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당신의 이야기 - 부활
아이가 눈이 오길 바라듯이
비는 너를 그리워 하네~
비의 낭만보다는~ 비의 따스함 보다~
그날의 애절한 너를 잊지 못함 이기에~
당신은 나를 기억 ~ 해야 하네~
항상 나를 슬프게 했지~
나의 사랑스럽던 너의 눈가의 비들
그날의 애절한 너를 차마 볼수 없었던거야
무척이나 울었네~
비에 비 맞으며~ 눈에 비 맞으며~
비속의 너를~ 희미하게 그리며
우리의 마지막 말을~ 너의 마지막 말을 기억 하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가사 출처 : Daum뮤직
아이가 눈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얼마나 간절한가. 그렇게 설레어하며 아이들은 첫눈 오기를 기다린다.
비가 너를 그리워한다. 아마 이 문장은 이렇게 바꿔 써야 할 것이다.
"나는 비가 오면 너를 그리워한다."
굳이 주어 '나'를 쓰지 않은 것은 아이가 곧 '나'인 때문이다. 비가 '나'인 때문이다.
아이인 나는 눈이 오기를 그렇게 간절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비가 오면 너를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워한다. 비가 되어 간절히 너를 그리워한다.
따뜻함일까? 낭만일까? 여기서 눈과 비는 대조를 이룬다. 아이와 나도 서로 엇갈린다. 나는 비가 된다.
눈과 같은 설렘이 아니다. 눈과 같은 두근거림이 아니다. 간절함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시절의 그녀에 대한 애절함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리는 비처럼 비가 되어 버린 나는 그녀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 그녀는 울고 있었겠지.
"나의 사랑스럽던 너의 눈가의 비들은"
비는 그녀의 눈물이다. 그리고 나의 눈물이기도 하다. 비극은 그렇게 심화된다. 아이의 설렘과 두근거림, 그리고 비의 따뜻함과 낭만, 그러나 그녀의 눈물과 애절함. 비는 눈물과 만나며 그렇게 슬픔의 점입가경을 이룬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꿈은 어느새 처절한 비극이 된다.
항상 나를 슬프게 했다는 것은 작은 투정이다. 원망하며 그러나 그 눈가에 흐르던 눈물까지 사랑스러웠음을 말한다. 차마 볼 수 없었던 그날의 애절함을. 그 미안함과 안타까움과, 그러나 나를 기억해주기를. 그럼에도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해 주기를.
어느 공원 비를 맞고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비를 맞으며 한 쪽에 동무로 보이는 아이와 뛰어가는 아이를 보고 있다. 아이는 비가 오기보다 눈이 오기를 바라겠지. 아직 사랑의 아픔을 모르는 아이는 눈의 설렘과 두근거림을 더욱 간절히 바랄 것이다. 비가 눈가에 떨구어진다. 비가 흐르는 것인가 눈이 흐르는 것인가.
비장한 인트로에 이은 버스는 참으로 애잔하다. 비가 오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결코 짧이 않은 시간이 흐르고서도 여전히 잊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 추억과 그리움과...
그러나 북받치는 감정은 이내 브릿지에서 더욱 고조된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무척이나 울었단다. 비에 비 맞으며. 눈에 비 맞으며. 비와 비가 중첩되고 눈과 비와 만난다. 그녀의 눈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에 비가 내리며 눈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 말했듯 비는 슬픔이다. 비는 눈물이다. 그녀 - 너 또한 빗속에 있다.
어느새 시간은 이렇게나 흘렀다. 그녀의 모습마저 빗속에 흐리다. 비가 내리기 때문일까? 눈에 비를 맞은 때문일까? 멀어져가던 그녀의 모습이기 때문일까? 그려보는 그녀의 모습이 흐릿하게 멀어진다. 하지만 한 마디, 그녀는 흐려져가도 그녀와의, 그녀의 마지막 전하지 못한 그 말은 더없이 또렷하다. 그날의 그녀만큼이나. 그날의 비만큼이나. 마치 그녀가 눈 앞에 있는 듯. 간절하게. 너무나 간절하게.
"사랑해"
누군가 그러더라. 진정으로 사랑하고 나면 사랑한다는 말 이상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고. 미안함도 간절함도 애절함도 원망도 아픔도 설렘도 두근거림도 모두 사랑한다는 한 마디로 수렴하지 않겠느냐고. 감정이 깊을수록, 감정이 순수할수록, 그리고 격렬할수록, 말은 사랑한다는 그 한 마디로 터져나오는 것이라고.
말 그대로였다. 터져냐왔다. 폭발했다. 브릿지에서 절규하던 목소리는 하이라이트에서 포효로 바뀐다. 외침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포효다. 상처입은 짐승의. 제 짝을 잃은 맹수의 잔인하도록 애닲은 포효다.
이승철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이다. 부활 8집의 어느새 힘이 빠져버린 김태원의 목소리로도 불가능한 느낌이다. 박완규로도 안 된다. 윤상현도 아니다. 오로지 당시의 김태원만이 가능한 목소리다. 야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오로지 당시의 젊은 김태원의 목소리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다.
사랑한다. 그 모든 아픔도 원망도 투정도 간절함도 상관없이 오로지 그저 사랑한다. 당시 미처 하지 못한 말이지만 그러나 지금도 미처 하지 못한 말이다. 기억이 추억이 되고 기억마저 희미해졌어도 그래도 그런 모든 것을 담아 하는 말. 사랑한다.
