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표절에 적대적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표절로 인해 더 나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더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표절은 참 쉽다. 노력도 시간도 돈도 덜 든다. 그만큼 편하게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표절이 허용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쉽고 편한 수단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너도나도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복제의 보편화...
80년대 무협시장이 그래서 망했다. 대본소 만화들이 그러다가 제살깎아먹기를 하고 지금 저 모양으로 쪼그라들이었다. 가능성이 축소된 만큼 기대할 것이 없어지고 더 다양한 나은 중국의 무협과 일본의 만화가 들어오면서 허접한 3류로 치부되었던 때문이었다. 고사였다.
좋은 무협작가들 많았다. 좋은 만화가 많았다. 대본소 시절에도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보이던 좋은 작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새 대세가 되어 버린 베끼기 속에 그에 편승하지 못한 이들은 어느새 속도에서 밀려 도태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쉽고 편하게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많은 작가들은 그렇게 자신만의 장점을 내버린 채 그에 편승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어딜 봐도 별 차이가 없는 독창성도 개성도 완성도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것들만이 넘쳐나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런 건 보기 싫었다.
음악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 번 표절해서 대박을 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표절의 유혹을 견디기가 더 힘들어진다. 옆에서 표절로 대박친 음악인을 보고 나면 자신도 표절을 하고 싶다는 유혹을 더 강하게 받게 된다. 아마 그들은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개성적인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이들일 터다. 그런데도 표절로 인한 성공의 유혹에 넘어가 그것을 포기하게 된다면 누구 손해일까?
원작자의 피해야 민사적으로 해결하면 된다. 물론 그런 부분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 보다 강력한 징벌적 배상과 표절검증과정에서의 원작자의 부담을 줄어주는 등의 장치를 통해 보다 쉽게 원작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나아가 도작이라는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강력한 징벌을 가하는 확실한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표절을 원작자와 도작자 사이의 민사문제로 한정짓는 작업이 지금도 강력하게 요구된다. 네티즌이 나서서 떠들며 누구 매장시켜라, 누구 죽여라 할 게 아니라 원작자가 직접 나서서 법에 의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도작자가 다시는 그럴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응징하는 장치다.
어쨌거나 도작으로 인한 원작자의 피해야 원작자의 민사적인 문제다. 그건 원작자와 도작자 사이에 알아서 해결할 문제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표절로 인해 정작 도작자가 표절의 유혹을 받지 않았을 경우 어쩌면 그가 들려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원천적으로 부정당한 대중의 입장이란 어떠한가. 더 나은, 더 개성적인, 더 독창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었을 터임에도 고만고만한 표절곡들만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란.
내가 표절에 대해 엄격하면서도 무단샘플링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 있는 이유다. 샘플링이란 창작의 한 방식이다. 그것이 무단이고 아니고는 상관없다. 무단이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작자와 민사적으로 해결할 문제다. 샘플링이 하나의 창작 기법이라면 무단이든 아니든간에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나온 결과물이 얼마나 만족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만족할만한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수준높은 결과물이 나왔는가.
이미 히트한 좋은 멜로디, 좋은 사운드, 좋은 비트만 가져다 붙여서 만들면 그걸로 그만이다. 그럴 거면 샘플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의미가 없겠지. 기존의 멜로디, 기존의 사운드, 기존의 비트를 가지고서 그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더 듣기 좋게 만드는가. 만일 그렇지 못할 것이면 그는 무능한 것이고 들을 가치가 없는 것이다.
하긴 문제라면 샘플링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할 경우, 그리고 힙합과 같이 샘플링에 의해 지탱되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자칫 샘플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대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일 게다. 아마 그것이 이번 타블로의 표절논란 및 힙합씬에 대한 표절논란의 이유가 되고 있을 테지만. 오리지날 곡인 줄 알았는데 샘플링이더라. 그런 경우는 대단한 배신감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이전의 다른 지면을 통해 샘플링 사실을 밝혔다 하더라도.
