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합창대회의 기억...

까칠부 2010. 7. 12. 09:05

아마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1학년이었던가? 2학년이었던가? 그때 내가 속했던 반이 합창으로 서울대회까지 나갔던 적이 있었다. 합창부가 아닌 반이었다.

 

처음에는 교내 반대항 합창대회였다. 참가인원을 따로 선발하거나 지원을 받거나 한 것이 아닌 그 학교의 학생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대회였다. 물론 나 역시 오디션 없이 단지 그 반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합창대회에 출전해야 했었다.

 

그때 우리 반을 비롯 몇 개 반의 합창대회 지도를 맡고 계시던 음악선생님께서는 딱 이 한 마디만 강조해 들려주셨다.

 

"59명이 맞고 1명이 틀리기보다 60명이 모두 함께 틀려라."

 

설사 틀려도 60명이 함께 한꺼번에 틀리면 그것도 듣기 좋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틀리는 것보다 모두가 함께 틀리라.

 

물론 틀려도 좋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그에 맞춰 부르라는 뜻이었다. 그 이상의 전문적인 내용을 가르치기에는 시간 자체가 너무 촉박했으니.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음악시간이 선생님으로부터 무언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심지어 구성원들의 파트구분조차 교내대회가 끝나고 지역대회에 출전하게 되었을 때야 나누고 있었을 정도로 그 준비란 차라리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우리반이 무려 지역예선에서 우승씩이나 하며 서울대회에까지 출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상대는 합창부가 동원되어 나온 다른 학교들이었다.

 

사실 우리도 그런 시도가 있었다. 서울대회를 앞두고였던가? 그 전이었던가? 전혀 예상못한 성과에 고무된 교장선생님이 유명무실한 채이기는 하지만 합창부 부원 가운데 몇 명을 뽑아 함께 출전시키려 했었다. 다른 학교에서도 다 하는 것이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그러나 웬걸? 단 두 번이었다. 단 두 번 연습으로 그같은 계획은 없었던 것이 되고 말았다.

 

원래 우리반이 서울대회에까지 나가게 된 것은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 가르침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러자고 다짐한 것도 아닌데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그래서 이외의 사람이란 단지 조화를 깨뜨릴 뿐이었다.

 

서울대회에서 망한 것도 그래서였다. 워낙 기대가 없었다. 지원도 없었다. 겨우 빵 두 개에 요쿠르트 두 개 얻어먹은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무려 수업이 끝나고 두 시간을 매일 연습해야 했다. 거의 한 달 넘게. 지칠만도 했다. 어느새 그런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여기서 우승하면 또 연습해야 하는 거야?"

 

이제 중학생이 되어서 아무리 대회에서 이기고 상을 타는 게 좋다고 그렇게 자기 시간까지 빼앗겨가며 희생하는 것이 달가울 수 없는 것이다. 뭐라도 반대급부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학교라서.

 

결국 마지막 서울대회에서 우리반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도 들렸다. 이제까지 하나의 소리를 내던 것이 조각조각 찍겨져 자기 멋대로 흩어지고 있는 것을. 누구도 어디에 맞춰야 할 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음악선생님은 화를 냈지만 나 역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일단 방과후 연습으로부터 해방 아닌가. 더 이상 합창대회 연습하느라 내 시간을 쪼개지 않아도 되었다. 놀 수 있었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아무튼 당시 합창대회 연습하느라 음악선생님으로부터 발성이라는 것을 배웠는데, 덕분에 지금도 고음 올릴 때면 성악의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기본적인 발성 자체가 음악선생님의 성악발성이다. 어려서는 괜찮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게 강해져서.

 

 

어쩌면 이런 것이 합창이라 하는 것일 게다. 하모니라 하는 것일 터다. 잘하는 사람끼리 모여 노래솜씨 뽐내자는 게 합창이 아니다. 잘하면 좋지만 못하더라도 말했듯 함께 못하면 듣기에 좋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그렇게 하나의 어울림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 목소리를 내기보다 주위의 목소리를 듣고, 나를 따라오기를 바라기보다 주위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 내가 돋보이려 하기보다 주위를 돋보일 수 있게, 인성을 우선해 본다던 박칼린씨의 말은 그래서 어쩌면 합창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잘해서가 아니라 한 데 어우러질 수 있기에. 그래서 혼자서 잘 할 필요 없이 서로의 음역에 맞게 파트도 나뉘어져 있다.

 

박슬기의 노래실력은 진짜 의외였다. 조혜련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이정진은 말 그대로 좋은 악기를 가지고 있었고 단지 개발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쉽다면 신인가수들인데... 남자의 자격이 신인가수들의 홍보에 이용되는 것은 아닌가. 단지 무명연예인의 얼굴알리기용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점에서 해피선데이 제작비를 담당한다던 행정직원의 "세월이 가면"은 감동이었다. 바로 그런 것이 합창을 하는 이유일 텐데. 다른 이유 없이 순수하게 합창이라고 하는 것을 해 보고 싶다.

 

합창의 총지휘를 맡은 음악감독 박칼린의 감은 진짜였다. 음악감독으로서도 음악감독으로서지만 이경규에게도 한 마디 지지 않는, 남자의 자격 멤버들을 가지고 노는 듯한 그 존재감과 카리스마는 남자의 자격 밴드에서의 김태원 그 이상이었다. 그 밖에 사소한 노래자랑이야 그냥저냥 넘어가더라도 박칼린 감독의 김태원과는 또다른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진지함, 유쾌함, 카리스마는 정말이지 눈을 뗄 수 없는 포인트였다. 그녀를 통해 들려지는 하모니의 진정한 의미와 함께.

 

원래 남자의 자격 스텝에 의해 편집된 것이 아니라 아쉽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그를 위해 조금 늘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남자의 자격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진정이 그 안에 있었다. 누구나 하고 싶은. 그러나 잠시 묻어두었던 꿈이. 그런 설렘들이.

 

뭐 나야 벌써 20년도 더 된 중학교 시절의 기억이 전부이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합창 비슷한 것도 해 본 적 없다. 아쉽고. 그리고 해 보고 싶고. 다시 기회가 있을까? 부럽기도 했다.

 

과연 남자의 자격 밴드와 하모니는 얼마나 다른 개성으로 다른 의미들을 보여줄까. 기대가 크다. 말 그대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역시나 남자의 자격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