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토크쇼의 의미 -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방어의 권리가 있다!

까칠부 2010. 7. 2. 20:48

노인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다. 참 말씀도 많으시다. 하여튼 가만 내버려두면 70년 인생사가 그냥 줄줄 흘러나온다.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자식도... 자식이 없으신 분들도 많다. 외롭고 힘든 이야기들을.

 

과연 그러면 그 분들 말씀이 모두 사실인가.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분들이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듣는다는 것이다. 경찰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고 굳이 사실여부를 따지고 잘잘못을 따질 이유란 없다. 그냥 듣는 것이다.

 

대개는 자기변명이다. 혹은 자기변호다. 잘못하지 않았다. 틀리지 않았다. 나는 옳았다. 나는 정당했다. 오히려 현실이 불우할수록 죽음을 앞두고 자기 잘못이 아니었음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실이건 아니건 결국 그분들의 몫일 뿐. 나는 단지 들어줌으로써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드리는 것이다.

 

사실을 밝히는 건 원래 기자의 몫이다. 사실을 밝히고 단죄하는 것은 경찰과 검찰 판사의 몫이다. 개인에게는 그에 대해 저항할 권리가 있다. 알 권리가 있는 만큼 자신을 보호하고 지킬 권리가 있다. 그래서 피의자에게는 위증이란 없다. 단지 유죄로 판결이 났을 때 그 만큼 법의 동정과 배려를 받을 기회를 잃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자기를 방어할 기회가 있다.

 

토크쇼란 그런 것이다. 토크쇼는 시사가 아니다.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예전 버라이어티가 아닐 때에도 토크쇼는 교양이었다. 지금은 버라이어티다. 그들은 기자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고 판사도 아니다. 그리고 말하는 것은 MC가 아닌 어디까지나 게스트 자신이다.

 

게스트더러 말하라 부르는 것이다. 게스트로 하여금 말하라 부른 것이다. 게스트가 말하는 것을 듣자고. 일단 듣고 나서 판단하자고. 논란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더욱 게스트로 하여금 변명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 많다. 시청자의 궁금함을 대신 묻되 결국 게스트의 대답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인 강제력도 없으니. 그러니까 일단 듣자. 그리고 판단하자. 그리고 게스트는 그를 통해 자신을 변명하고 정당화할 기회를 얻는다.

 

물론 듣고 나서 어떻게 판단할까는 시청자의 몫이다. 게스트는 말하고, MC는 전달하고, 시청자는 듣고. 서로 말하고 듣는 것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다. 전혀 아무런 강제력도 구속력도 없는 TV프로그램의 한계일 것이다. 그저 누군가는 듣고 누군가는 자기 할 말을 하고.

 

그러나 아무래도 TV에 나와 자기 이야기를 한다니 선입견이 생기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그런 토크쇼 출연자들에 진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되어 - 아니 실제 기자가 그러고 있다. 경찰이 되고 판사가 되어 진실을 요구하고 판결하고 단죄하려 들고 있다.

 

토크쇼가 아니다. 재판정이다. 더 웃기는 건 실제 재판정에서도 인정되는 자기변호의 권리조차 인정되지 않는 재판정이라는 것이다. 대중이 원하는 답을 해야 한다. 대중이 원하는 답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비난과 인신공격이라는 고문이 가해진다. 이 뭔가?

 

순진한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 방송에서 하는 이야기가 모두 사실일 것이라 믿는 것일까? 아무 구속력도 강제력도 없는데, 더구나 MC조차 연예인이다. 아니 그런 식으로 게스트에 불리한 이야기를 까발려 피해가 가면 누가 토크쇼에 출연하겠는가. 말하지만 토크쇼란 시사도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도대체 왜 토크쇼에서 게스트가 자기변명을 하는 것을 그리 예민하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게스트가 자기방어를 하려는 것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반발하려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정히 진실을 바라거든 기자를 통하던가. 아니면 경찰을 통하거나. 재판정에서 진실을 밝히면 될 것이다. 도대체 토크쇼가 뭐라고.

 

토크쇼가 추구하는 진실함이란 인간 내면의 진실함이다. 정확히는 간절함이 옳겠다. 앞서 이야기한 노인분들의 경우처럼 너무나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너무나도 절실하게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다. 그런 진실함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와는 별개로 그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그의 입장에서. 게스트의 입장에서. 그리고 바로 그것을 듣자는 것이 토크쇼인 것이다. 듣고, 비판하더라도 일단 먼저 듣고서 뭐라 말을 하더라도 하자.

 

그래서 토크쇼다. 말하는 쇼다. 고백이 아니다. 자백이 아니다. 말이다. 자기 이야기다. 그것을 스스로 하는 것이다. 스스로 하라는 것이다. 재판정도 아니고 경찰서도 아니고. 취재가 아니며 수사는 더욱 아니다. 재판하고 단죄하자는 것도 아니다.

 

시쳇말로 익스큐즈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자기변명이 있다. 어느 정도는 자기방어의 의도가 있다. 그러나 굳이 그런 것들이 단죄하거나 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단죄할 것이더라도 최소한 그런 자기방어의 권리 정도는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나로서는 토크쇼란 어르신들 털어놓는 옛이야기나 다름이 아니다. 옳고 그르고는 별개다. 맞고 틀리고도 나중 일이다. 내 판단의 영역이 아니다. 그대로 듣고 느낀다. 그래도 아니라 생각하면 아닌 것일 테지만, 일단은 먼저 받아들이고서 판단할 뿐이다. 무어라 강제하거나 할 수 없이.

 

내가 이상한 것인가. 아니면 보통의 예민한 반응들이 정상인 것인가. 가끔 토크쇼 방송되고 나서 보면 그렇게 불편하다. 뭐가 이렇게 심각한가. 그런 정도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다시 말하지만 토크쇼는 버라이어티다. 이제는 교양조차도 아니다. 교양은 교양대로 또 시사도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보고 즐기자는 거지 단죄하자는 게 아니다. 토크쇼가 있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