가 있어 더 좋았다. 선수 이하 코칭스태프, 남아공까지 날아가 응원한 서포터스,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대표팀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16팀 가운데 하나다. 기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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