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라임과 플로우 - 전통시가의 리듬에 대해...

까칠부 2010. 7. 16. 06:22

예전 타이거JK가 무릎팍 도사에 나와서 힙합의 라임에 대해 이야기하며 강호동인가가 '리 리 리자로 끝나는 말은'이라는 말끝맞추기 노래를 부르자 마치 신기하다는 듯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게 있었더라.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말인가. 원래 시라는 건 노래였다. 흔히 그저 시로서 외워 읊는 시조도 진양조로 길게 뽑아 부르던 노래였다.

 

"이화~~~~~에 월백~~~~~~ 하고~~"

 

흔히 어르신들이 쓰는 시조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만큼 곡조가 길게 늘어지기에 일이 하염없이 늘어진다는 뜻으로 쓰게 된 것이다.

 

그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시문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시경도 결국 노래였다. 유럽의 시문학도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모든 시는 음악으로서의 리듬감을 매우 중시 여기고 있었다. 노래 가사를 쓰려 해도 멜로디와 리듬에 맞춰 가사 안에 음악을 담아내야 하듯 원래의 시라는 것도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중국문화권의 한시의 경우 운율이다. 아래는 이백의 유명한 월하독작이라는 한시다.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擧盃邀明月(거배요명월)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月旣不解飮(월기불해음)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暫伴月將影(잠반월장영) 行樂須及春(행락수급춘)
我歌月排徊(아가월배회) 我舞影凌亂(아무영능란)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醉後各分散(취후각분산)
永結無情遊(영결무정유)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

 

- 이백 월하독작

 

당장 오른쪽의 두 번째 행의 마지막을 보면 ㄴ받침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 중국어로 - 특히 당나라 때 한자 발음으로 풀어쓰면 더 분명해질 텐데, 아무튼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배치된 음절로 인해 어떤 리드감이 주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1925년 발표된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마 거의 없을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역시 "오리다"라는 어미가 반복되며 시에 리듬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조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아마 그 대표적인 것이 시조가 아닐까.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냥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아다시피 시조는 3.4조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문장이 3음절 4음절로 일정한 리듬을 이루며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지는 두 음절임에도 3음절로, 춘심을은 세 음절임에도 4음절이 된다. 역시 노래인 탓이다.

 

가사문학은 이와는 달리 4.4조의 구성이다.

 

乾건坤곤이 閉폐塞야 白雪셜이  빗친 제,

사은니와 새도 긋쳐 잇다.

瀟쇼湘상 南남畔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옥樓루高고處쳐야 더욱 닐너 므리.

陽양春츈을 부쳐내여 님 겨신  쏘이고져.

茅모簷쳠 비쵠  玉옥樓누의 올리고져.

紅홍裳샹을 니믜고 翠취袖슈를 半반만 거더

日일暮모 脩슈竹듁의 헴가림도 하도 할샤.

댜 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靑쳥燈등 거른 겻 鈿뎐箜공篌후 노하 두고,

의나 님을 보려 밧고 비겨시니,

鴦앙衾금도 도 챨사 이 밤은 언제 샐고.

 

- 정철 사미인곡

 

이것은 우리말에서 영어의 악센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간단히 찹쌀떡 장수를 떠올리면 되겠다.

 

"메밀묵/사려/찹쌀떡"

 

조를 나눔으로써 그 안에서 악센트가 부여되고 그것이 리듬감을 만든다. 시조도 마찬가지다. 조를 나누어 악센트를 넣으면 그게 바로 시조를 부르는 것이 된다.

 

아마 그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예가 불경 독송이 아닐까.

 

"조견오온개공도 일체고액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따로 멜로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에 악센트를 넣는가에 따라 마치 노래처럼 리듬을 가지고 들려온다. 그리고 대개 그 악센트는 4.4조를 기본으로 한다. 불경만이 아니라 유가의 경전을 읽을 때도, 축문이며 제문을 읽을 때도 그렇게 리듬을 넣어 읽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아마 힙합에서 말하는 플로우겠지.

 

즉 힙합의 라임이나 플로우란 힙합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또한 영문학에서 비롯된 것이며, 거슬러 올라가면 시 자체가 노래이던 시절까지 올라간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북소리나 타악기 소리에 맞춰 외쳐 부르던 그들의 노래로부터도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현대의 음악이란 과거와는 달리 보다 정교한 리듬과 멜로디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에 더 이상 그것이 음악으로 들리지 않을 뿐.

 

우리나라에 "리 리 리자로 끝나는 말은" 같은 라임이 살아있는 민요가 있는 것이 신기하다, 가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이 시가문학이라는 것이다. 괜히 시가詩歌가 아니다. 시가의 가는 노래 가다. 단지 우리나라의 전통에 대해, 아시아의 전통에 대해 무지했을 뿐. 무지한 척 한 건가? 설마 이런 정도도 모를까?

 

원래는 타이거JK가 무릎팍도사에 나와 이 말을 했을 때 쓰고 싶었다. 하지만 보다시피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나는 블로그질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참 늦었는데... 생각해 보면 타이거JK가 몰라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예능이니 분위기를 띄우려 그런 것인 듯. 하긴 중학교 수준이면 조니 운이니 하는 건 다 배우니까.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 알아두면 좋겠다. 물론 힙합의 라임과 플로우는 힙합 나름의 장르적 특성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무작정 기존의 시가에 나타나는 운율과 대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기본적으로 이런 게 있다더라. 아마 다들 아는 내용일 테지만 말이다. 별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