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우울증과 자살, 그리고 소통...

까칠부 2010. 6. 30. 10:57

사실 우울증이란 의학적으로 치료해야 할 부분이 많은 하나의 질병이다. 따라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까지 아는 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일단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 상담을 받아 볼 일이다. 전문가가 가장 정확하다.

 

다만 우울증에 대해 약간은 예방하거나 혹은 극단으로 치닫지 않을 한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해 보자면... 역시 소통일 것이다. 대화.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착각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야."

 

사실 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모르는 때다. 도대체 사람 속을 어떻게 아는가. 안다고 할 때 선입견이 생기고 더 이상 알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면서 사람은 방치된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걸 누가 아느냐는 거다. 하룻만에도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요즘에.

 

더욱 한국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만큼이나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싫어한다. 남의 이야기는 잘 하고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건 있는데 정작 남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서툴다. 자기가 스스로 직접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다.

 

나는 알려 하지 않고 상대는 알리려 들지 않고 그래서 고립감은 그만큼 커진다. 정작 의지할 곳 없이 막막한 심정만 강해진다. 그런 때 때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정히 안다고 생각하면 그런 때일수록 말을 걸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깊은 속을 바로 드러내지는 않을 테니 먼저 말을 걸어 다가갈 필요가 있다. 조금은 속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하고. 그건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조금은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주는 누군가는 같이 이야기를 공유할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서로에게 깊숙이 개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서로를 너무 방치하는 것도 문제다. 아주 깊은 이야기는 못하더라도 사소한 이야기정도는 항상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안다고 단정짓지 말고 알려고 조금만 상체를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어도 좋을 텐데.

 

현대인에게 외로움이란 마치 바람과도 같다. 문득 일어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게 때로 태풍이 된다. 자신에 솔직하고 다른 사람에 솔직할 수 있으면 조금은 나아지련만.

 

하여튼 문제는 그거다. 남의 이야기를 하기는 좋아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하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지만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단절과 소외.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이야 말로 그 증거가 아닐까. 누구도 그 깊은 속을 알 수 없으니.

 

물론 무리다. 말했듯 어찌 사람 속을 아는가. 아무리 그래도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렇더라도 그런 노력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조금은 외로움을 덜 수 있지 않을까.

 

말이란 어떤 사실을 보고하거나 또 어떤 행위를 지시하기 위해서도 하지만 단지 말하는 그 자체를 위해서도 한다. 말이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말이 많은 건 잘못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너무 말이 없다.

 

문득 든 생각이다. 나는 요즘 얼마나 말을 하고 있는가. 말을 잊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