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안티의 분노? 왜 그들을 개티즌이라 하는가!

까칠부 2010. 7. 13. 20:53

얼마전 정부여당에서 아주 흥미로운 해명을 내놓았다.

 

"알고 보니 불순한 사상을 가졌고 여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바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의한 민간인 사찰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답이었다. 핵심은 그게 아니다. 과연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일반 민간인을 사찰할 정당한 권리가 주어져 있는가.

 

지금도 4.3이나 보도연맹, 5.18등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지지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빨갱이도 때려잡을 수 있지 않았느냐."

 

그 수많은 죽음 앞에서도 그들은 그래서 당당하다.

 

나는 요즘 경찰이 욕먹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개티즌들에 의해서는.

 

고문에 대해서도 경찰은 아마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잡을 수 있었던 범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 타블로 안티들 기세가 아주 등등하다. 데이브의 학력위조를 밝혀낸 모양이다. 축하한다. 잘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칭찬받을 일인가. 나는 그 기사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노라?

 

언젠가도 말했지만 분노란 특정한 사안에 대한 것이다. 대상을 한정하여 그것이 바로잡히기까지 한시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이 분노라 하는 것이다. 과연 단지 그 안티들은 데이브의 학력위조에 분노한 것이었던가.

 

그들의 타겟은 어디까지나 타블로다. 타블로를 잡으려다 그 가족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친 것 뿐이다. 그 결과 그 어머니와 형의 문제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거야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꼴이고. 과연 그런 식으로 특정 연예인에 대한 증오가 그 가족에게까지 미치는 것이 정당한가.

 

타블로만이 아니다.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당사자는 물론 그 주위까지 샅샅이 이잡듯 헤집는다. 무슨 여기가 북한도 아니고. 도대체 언제부터 이 사회에서는 연좌가 합법화된 것일까.

 

하긴 그 가족에 보복을 해야 하니 피의자 신상공개를 하라는 정의가 설치는 나라다. 피의자의 가족에게 피해가 가야 범죄가 줄어들 수 있다고 믿는 정의가 아직 살아있는 나라다. 그러나 이건 피의자도 아니고 단지 자기들 멋대로 의혹을 가졌을 뿐 아닌가. 그럼에도 그 의혹을 정의삼아 그 가족까지 헤집고.

 

더 웃기는 건 그럼에도 결과가 좋으니 다 좋다. 그럼에도 이렇게 결과가 나왔으니 네티즌 대단하다. 그러면 고문을 해서라도 범인을 잡는 경찰은 정말 훌륭한 거겠네?

 

결과가 문제가 아니다. 과정이 문제인 거다. 그 동기가 문제인 거다. 얼마나 합리적인가. 얼마나 정당한 절차를 밟았는가. 과연 그것이 합법하며 이치에 맞는가.

 

채수창 강남경찰서장이 경찰서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며 이런 말을 했었다.

 

"경찰은 99명의 범인을 잡기보다 1명의 무고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하물며 경찰도 아닌 개인들이 한다는 짓거리가,

 

"99명의 무고한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단 한 명의 문제있는 사람을 잡아내야 한다."

 

그동안 도대체 얼마나 헛발질이 있었던가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사람의 신상을 털어 문제를 일으키고, 같지도 않은 추측으로 한 사람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한 건 했다고 좋아라 의기양양. 그리고 그것을 대견하다 칭찬하는 사람들까지.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다시 한 개인에 대한 증오의 근거로 삼는다.

 

내가 타블로 사태에서 이른바 타블로 안티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 것은 그래서다. 내가 타블로를 좋아해서? 나는 에픽하이 음악도 잘 모른다. 타블로라고는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것 두 번 본 것과 무한도전에 나온 두 번이 전부다. 타블로에 대한 이야기는 저번 의혹이 터지면서 거의 처음 들었다.

 

지금도 타블로가 누구이고 어떤 음악을 하는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타블로라는 개인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무제한적인 악의다. 단지 타블로라는 개인을 망가뜨리고 싶어하는 악의어린 증오다. 그리고 그 증오를 정의로 치장하는 어떤 의식일 터이고. 그런 것을 용인하는 사회분위기일 터이고.

 

증오가 낳는 것은 파괴 뿐이다. 분노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지만 증오는 올바른 것도 파괴한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서도 단지 증오만은 남는다. 그런 것을 용인해야 하는가.

 

참 답답한 거다. 결과만 좋으면 좋다. 결과가 좋으니 좋은 거다. 하긴 그러니까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저리 높을 수 있는 것일 게다. 총리실이 민간인 사찰을 하고서도 여전히 당당하고, 경찰은 피의자를 고문하고서도 그것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고. 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한 사회라는 것일까?

 

내가 그래서 네티즌의 정의라는 걸 믿지 않는다. 자의적이고, 즉흥적이며, 주관적인, 그저 감정의 배설에 불과한 그 정의를. 그래서 개티즌이라 하는 것일 테고.

 

하여튼 같잖다. 하나 건졌구나. 그래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구나. 그래봐야 개티즌인 것을.

 

개티즌은 어떻게 해도 개티즌이다. 그들이 증오를 말하는 한. 단지 결과만을 말하려 하는 한. 그들에 동조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단지 개티즌일 뿐.

 

그냥 웃는다. 잘들 놀고 앉아 있다.

 

아, 말 가려서 순화시켜 하려 하니 머리에 쥐 내린다. 참 사람 착하게 살기가 이렇게 힘들다.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