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신해철의 발언에 붙여 - 연예인, 일상의 유리와 자기소외...

까칠부 2010. 7. 7. 00:53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여자친구에게는 남자친구의, 학생에게는 선생님의, 그리고 그 가면에 따른 역할을 강요받는다.

 

문제는 그것이 과연 나 자신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예전에는 그런 고민이 없었다. 아직 개인이란 것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이고, 임금은 임금이고, 신하는 신하이고,

 

그러나 머리가 커졌다. 고민이 생긴다. 과연 지금의 나는 나인가 아니면 나 아닌 다른 누구인가. 그 가면으로 인해 본심과 다른 행동을 해야 할 때 더욱 그런 유리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돌보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가. 그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소리다. 자기 일상을 포기하며 엄마의 역할을 강요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소외를 불러일으킨다. 육아노이로제다. 육아노이로제로 자살을 시도한 예를 몇 알고 있다. 모성이 아무리 본능이어도 자기라 하는 것은 보다 근원적인 실존인 때문이다. 그같은 모슨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인간이 존엄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마지막 행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어도 죽음만은 스스로 선택하겠다. 완고한 에고다.

 

연예인은 특히 그런 유리가 심한 직업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도 크리스토퍼 리브 개인이 아닌 슈퍼맨으로 사는 것을 그렇게 괴로워했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성인인 자신과 어린이들과 어울리려 짐짓 어리게 꾸민 또 다른 자신과의 괴리로 포르노극장에서 자위를 하다가 체포되었던 미국 연예인의 예를 꽤 오래 전 들은 적 있었다.

 

프라이버시조차 없이 대중 앞에서 스타의 연기를 해야 하는 그들의 괴리감을 내가 실제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사춘기시절 대체 내가 왜 이래야 하는가 고민하고 반발하던 기억은 있다. 나에게 강요되던 사회적 역할과 그로부터 유리된 개인에 대해 고민하던 기억이 있다. 어느 정도일까?

 

그것을 아마 지탱하는 것이 프로의식일 것이다. 한 마디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엄마다. 엄마이기에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한다. 엄마로서의 자신마저 자기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엄마들은 그래서 엄마로서의 자기를 받아들이며 훌륭히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지. 그나마 그들을 지탱케 하는 것이 프로의식이라면 갑자기 그들을 나락으로 내모는 것은 대중이다. 대중의 무책임한 의혹과 비난과 증오들. 대중 속에 그들은 한 번 더 자신으로부터 유리된다. 하지 않은 일들이, 했지만 그러나 그렇게 크지 않았던 일들이, 무엇보다 대중 속에 만들어진 증오라고 하는 또다른 자신의 얼굴이. 가면이.

 

어쩌면 우울증이란 연예인에게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불특정다수의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대중이 만들어낸 숱한 불쾌하기까지 한 이미지까지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더구나 소속사로부터는 한 마디로 돈 버는 기계처럼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니. 잠조차 차 안에서 잔다고, 밥도 차 안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목숨을 건 도로레이스에, 아마 다른 어떤 직업보다 그 이상으로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는 현실은 더욱 그들로 하여금 더욱 지치고 자신의 존재나 가치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기 쉽다.

 

개인적으로 신해철이 말한 3년 내 아이돌 자살자가 나올 것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는 이유다. 지금처럼 철저하게 개인의 사생활조차 없이 통제당하던 아이돌이 그대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때 과연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고 마음이 지치면 다시 약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또 과연 한창 벌어야 할 때 한 발 빼고 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문득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두고 한창 언제 자살할 것이냐 설문에 붙이던 한 언론이 생각난다. 과도한 관심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궁지로 몰아넣던 대중들도. 단적인 예가 아닐까. 대중과 언론과 그리고 주위와. 그럼에도 견뎌낸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대단하다 할 밖에.

 

어쩌면 그러겠지. 그렇게 많은 돈을 받고 그렇게 많은 것들을 누리는데 그런 정도도 못 견디느냐. 바로 그게 문제라는 거다. 아무리 많은 돈을 받고 아무리 많은 것을 누려도 인간이기에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존엄할 수 있는. 너무 먼 이야기일까?

 

월 100만원도 못 받는 비정규직을 위해서라도 100만원 넘게 받는 모든 노동자들은 사측에 혹은 정부에 항의해서는 안된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불평없이 일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가.

 

아무튼 이래저래 생각할 거리가 많은 부분이다. 그러나 대안이 딱히 없기도 하다. 대안에 뭐가 있을까? 있다면 개인이 믿고 의지하며 견딜 수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자존이라는 것. 그것을 어떻게 찾는가. 바로 이순재, 최불암 등 원로들이 말하는 프로의식이라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건 또 어떻게 챙기는가.

 

답이 없는 문제처럼 답답한 것도 없다. 그러면 좋은 건 아는데 그것에 이르기가 쉽지 않다. 말만 많을 뿐. 신해철이 이 일로 비난을 듣는 이유겠지. 그에게도 답은 없다. 안타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