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란 비일상에서 나온다. 그러나 비일상이 항상 즐겁고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웃음이란 슬픔과 분노와 공포와 혐오, 증오, 질투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까지 아우른다. 그 안에서 웃음을 뽑아내는 것이 바로 코미디언의 역할이다. 여기서는 코미디언으로 칭하겠다.
마지막 남산에서 시민을 웃길 때도 나왔지만 사람을 웃긴다는 건 그렇게 힘들다. 어떻게 하면 기분나쁘지 않게 사람들에 일상에 파격을 줄 수 있을까. 일상의 파격에서 오는 유쾌함을 즐길 수 있게 할까. 그러나 사람마다 그것이 다 다르니. 내가 재미있다고 상대가 웃어주는 건 아니다.
예전 찰리 채플린의 영화 메이킹필름을 보았다. 한 장면이다. 단 한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무언가 웃음을 만들어야 한다. 그를 위해 몇 번을 다시 계산하고 움익이고 촬영한다. 주위의 소품을 이용하고, 사람들을 움직이고, 동선을 만들고... 그리고 마침내 포기한다. 이건 재미없다.
일주일에 닷새... 당연한 거다. 일주일 내내 웃음만 생각하고. 과거 코미디언들은 레파토리 몇 개 만들면 그것 가지고 몇 년을 울궈먹고는 했었다. 아직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 웃음과 감동이 부족하던 시대였기에 그것이 통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정보가 넘쳐난다. 코미디가 쇠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로지 코미디만이 줄 수 있는 웃음이란 것이 있으니...
코미디란 완벽한 비일상이다. 예능과는 다르다. 예능은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든다. 그것이 강점이지만 또한 사람들이 무협과 판타지의 황당함을 요구하듯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비일상의 환상을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주는 것이 코미디다. 극이라고 하는 기믹을 통해서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웃음의 환상을 즐긴다. 그것이 코미디언이다.
더구나 코미디언들이 더 대단하다는 것은 그같은 웃음을 자신을 희생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배우나 가수는 자기를 포장한다. 화려하게 멋지게 자신을 포장해 가치를 드높인다. 그러나 코미디언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 가장 드러내가 싶은 부분, 가장 감추고 싶을 컴플렉스마저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키가 작으면 작은대로, 못생겼으면 못생긴대로, 뚱뚱하면 뚱뚱해서, 마르면 말라서, 멍청한 것도 마다하지 않고 손가락질 받는 것도 거리꺼하지 않는다.
코미디언들이 제대로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또 그래서다. 그만큼 자신을 낮추니까.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니까. 이 사회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보다 자신을 낮춘다. 아이들보다도 낮추고, 소외된 이들보다도 더 낮추고, 그들이 주는 웃음 만큼이나 사람들은 그들을 낮추어 본다. 만만하게 보고 우습게 보고.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보며 웃어주는 것이 보람이라 말한다.
이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사람들로 하여금 웃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대단한데, 그것을 자신을 깎아서 웃도록 한다. 남들이라면 하지 않을 컴플렉스와 약점을 오히려 드러내고, 하나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고민하고 연습하고 시도하고 실패하며 많은 시간을 바친다. 웃음이 필요할 때 이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보면 웃음이 나오는 것은 실례이면서도 또 그들에 대한 경의일 테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점차 그들의 소중함을 잊어간다는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버라이어티는 다양하다. 굳이 코미디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웃겨주는 사람들이 있고, 코미디라는 한정된 무대와는 달리 그들은 훨씬 자유롭고 다양하다. 어쩐지 짜여진 코미디보다는 자연스러운 것도 있다. 더 대단하기도 하다. 가수며 배우란. 더구나 말했듯 코미디언이란 우습게 여겨지는 사람들이기에.
어쩌면 가장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일 것이다. 벌써 몇 년을 한 길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건. 웃음 그 하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진정한 프로들이 있다는 것은. 그러나 정작 사람들에 웃음을 주면서도 자신의 현재를,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코미디를 떠나 다른 길로 가려 하고, 그렇게 코미디를 떠나 성공한 이들을 통해 희망을 보려 한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가.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코미디이기도 하다. 이수근과 박성호, 김병만도 말하고 있었다. 코미디언 가운데 어려운 사람들이 많더라. 사정이 안 좋은 사람들이 그리 많더라. 삐에로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은 그만큼 슬픔이 많기 때문이다. 아픔이 많기 때문이다. 자칫 지배자의 눈에 벗어나면 한 순간에도 버러지처럼 죽어가야 하던 이들이었기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천대받던 일상이. 그러나 그들은 그래서 웃긴다.
페이소스다. 웃음이 긍정적인 힘을 갖는 것은 그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강인함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어려움에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찾을 수 있었던 그런 낙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들은 그리 사람들이 웃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항상 웃는 사람들보다 더 웃음이 간절했기에 그만큼 웃음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일지도.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스운 사람들이다. 멋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만만한 사람들이다. 아마 이 사회의 소금과 같고 촛불과 같은 이들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이들이 아닐까. 아이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하고 별명을 듣고 반말을 들어도 여전히 웃을 수 있는.
솔직히 승승장구의 포맷은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어제도 보는 내내 어색함이 있었다. 그러나 세 코미디언들이, 웃음의 프로페셔널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감동이 있었다. 그들이 왜 프로인가 하는, 그들이 어째서 코미디언인가 하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 아닐까.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다.
다만 아쉽다면 나의 웃음코드와 현재 개그콘서트의 웃음코드와는 조금 안 맞는데가 있다. 몇 개의 코너는 재미있는데 몇 개의 코너는 오히려 불쾌감만 자아낸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일 테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다. 사람이란 항상 같을 수 없는 것이니. 가끔은 그래도 나 역시 개그콘서트를 보며 웃음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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