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아스트로 보이 - 이거 아무래도 사찰에 들어가야 할 듯!

까칠부 2010. 7. 7. 16:25

처음 그 스톤 대통령을 보면서 어쩐지 데자뷰를 보는 듯 했다. 어디서 많이 보았다. 어디더라?

 

말은 않는다. 아마 많이들 느꼈으리라.

 

선거에서 이겨야 한단다. 지지율이 떨어지니 지지율을 높여야 한단다. 그래서 피스키퍼를 완성해야 한다고 레드코어에 무작정 손을 댄다. 바로 자신을 당선시켜줄 어떠한 가시적 성과를 위해서.

 

그러나 그것은 재앙을 가져오고... 그럼에도 그는 아스트로의 블루코어를 탐내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다시금 레드코어를 사용해 피스키퍼를 깨운다. 그리고 피스키퍼는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스톤마저 삼키고는 괴물이 되어 모든 것을 파괴한다.

 

"나는 선거에 이겼다!"

"도시는 나를 선택했다!"

"도시는 내 거다!"

 

정말이지 그리운 대사 아니던가 말이다.

 

확신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분명 한국인이다. 아니면 한국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한국인과 친구이거나 하다못해 같이 온라인 게임을 했거나.

 

생긴 것도 정말 닮았다.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지상과 전쟁을 획책하는 부분 역시도. 어딘가 시장은 가상의 전쟁시나리오를 공모하기도 했었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 이야기다. 지상은 제 3세계다. 매트로시티의 쓰레기하치장.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이 버려지는 곳. 매트로시티에서 용도폐기된 것들이 버려져 쌓이는 곳. 소외된 이들이 있다. 매트로시티를 단순히 동경하며 증오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

 

로봇이란 원래 뜻 그대로 노동자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위해 부림을 당하다가 용도폐기되어 버려지는. RRF던가. 이제 공산주의자들은 더 이상 위협도 아닌 놀림거리에 불과하다.

 

그러면 그런 부조리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란 무엇인가. 아니나 다를까 지극히 미국스러운 영웅주의. 아스트로라는 영웅을 통해서다. 너무나 느닷없이 해소되는 갈등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갈등의 끝인가. 로봇이 영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은 없을까. 느닷없이 추락해 버린 매트로시티에서 지상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해 아무런 모순이나 갈등이 없을 것인가.

 

남북전쟁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전우들에 대해 백인들이 어떻게 대했던가를 기억한다.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일원으로 참전했어도 흑인은 여전히 흑인이었다. 그러고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과연 아스트로 하나가...

 

아니 그래서 외계인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인을 미국인으로 단결케 했던 힘. 그것이 바로 소련이었다. 소련과 공산주의였다. 그리고 지금은 테러리즘이다. 독일의 나치즘이었고 일본의 경제적 침략이었고 중국의 성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항상 두려워해야 하고 항상 경계해야 한다. 단결해야 하고 단합해야 한다. 볼링 포 콜럼바인이 말하고자 하는 그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항상 외계인은 미국을 침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외계의 침략에 대항해 싸우고 있던 것이었다. 원숭이가 지배하는 지구에서 마지막에 부서진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런 게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갑작스런 전혀 예고되지 않은 외계인의 침략과 그것을 막으러 나서는 아스트로, 그리고 모든 갈등은 봉합되고 영화는 해피엔드로 나간다. 이 얼마나 진부하면서도 당연스런 엔딩인가. 이것이 아니고서는 이것은 성인영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독스럴 정도로 복잡하고 이해가 도무지 불가능하게 난해한. 하지만 이건 애니메이션이다.

 

하여튼 제대로 미국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물론 미국식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에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한국인이 만들었다 한 것이다. 스톤대통령이 어느 분과 그리 닮았다 한 것이고.

 

부시겠지. 선거를 위해 전쟁을 한다. 선거를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위협도 되지 못하는 지상. 아스트로를 잡아오는데 지상인들은 단지 목소리를 높여 항의할 뿐이다. 무기력하고 무력하다. 그러나 스톤은 그들과의 전쟁을 통해 낮아진 지지율을 회복하려 한다.

 

아니 부시가 아닌 오바마일까? 역대 많은 대통령이 그래왔으니까. 클린턴 역시 일만 있으면 이라크를 공습하고 했었다. 전쟁이란 자고로 인기없는 정치인의 마지막 승부수였다.

 

아이들 보는 애니메이션이라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시사적인, 그러면서도 딱 아이들 보기 좋게 선악의 구분이 명확한 제대로 된 히어로물이었다. 3D로 만들어진 캐릭터들도 "아톰" 원작 애니메이션에서의 캐릭터를 그대로 잘 살리고 있고. 다만 아톰과 텐마, 엘리펀 등의 원작의 주요 캐릭터들과 나머지 오리지널 캐릭터와의 괴리는 어쩔 수 없다. 미국식 캐릭터와 일본식 캐릭터에는 분명한 간극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하긴 그런 정도야 애교라 할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평면적인 캐릭터에, 표정에, 연기에, 구성과 연출에 이르면 과연 이것이 생각이란 것을 하고 만든 애니메이션인가. 한 마디로 뻔하다. 너무 전형적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대사에 행동에 장면들. 더구나 도대체 어디서 웃어주어야 할 지 모르겠는 미국식 유머까지. 그나마 헐리우드 영화며 미국 애니메이션에 익숙해 그것이 유머라는 것은 알겠다. 미국인이라면 꽤나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글쎄... 나는 일단 미국인이 아니라서.

 

점수를 주자면 오히려 애니메이션 외적인 부분에 더 점수를 줄 수 있겠다. 그런 외적인 요소들이 조금은 더 생각하며 공감할 수 있게 한달까? 와닿는 부분도 있고.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해서는 그저 뻔한 히어로물의 공식 그대로를 따랐다 보면 되겠다. 전혀 특별할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

 

말하지만 애니메이션 자체로는 그다지 매력이 없다. 재미가 없다. 다만 애니메이션 외적으로 관심이 있다면 그나마 보는 보람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쩐지 그립기까지 한 안타까움과 분노와 슬픔과... 마지막 직전 장면에서는 휑하니 허전한 쾌감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정도? 3D로 만들어진 아톰을 보고자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런 정도 의미는 있을 테니.

 

그나저나 아톰이 되살리는 100년 전의 건설용 로봇이라는 ZOG, 역시 라퓨타의 그 로봇이 모델이겠지? 보는 순간 라퓨타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 참고가 되었을까? 어쩐지 발견하는 장면부터도. 그러고 보면 아스트로가 날아갈 때 테즈카 오사무가 보인 것도 같고.

 

어쨌거나 한 가지 결론을 내리자면 감독은 확실히 한국인은 아니라는 것. 이렇게까지 만들어놓고서도 사찰도 수사도 없다. 이념이며 당파성 논란도 없다. 언론도 조용하고. 한국인은 아니라는 것이겠지?

 

화면도 예쁘고, 그래픽도 그만하면 잘 빠졌고, 어딘가 아날로그적인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디자인도 괜찮고, 너무 뻔하다는 것도 익숙함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꽤 편하게 볼 수 있겠고.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또 지나치게 무거울 수 있다는 점이 애매하게 걸린다.

 

추천까지는 무리더라도 한 번 볼 만은 하다는 정도? 애니메이션 자체의 재미이든 외적으로 그래서든 일단 나는 재미있게 보았으니까. 그런 정도로만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은 않겠다. 딱 그 정도로만 기대한다면.

 

최소한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거기서 의미를 찾는다. 나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