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이효리와 타블로 - 몰인간의 대상화, 인간은 자기를 지키려는 동물이다.

까칠부 2010. 7. 6. 18:10

사람이 어떤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다시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당장 인지했다고 바로 판단해서 행동에 옮기는 경우는 없다. 아예 뇌가 없지 않는 한.

 

사람에게는 자아라는 게 있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느 부인이 자기 남편이 바람을 핀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 바로 남편에게 다가가 따질까?

 

처음에는 부정한다. 아니라고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그것을 또렷이 인지하기까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응에 나선다. 이혼을 요구하거나 혹은 바람핀 상대와 헤어질 것을 요구하거나.

 

의혹이란 어떻게 해도 의혹이다.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가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다. 아니 굳이 확인해 줄 필요조차 없이 확고한 사실일 수도 있다. 의혹을 제기한다고 바로바로 반응하기에는 인간의 자아란 완고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타블로도 그래서 어차피 사실이기에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 여겨 아예 처음에는 대응도 않았고. 네티즌이 개티즌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것을 구체적인 행동에 옮기기에 시간이 걸렸다. 그러자 말한다.

 

"왜 바로 대응하지 않았느냐?"

 

의혹이야 아무 부담이 없다. 의심이야 아무 리스크가 없다. 그냥 의심하면 된다. 바로 의심이 가능하다. 그런데 의심이라는 것을 받게 되면 그게 되는가. 더구나 그리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면.

 

이효리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나름대로 프로듀서로서 책임을 가지고, 자신을 가지고 음반을 냈다. 그런데 그 다수가 표절이란다. 인정하기에는 너무 큰 리스크다. 의혹이 있다고 바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사건이다.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작곡가가 믿을만한 근거를 제시했다면 믿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그건 사람의 당연한 심리다. 그래서 사기를 많이 당한다. 사기당하고서도 사기당한 줄 모르고 오히려 사기꾼을 옹호하고 마는 것은 믿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인지의 부조화다.

 

다시 말하지만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표절의혹이 있는 것이지 표절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작곡가가 표절이 아니라고 근거까지 제시했다. 일단은 믿어 보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까지 의혹이 나왔으니 바로 인정하고 활동을 접었어야 한다. 이효리가 기계인가?

 

물론 그 사이 어느 시점에서 표절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했는가는 나로서도 알지 못한다. 더 전일수도 있고 이효리측 주장처럼 활동을 중단한 그 시점에서야 최종결론이 내려졌을수도 있다. 중간에 기획사가 개입했다면 이효리로서도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더 이산이 걸렸을수도 있다.

 

그러나 결론을 미리 내리기에는 성급하다는 것이다. 과연 이효리가 표절사실을 알고서도 그동안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을 어찌 아는가. 이효리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아무튼 느끼는 것이 연예인이란 어쩌면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네티즌이 어떤 의혹만 제기하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모든 과정을 배제한 채 TV가 리모콘에 반응하듯 바로바로 반응해야 한다. 인간으로서 보일 수 있는 어떤 과정도 무의미하다. 인정되지 않는다. 도대체 뭔가?

 

물론 표절은 잘못되었다. 프로듀서가 표절에 대해 피해자라고만 주장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효리의 프로듀서로서의 자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그녀는 프로듀서로서 자기 이름을 걸고 작업할 자격이 있는가.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표절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 과연 이효리는 그렇게 비난을 들을 만큼 크게 잘못을 저질렀는가? 모른다는것이다. 모르는 이상 비난은 성급하다는 것이고.

 

다만 그건 있다. 최근의 이효리의 예능출연에 대해서... 참 서툴다. 서툴다기보다는 순진하다. 아니면 바보같다? 왜 영악스레 반성하는 자기를 연기하지... 아, 사전녹화라 그랬지? 이건 또 방송사의 잘못이기도 하네. 왜 굳이 문제가 된 이효리를 내보내서 몇 배 더 욕을 먹도록 만들까? 이효리를 아예 매장하려는 것일까?

 

아무리 표절이 잘못이더라도 이건 무분별한 증오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니 이미 이 사회에는 증오가 넘치고 있다. 타블로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박재범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이효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뭔가 빌미가 있고 이유가 있으니 증오는 정당화된다. 빌미를 찾고 이유를 찾아 증오를 정당화한다.

 

그저 미워하고 탓하는 것이 정의는 아닌 것이다. 표절이 악이라고 한 인간을 증오하는 것이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증오는 그 자체로 악이다. 표절을 탓하기보다 인간 자체를 미워하는 것이 더 큰 악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최근 이효리와 관련한 어떤 사람들에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다.

 

사실 나로서야 이효리가 매장당하든 말든 상관없다. 그래서 예능에 출연하는 것 보면서도 웃을 뿐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인기 떨어져서 망하더라도 내 일이 아니니까. 그건 이효리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저 불쾌한 증오라는 악의에 대해서는... 내가 이런 걸 또 무척 싫어한다.

 

하긴 그러고 보면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자기를 위해 변명하는 것도 그리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 내용이 아니라 변명하는 자체에 대해서. 문득 70년대 80년대 한국사회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오버일까? 당국이 이미 단죄했다면 변명은 필요없다. 당국이 원하는 진실을 위해 고문까지 정당화되던 시대다. 단지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던 시대였고. 인간은 자기를 지키려 드는 동물일 텐데 말이다.

 

자기를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조차 없다는 것은... 왜 한국사회에서 그리 연예인 자살이 끊이지 않는가. 자살이란 인간이 존엄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한국사회에서 연예인이란 인간이 아니다. 객체이고 대상이고 수단이다. 기획사 입장에서도, 대중의 입장에서도, 심지어 연예인 자신에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무척이나 쓴 진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