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가끔 전화벨소리가 울리면 그렇게 깜짝깜짝 놀란다. 이메일을 쓸 때도 혹시나 싶어 조심한다.
내가 그렇게 대통령을 많이 욕했다. 지난 정부에서나. 이번 정부에서나.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도 꽤 독하게 했었다. 물론 야당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깐다.
그래서 항상 두려움이 있다. 왜? 그럴만한 힘이 있으니까. 기득권이란 그럴 힘이 있기에 기득권이다. 경찰을 움직이고 검찰을 움직이고 법원을 움직이고 언론을 움직이고, 여론도 움직일 수 있다. 아무리 민주화된 사회라 할지라도 바로 그런 권력을 상대로 두려움을 한 구석에 묻고 비판을 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유럽의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런 점에 대해서까지 사람들은 항상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누구나 두려움없이 정부에 할 말은 할 수 있도록.
반면 연예인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이 경찰을 움직일 수 있는가. 법원을 움직일 수 있는가.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개인을 위력으로 억압할 수 있는가.
내가 연예인에 대한 비판을 쓰면서 두려워해야 할 두 가지는, 한 가지는 그 팬의 비난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된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법적으로 고소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다수가 되어 버리면 의미가 없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떼거지로 모여 욕하고 비난하는데 그걸 누가 뭐라는가. 그 팬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이 그보다 더 독한 비난들을 쏟아낸다면 연예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최진실이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연예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잠시의 침체기가 있었다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던 연예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최진실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이란 무엇이 있었던가.
하긴 그래도 그런 선택마저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묻고 싶다. 최진실은 과연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 법에 호소하려 했다면 문제는 더 커졌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녀는 더 큰 상처를 받아야 했겠지. 타블로가 과연 왓비컴즈를 고소하지 않았어도 일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기회만 되면 물어뜯으려 드는 악의에 대해 연예인 자신이 더 잘 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입장에서 자신을 비난한다고 그 대중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는 부담도 있다. 자칫 일을 키우고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연예인이 어지간한 악플에도 비록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아파할지언정,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언정 침묵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과연 연예인이 기득권인가. 돈만 많다고 기득권이면 김종익씨도 기득권이다. 그래도 작지만 한 기업의 오너였다. 그러나 그는 권력의 사찰 앞에 무력하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야 했다. 인기가 있다고 기득권이면 조선시대 광대도 기득권이었을 것이다. 솜씨 좋은 광대는 양반들도 다투어 불러 구경하고 했었으니.
물론 알고 있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그러는 것이다.
하도 하는 말이 독하고 심하길래 무어라 몇 마디 해 봤다.
"왜 나를 괴롭히고 그러느냐?"
"말도 못하느냐?"
"너무 심하지 않느냐?"
그들은 결코 자신들에 대한 어떤 비판에 대해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적 사안에 대해 발언하면서 무려 300개가 넘는 악플이 달리고 하는 경험이란 그들에게는 전혀 남의 일이다. 그런 것을 감수해가며 정치적인 의사를 표명한다는 각오라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오죽하면 연예인 자신이 자신에 대한 루머나 비난에 대해 억울함만 토로해도 그들은 하나가 되어 반응한다.
"그런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서야 되겠느냐?"
"안티도 팬이다."
"근거없이 그런 말을 했겠느냐."
"연예인이 행실을 바로해야 한다."
단지 눈물을 흘렸을 뿐인데도 한 여자아이돌을 향해 쏟아졌던 비난들이다. 그렇게 눈물조차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그들이 저리 당당히 연예인에 대한 비난을 쏟아낼 수 있는 이유, 연예인 자신만이 아닌 그 가족에 대해서까지 악의를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이유, 다른 게 있겠는가?
어차피 다수다. 익명이다. 실명의 공간에서도 다수에 가려지면 익명이 된다. 책임은 1/n이 되고, 관심 역시 1/n이 된다. 반면 공격의 위력은 n제곱이 된다. 아물리 해도 연예인이란 개인이며 그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것은 불특정다수이니. 내가 그래서 블로그에서 리플도 읽지 않는 것 아닌가. 하물며 나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의 악의를 상대해야 할 것이면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자기 안으로 끝없이 들어가 숨는 것 뿐.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더 저들을 극성인 것이고.
과연 또 저 가운데 연예인 누군가 고소해서 경찰서에 잡혀가게 되었을 때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나는 단지 할 말을 했을 뿐이다!"
외쳐 말할 수 있는 이들이란 몇이나 있을까. 또 드물게 고소해서 경찰서에 불려간 악플러들의 모습이란 그렇게 한심할 정도로 비굴하더라는 것이다.
이 역시 웃기는 거다.
"연예인은 기득권이다. 그러니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면 경찰서 불려가서 울며짜며 용서를 구걸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정당하다면. 그렇게 당당하다면. 그렇게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면.
오히려 기득권이라면 연예인의 작은 변명에도, 아주 작은 항의에도 하나로 단합해 악의로 돌려주고 마는 네티즌이 아닌가. 한 개인에게 네티즌이라는 집단의 힘으로 태연하게 안전한 곳에서 비난을 퍼부어대는 그들이 아닌가. 연예인이 반항하지 못하게 해놓고서는 단순히 악의만을 일방적으로 배설하는. 그리고 그에 대해 전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는.
과연 그동안의 자신들의 섣부른 정의에 의해 발생한 피해와 희생자들에 대해 그들이 어떤 책임을 졌는가 모르겠다. 최진실씨 사건에서 최진실씨에 악의를 퍼붓던 자들은 자살했는가. 아니면 최소한 최진실씨의 무덤 앞에 무릎꿇고 사죄라도 했는가.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는. 그래도 태연하고 멀쩡할 수 있는 이들이 기득권이 아니면 누가 기득권인가. 단지 부와 명성이 그만 못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인.
맞다. 열폭. 네티즌님이시다. 대중님이시다. 훌륭하시다. 위대하시다. 그런데 연예인 따위가 저러고 있으니.
"연예인이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 아닐까. 연예인이 버는 돈이 부럽고 억울하다. 연예인이 누리는 인기가 질투나고 화가 난다. 그래서 물어뜯고 진흙탕에 굴려보자. 힘이 있으니까. 다수라는 힘이.
내가 어지간한 사안에 대해 네티즌의 편이 아닌 연예인의 편에 서는 것도 그래서다. 바로 그들이 기득권이니까. 힘이니까. 권력이니까.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면 네티즌이지 한 개인에 불과한 연예인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을 감시하고 비판하듯 그래서 나는 네티즌을 비판한다. 아니 비난한다. 개티즌이라 부르며.
물론 그렇기 때문에 또 네티즌과 정부와의 싸움에 대해서는 네티즌 편이다. 아무리 그래도 네티즌이 정부보다 더한 기득권일 수는 없을 테니. 그럴 땐 나도 네티즌이다.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기득권이란 바로 정부이고 여당이고 권력일 터이므로. 그것이 나의 정의다. 약자의 편에서 강자와 싸운다.
하여튼 연예인이 기득권이라... 아마 머릿속에 상상하기로는 온갖 사치와 영화를 누리는 연예인에 대해 당당하게 저항하는 투사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겠지만 그저 내가 보기에는 열폭하는 찌질이일 뿐. 단지 네티즌이라는 집단의 힘 뒤에 숨어 호가호위하려는.
최소한 자기 이름은 걸어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한 비판도 감당할 수 있어야겠지. 책임도 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당당하게. 사과도. 인정도. 그도 못할 주제들이면... 웃는다.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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