몇 번을 반복하더라. 세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외칠수록 답답한 것이 또 이 사랑한다는 말이다. 한창 가슴아파 하던 시절 이 사랑한다는 말이 그리 피를 토하도록 답답하더라. 더 할 수 없는 무엇이. 더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러나 그래도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사랑한다. 그냥 사랑한다. 무작정 사랑한다.
어쩌면 당시의 김태원만이 가능한 그 목소리란 아직은 계산없이 순수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감수성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지금 다시 사랑을 한다고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못한다.
거칠지만 그래서 부활 1집 시절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아직도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래서 비와 당신의 이야기라 하면 부활 1집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락이 말하는 그 원초적인 가공되지 않은 감정의 극한을 듣기 위해서.
김태원의 기타를 듣고자 한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추천한다. Jill's Theme와는 다른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순수한 감성이 이 시절의 김태원의 기타에는 있다. 아직도 인트로에서 이보다 더 훌륭한 기타는 들어 본 적 없는 것 같다. 기교로서가 아니라 그 감성에서다.
물론 그 또한 1집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아직 재는 것도 따지는 것도 서툴기만 했던, 그런 순수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 락사상 명곡 셋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하나는 블랙홀의 '깊은 밤의 서정곡' 다른 하나는 신중현 선생님의 '미인', 그리고 '비와 당신의 이야기'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서사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내고 있다. 비장한 인트로와 애절한 버스, 절규하는 브릿지, 그리고 폭발하는 하이라이트. 비를 통해 아이와도 같은 설렘으로 그녀를 떠올리던 사내는 어느새 추억을 만나고 추억 속의 그녀를 만나며 그날의 감정을 되살린다. 그날의 감정을 되살리며 그 시절 그 순간으로 돌아가 못 다한 이야기를 토해낸다.
하긴 기억이란 그렇다. 추억이란 게 그렇다. 추억이란 시간여행이다. 처음애는 현재의 내가 추억한다. 그러나 기억을 통해 과거의 나와 만나며 나는 과거의 내가 된다. 과거 느꼈던 감정을, 과거 느꼈던 슬픔과 분노와 원망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추억은 현재가 된다. 과거는 그렇게 기억 속에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되고 진행형이 된다. 바로 이 노래처럼. 그 순수한 감정의 여정을 따르기에 노래는 더욱 극적인 점입가경의 심층을 이루며 완성되고 있다.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그 처절한 비극으로.
내가 이승철 버전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유다. 너무 아름답다. 너무 멋지다. 이 노래는 그렇게 멋지게 부를 노래가 아니다. 그조차도 시간이 지나 추억마저 추억할 수 있을 때 불러야 이승철 버전이 된다. 그러나 그때 가서도 과연 과거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얼마나 그 목소리를 흉내내려 노래방에서 목소리가 망가졌던가. 그렇게 김태원의 목소리를 닮고 싶었다. 나도 그처럼 사랑한다 외치고 싶었다. 아마 누구나 같지 않을까. 남모르게 자신의 감정을 담아 외쳐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활이라면 가요나 부르는 아이돌그룹이라 여기던 시절에도 그래서 이 노래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음악이 나오지 않으리라.
순수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악. "깊은 밤의 서정곡"이 시대를 고민하는 젊음의 순수를 담았다면 "비와 당신의 이야기" 여지없는 사랑의 순수함을 담았다. 그 나이에서만 가능한. 그 순수한 열정을.
아마 신대철이 말했을 것이다.
"김태원은 시인이다. 가사를 보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다."
나 역시 공감한다. 김태원의 작곡가로서의 역량만큼이나 작사가로서의 능력도 인정한다. 아니 솔직히 작곡가로서보다 작사가로서 더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그만큼 그의 가사는 아름다우면서 가슴을 헤집는 무언가가 있다.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진정이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절묘한 언어의 구사를 통해 음악과 만나 구체화된다. 내가 음악만이 아닌 가사까지 함께 듣는 몇 안 되는 음악가다.
아직 여물기 전, 지금처럼 세련되지 않은 그 시절의 감수성이란 그래서 보석과도 같다. 재지 않고 따지지 않은 그런 순수함이란. 그것이 아직도 사람들로 하여금 이 노래를 찾게 하는 것이겠지.
벌써 1986년, 한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 어른이 되고 군대에 가고, 혹은 대학을 졸업했을 시간이다. 누군가는 취직도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았을 것이고,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는 사랑도 할 것이고 사랑에 아파하기도 할 것이고... 무엇보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내가 있다.
시간은 흘러도 음악은 영원하다. 최소한 내게 있어 음악이 가져다 주는 시간은 영원하다. 그 영원을 담은 노래. 그 순수함이 아름다운 노래. 비가 내려서가 아니라 비가 내리지 않기에 더욱 그리워지는 음악이다.
참고로 원래 부활 1집의 타이틀곡은 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보다시피 노래길이가 꽤 되어서. 방송을 타자면 3분 내외의 곡이 좋다. 또 대중적으로도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당시로서 상당히 파격적인 노래라 어느 정도나 받아들여질까 고민도 있었다.
실제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승철 1집 pt2에 리메이크되면서 이승철 노래로 더 알려졌을 정도였다. 아는 사람은 누구나 부활의 대표곡으로 꼽았지만. 반드시 음악이 좋아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한 예일 것이다. 우리나라 밴드의 현실이라 할 터다.
나의 비와 나의 당신과 나의 음악과... 음악은 비가 되어 내린다. 눈을 감아본다. 밤이 젖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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