하지만 어쨌든 힙합이란 샘플링이라는 작법 위에 존재하는 장르이고, 힙합의 많은 음악들이 샘플링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런 전제에 동의한다면 표절과 무단샘플링을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다. 결국은 원작자와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느냐, 아니냐,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민사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지 않았으니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건 옳다. 그것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과연 표절과 같은가. 내 입장에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표절은 표절, 무단샘플링은 무단샘플링.
즉 표절은 새로운 가능성을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대중의 더 나은 음악을 들을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로써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면, 무단 샘플링이란 샘플링이라는 작법을 전제하므로 단지 원작자와의 민사적인 저작권 문제만이 남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런 때는 원작자에게 메일을 보내 무단샘플링 사실을 알리고 저작권 문제를 클리어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된다. 아니면 샘플링한 주체에 대해 압력을 가해 그것을 해결하도록 하거나. 표절이니 매장하자. 그건 좀...
어쩌면 한국사회의 보편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인터넷상의 표절에 대한 과잉된 증오에 대해서도. 그러나 원래 저작권이라는 자체가 정립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고, 문명의 발전이란 바로 그런 표절에 의해 이루어져 왔더란 것이다.
원래 창작이라는 자체가 모방과 답습 위에 이루어진다. 먼저 베끼고 그러면서 그 원리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자기만의 가능성을 만들어간다. 단지 여전히 모방과 답습인 상태로 그것들을 시장에 내놓았을 경우 이미 자기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이들과 비교될 것이기에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미숙한 것이고 수준이 낮은 것이다. 경멸과 조롱의 대상일 뿐 딱히 위협이 되는 악은 아니다. 말했듯 그로 인해 다른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거나 위축되는 것이 문제라면 더 큰 문제일까. 저작권이야 현대자본의 이해가 만들어낸 법적 개념으로 당사자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일 테고 말이다.
표절을 하더라도 그로 인해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표절을 했는데 그 결과물이 독창적이고 훌륭한 것이어서 원작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면. 여전히 민사적인 저작권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것을 단순히 표절이라 비웃어야만 할까.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수준이 낮거나 더 나은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경멸의 대상이 되어야겠지.
도덕적인 엄밀함보다는 창작자로서의 더 훌륭한 작품을. 그의 개성과 독창성이 드러난 어떤 결과물을. 그것이야 말로 창작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도덕적 의무일 테니까. 그것을 못했으니 표절이 비난받는 것이고. 그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고.
기본 전제가 다른 만큼 결론도 다를 수밖에. 표절이란 있을 수 없는 행위라는 입장이 있다면, 표절이란 때로 창작의 한 수단일 수 있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치니 그 무능함과 저열함에 비웃음을 보낼 뿐. 원작자가 표절임을 확인했음에도 버티는 것은 또 별개다. 원작자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데 거기에 버티며 오히려 원작자를 조롱한다. 그건 이미 인간으로서의 자질의 문제인 거다. 그건 또 별개.
아무튼 표절로 인해 더 이상 새로운 창작물이 나오지 않고, 그래서 더 이상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참 민폐라는 거다. 더 나은, 더 독창적인 작품들이 나오지도 않고, 그런 작품들이 제대로 대접도 못 받는다는 것은. 그런 작가들이 제대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 역시.
말하지만 원작자의 권리란 결국 민사적으로 보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적재산권이라 형사적인 개념이 아닌 민사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배타적인 권리이며 개인의 문제다. 그것으로 표절에 대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작권법 자체를 개정할 수밖에 없다. 원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도작자에 대해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징벌적으로 가해지는 배상제도. 이를테면 징벌적 배상제도라 할 터다.
즉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형사적으로 처벌하고 그런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표절이라는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외면함으로써 당사자를 매장하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그러나 그 이상의 민사적 문제를 형사적으로, 개인적 문제를 사회적으로 징벌하려 한다는 것은...
하긴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니 이렇게까지 여론이 들끓는 것이기도 할 테지만 말이다. 제대로 법이, 사회가, 문화계가 그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으면. 증오가 그래서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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