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Rock과 고음보컬... 고음이 가창력의 전부가 되기까지...

까칠부 2010. 7. 22. 10:51

아직도 어디 사람들 모이거나 하는 자리에 가면 가장 많이 흔히 부르는 노래가 60년대 70년대 가요들이다. 트로트거나, 혹은 포크이거나.

 

일단 부르기가 쉽다. 어지간하면 대충은 따라부른다. 그리 높지도 않고 그리 빠르지도 않다. 그래서 한껏 감정을 실어 분위기 잡고 부르기도 좋다.

 

원래 70년대까지도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하는 것은 음정 박자 제대로 맞고, 노래의 맛을 얼마나 잘 살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음역이 넓으면 더 많은 다양한 음악을 보다 수월하게 소화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굳이 음역에 대한 요구가 크지 않았다. 그를 위한 기술 역시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변화는 70년대 Rock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수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Rock은 지극히 주관적인 장르다. 개인이고 1인칭이다. 상대 없이 1인칭으로 자기 이야기를 전하자면 어찌해야겠는가. 소리질러야 한다. 듣도록 억지로 소리를 질러 상대의 귀에 우겨넣을 수 있어야 한다.

 

신중현으로부터 시작된 변화는 7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양식화되기 시작했다. 트로트고고만도 이전의 트로트보다 고음부가 강조되었다. 조용필이나 윤수일이나 고음에서 내지르는 파트가 매우 중요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80년대 락의 전성기.

 

유현상의 샤우팅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이렇게도 노래를 부를 수 있구나. 임재범이 있엇다. 김종서가 있었다. 김성헌가 팝스런 스타일로 평가는 낮았지만 이승철도 있었다. 하나같이 이제까지 보기 드물던 고음보컬들이었다. 당시까지 한국 록이 가지고 있던 한계이던 고음보컬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것이었다. 특히 김종서는 다른 것 없이 오로지 고음 하나로 인정받던 보컬이었다. 별명이 그래서 저음불가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그들이 들려주는 한 차원 다른 고음의 매력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90년대 이덕진과 신성우, 그리고 고음병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김경호가 데뷔했다. 사람들은 점차 생각하게 되었다. 그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 것이 노래를 잘 하는 것이구나. 너도 나도 두성에 샤우팅을 따라하기 시작하고.

 

지금도 어디나 가면 누가 얼마나 노래를 잘 하는가를 물을 때, 그의 목소리가 어디까지 올라가는가를 이야기한다. 몇 옥타브까지 올라가는가. 몇 옥타브까지 소화하는가. 그래서 그 노래를 소화하기 위해 키를 낮추거나 하면 굴욕이 된다. 얘는 노래를 못 부른다. 고음이 올라가지 않으니 실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어디를 가더라도 고음이란 가창력의 한 부분이지 전부는 아닌 것이다. 고음이 얼마나 더 높이 힘있게 올라가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목소리에 얼마나 노래의 맛을 실어내느냐. 특히 R&B나 소울, 블루스 등은 고음보다 그같은 맛을 더 중요시 여기는 장르다. 물론 나도 그 세대라 R&B특유의 막힌 듯한 그런 기교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후련하게 내지르는 게 나도 좋다. 하지만 그 만큼이나 그리 높이 올라가지는 않아도 질박하게 꺾던 옛트로트를 좋아한다. 그런 노래들은 나도 쉽게 부를 수 있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또 문제가 어느샌가 고음보컬이 중요해지면서 대중음악들도 전반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부르기가 쉽지 않다. 일단 음역이 받쳐주지 않는다. 60년대 70년대 가요는 어지간히 음역이 안 되어도 적당히 따라부를 수 있는데 이건 도대체 따라가기가 힘들다.

 

대중음악이 오히려 대중과 유리되는 결과다. 항상 흥얼거리며 따라부르던 대중의 노래가 특별한 어떤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단지 감상하는 용의 음악이 되어 버렸달까? 락이 대중과 유리된 또 하나의 이유일 테지만. 점차 대중음악이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게 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시대를 공감하던 대중음악에서 단지 감상용의 객체로써.

 

아이돌 음악이 환영받는 이유도 어쩌면 그것일 것이다. 지나치게 기교적이고 양식화된 대중음악에서 아이돌 음악이란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다. 쉽게 들리고 쉽게 다가선다. 후크송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만큼 가깝다.

 

아마 지금도 아이돌을 두고 가창력 논란이 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것일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정서는 80년대 정립된 것이다. 고음보컬에 대한 선호도 그것. 노래가 얼마나 좋은가도 노래가 얼마나 부르기 어려운가. 부르기 어려운 노래를 부르기 어렵게 부르는 것이 노래를 잘한다. 그에 비하면 아이돌이란 참 쉽게도 노래를 부르는 존재이니. 쉬운 노래를 쉽게. 이를테면 가치의 충돌이랄까.

 

앞으로 이대로 상당기간 아이돌의 시대가 이어진다면 어쩌면 고음보컬의 시대도 끝나지 않을까. 그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표현력. 퍼포먼스와 연기와 표정, 코디 등을 아우르는 음악에 대한 외적인 표현이다. 노래는 당연히 따라오고. 과연...

 

하여튼 80년대란 그렇게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중요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90년대의 대중음악은 80년대 결정지어졌고, 90년대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그리고 구속. 그런 시절을 어렸지만 실시간으로 보고 지났다는 사실이 지금으로서는 흐뭇하달까.

 

그렇다는 것이다. 얼마나 더 높이 올라가는가. 얼마나 더 기술적으로 뛰어난가.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쩌면 그리로 돌아갈 수도 있고. 아직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