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플러를 싫어한다. 마녀사냥에 대해서는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고 혐오한다. 증오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모든 종류의 비판에 대해 반대하냐면 그건 아니다. 나도 비판을 즐긴다.
원칙이 있다. 첫째 대상을 한정할 것. 둘째 사실을 적시할 것.
한 마디로 타블로에 문제가 있으면 타블로만 욕하란 거다. 그 가족을 들먹이지 말고. 박재범이 잘못했으면 그 부분에 대해 그 만큼만 책임을 물면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마녀사냥이 된다. 말했듯 전부 제대로 지키지 못한 부분들이다.
반면 그것이 이미 사실로서 확인되었고, 구체적인 증거가 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위해가 되는 행위라 여겨진다면 그에 대한 대상을 한정한 비판을 유효하다. 권상우의 뺑소니에 대해 손태영을 비난하는 것은 안 되지만 권상우 자신의 비도덕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옳은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고 뺑소니를 저지른 사람에게 좋은 말만 한다는 건 무리다. 김길태며 유영철이며 김수철이며 욕을 들어야 한다. 단,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그들 자신에 한정해서.
그것은 마녀사냥이 아닌 정당한 도덕적 징계가 된다. 도덕적인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에 대한 비난과 소외는 그 사회의 정당한 권리라 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해 말하지만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이번 고양이학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내가 아쉬워하는 건 개인적인 문제까지 끄집어내어 비난하는 경우들이다. 그 직업을 들먹이고... 그러나 같은 직종에 종사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런 것은 도덕적 징계에서 벗어난 행위라 할 수 있다.
고양이를 학대한 것이 왜 그렇게 큰 문제인가. 생명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대한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개인의 간격이 좁은 사회다. 불특정다수의 익명과 마주할 기회가 전보다 더 많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어 볼 생각이다. 여기서 할까? 다른 블로그서 할까? - 인지되지 않는 대상에 대해 과연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것은 인지되지 않는 또다른 대상인 작은 생명에 대한 대처로 알 수 있다. 약한 생명을 함부로 대하면 약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 약한 동물에 대한 학대에 사람들이 느끼는 혐오감이란 그를 위한 경계다.
즉 이에 대한 도덕적 징계는 그러한 행위가 나쁘다는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법으로 따지면 판례다.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이렇게 큰 문제가 된다. 그러나 역시 말하지만 대상을 적시해서, 사실에 한정해서만 비판할 때의 이야기다. 그 선을 자꾸 못 지킨다.
강조하지만 마녀사냥이 단순히 특정 대상을 비판한다고 마녀사냥이 아니다. 집단으로 한 사람을 공격한다고 그것이 마녀사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의 힘을 빌어 개인의 정당한 권리마저 무시할 때 그것이 마녀사냥이다. 설사 범죄자라도 지켜야 할 부분이 있다.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워낙 그런 역사를 가져서인가, 아니면 가정교육이 그래서인가, 선이다. 정도다. 그것이 지켜졌을 때 비난이 아닌 비판이 되고 인신공격이 아닌 비난이 된다. 마녀사냥이 아닌 도덕적 징계가 된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어지간하면 남 디스를 잘 하지 않는다. 자신이 없어서. 책임질 자신이 없다. 힘들지만. 그러나 이번 같은 경우는 조금 욕해도 된다. 벌금 얼마? 나부터 돌아버린다.
대상을 적시해서, 사실에 근거해서, 선을 지켜서, 넘치지 않게, 공공의 보편의 가치에 충실하여, 다시 말하지만 디스의 기본이다. 상식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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