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랄까 등장인물들이 너무 심각하니 오히려 웃음이 나는 영화였다. 아무래도 나는 중국인이 아니니까.
언제부터인가 중국무술영화에 민족주의가 부쩍 강해졌다. 힘과 힘, 기술과 기술이라는 원초적인 야만성이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잡아먹힌 모양새다.
하긴 20세기 초 열강에 의한 침략이 본격화되던 시기, 민족적 자긍심을 잃어가던 중국민족을 일깨운 것이 중국무술이었다. 곽원갑을 비롯 많은 무술계 인사들이 무술을 통해 중국인의 민족의식과 근대성을 일깨우려 했었고, 그를 통해 오늘날의 중국무술의 원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사실상 중국무술이란 근대에 이르러 재창조된 이를테면 만들어진 정통이라 할 수 있었다. 중국무술에 대해 갖는 중국인의 자긍심이란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중국무술이야 말로 중국민족의 자긍심이다.
괜히 중국에서 무술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오락성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중국무술이 말하는 의와 협, 용기와 같은 미덕은 중국인의 정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무술과 중국민족주의와의 연결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동료의 패배와 그에 대한 복수란 록키4에서 드라고와 아폴로, 록키를 통해 이미 구현된 바 있고. 스테디다. 다만 그것이 중국민족주의와 이어지며 나와는 약간 거리감이 생긴다는 게... 말했듯 나는 중국인이 아니니까. 중국인이 아닌 입장에서 중국의 자긍심 어쩌고 해봐야 헛돌 뿐이다.
가장 나를 웃게 만든 것은 액션. 합이 보인다. 어떻게 동선을 짜고 하는게 눈에 띈다. 차라리 조금 더 거칠게 직설적으로 무술을 묘사했다면 더 좋았을 것을, 괜한 기교를 부리느라 와이어 달고, 미리 합을 맞추고 하는 것이 너무 눈에 들어온다. 동작이 끊기고, 흐름이 끊기고, 그 사이에 무술감독의 의도가 너무 선명히 드러나 무술 자체에 몰입하기가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민족주의가 나와 맞지 않아 헛도는데, 무술까지 헛돌고 있다.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가장 압권이 중국무술 하는 복서 트위스터. 분명 복서일 텐데 아무래도 합을 맞추려니 주먹질이 무술의 그것이다. 어색하다. 이건 뭐 복서도 아니고.
영화 자체는 그리 못 만든 영화는 아닌데... 하긴 그동안 무술영화를 많이 봤으니까. 경험치가 쌓인 만큼 전처럼 마냥 재미있을 수만은 없다. 더 이상 중국무술이 과거과 같이 동경의 대상일 수 없듯이.
그나저나 어린 시절의 이소룡이라... 이소룡의 버릇을 그대로 흉내내는 꼬마와 견자단의 만남이 재미있다. 그러고 보면 중국무술의 세계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이소룡일지도. 이소룡의 영화로 인해 중국무술에 매력을 느끼게 된 이들이 그리 많을 테니. 엽문의 가장 큰 업적은 이소룡을 길러낸 것일까?
그런데 이소룡과 함께 찍은 엽문의 사진이 꽤 나이들어 보인다. 그러면 트위스터와 시합하던 당시 엽문의 나이가 어떻게 되었을까? 40줄이면 정말 대단한 것이고, 30대만 되어도 체급차이 감안하면 자랑할 만 하겠다. 원래 중국무수가 상당수가 30대 접어들어 전성기를 맞았으니. 과연...
그러고 보니 홍금보도 홍권의 고수다. 홍권의 고수로 무술감독을 하다가 영화배우로 데뷔한 경우로 단순히 흉내만 내는 배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만 홍권에는 흑역사가 있어서. 딱 영화에 묘사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보면 되겠다. 홍진남과 홍권, 그대로. 상당히 리얼하다.
어쨌거나 재밌기는 했다. 가끔 유치해서 웃음이 터져나와 그렇지. 그 홍콩영화 특유의 뜬금없음이란. 시간때우기는 되었다. 그 이상은... 무술영화가 좋으면 볼 만 하겠고 그렇지 않으면...
10년 전에 봤으면 재미있었을 뻔 했다. 확실히. 그게 아마 가장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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