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놀러와를 그리 자주 챙겨보는 편은 아니다. 원래 예능이라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데다 요즘 예능을 보고 난 뒤로도 토크 버라이어티는 조금 가려서 보는 터라. 관심이 가는 게스트가 나오면 그때서나 일부러 찾아 보는 정도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놀러와는 사람을 기대하게 하는 뭔가가 있는데.
세상에나 송해란다. 이상벽이란다. 이상용이란다. 솔직히 이상벽 말고 허참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원래 허참의 본명이 이상용이었던가. 선배 가운데 동명이인이 있어서 예명을 허참으로 했다고. 하긴 허참이 1949년생이니 1947년생인 이상벽보다도 두 살 어리다. 연차가 조금 고려... 라기에는 그렇더라도 허참 역시 레전드라 할 만할 텐데. 쇼쇼쇼며 한때 최장수오락프로그램이었던 가족오락관까지.
어쨌거나 그리운 이름들이다. 송해야 요즘도 전국노래자랑을 통해서 본다. 아침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입장에서 이상벽이야 거리가 있는 이름이지만 이상용은 요즘 뭐하는지. 내게 있어 이상용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방송 도중에도 말했던 모이자 노래하자.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모이자 노래하자~~ 모이자 노래하자~~
아마 하희라도 여기 출연했던가 했을 것이다. 강수연은 모르겠고 당시 KBS 어린이합창단 가운데 무척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하나 있어 그게 하희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이자 노래하자에서부터 출연했던가. 아니면 그 다음 다른 어린이프로그램이었던가. 그야말로 어린이 버라이어티였을 텐데.
참 놀 줄 아는 MC였다. 분위기를 쥐락펴락 아이들이면 아이들과 함께 눈높이를 맞춰 놀아줄 줄 알았다. 설마 운동을 하다가 학교 졸업하고 외판원하던 이일 줄이야. 따로 코미디나 진행을 했던 것이 아니라 어느날 문득 관상보는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방송국 앞을 비질해서 들어간 특채였다니.
당시니까 가능한 것이다. 그저 재미있어 보이고 흥미가 동하니까 무작정 출연시킬 수 있는 것도 아직 모든 것이 체계가 잡혀 있지 않던 시절이니까. 그럼에도 어떻게든 성공하기 위해 운동하는 후배들을 박수부대로 동원하는 그런 치열함은 이상용이 어떻게 오늘에 오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치사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지와 집요함이 있었기에 그 오랜 세월을 MC로서 버텨오지 않았던가.
아마 누구나 그럴 것이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문제지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것을 잡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할까. 개인적인 가정사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지만 그 자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자면 이대로 영영 잘리도록 해달라 기도하는 정도야 애교일 것이다. 직접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렇게 주어진 기회에 대해 철저히 자기 것으로 만든 것도 이상용의 능력이었을 테고. 그리고 이후 여러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뽀빠이라고 하는 별명과 더불어 최고의 MC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테니. 특히 국군 관련한 행사에서 뽀빠이 이상은 없다 할 정도다. 벌써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송해는 사실 MC로서는 어색하다. 내가 기억하는 송해는 어디까지나 코미디언 송해다. 막둥이였다. 지금이야 원로지만 당시 구봉서, 이기동, 배삼룡이 방송을 누빌 때 송해는 한쪽 구석에 겨우 자리를 차지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크게 드러나게 웃기는 것도 아니고 확실하게 캐릭터가 잡힌 것도 아니고.
다만 구수함이 있었다. 특유의 목소리에서 오는 정감어린 느낌이 있었다. 콩트가 주를 이루던 시대 송해에게는 그에 맞는 자리가 있었다. 다만 송해라 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사람이었던가는 - 그의 다재다능함을 느낀 것은 전국노래자랑에서부터.
악극당 출신 코미디언들이 꽤 된다. 송해도 그렇고, 김희갑, 구봉서, 김영하, 아마 송해 연배에서는 코미디언이라 하면 공채보다는 악극단 출신이 많았을 것이다. 악극단이라 하면 송해의 말마따나 다재다능해야 했다. 노래도 해야 했고, 연기도 해야 했고, 웃기기도 해야 했고, 진행도 해야 했다. 어디 빈 자리가 생기면 바로 없는 인원에 땜빵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악극단 출신 가운데 다재다능한 이들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연기가 되었다. 단지 타고난 순발력과 재치로 웃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직접 대본을 쓰고 그것을 연기할 줄 알았다. 노래도 하나같이 잘 했고, 악기도 다룰 줄 알았다. 기본은 역시 코미디였지만, 그래서 당시 코미디언들이 보여주는 코미디극이란 매우 탄탄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연기 도중 웃음을 참지 못해 터뜨린다? 그런 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건 개그맨 시대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 거의 정극에 준하는 탄탄함이 있던 코미디극이었다.
다만 그런 코미디언시절에는 워낙 대단하던 선배나 동료들이 많아 빛을 보지 못하다가 비로소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제대로 그 타고난 실력을 발휘하게 되었으니, 송해야 말로 대기만성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가진 바 실력이야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더라도 인정받기는 조금 늦었으니.
아, 왜 이상용, 송해라 하는가. 이상용과 송해면 뒤에 선생님이든 다른 칭호를 붙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상용이고 송해였다는 것이다. 뽀빠이 이상용이고 코미디언 송해였다. 다른 호칭은 없었다. 내 나름의 친근함의 표현이다. 당시 나를 울고 웃게 만들던 이들에 대한.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이상용은 이상용이고 송해는 송해가 아닐까. 배삼룡은 배삼룡이고 구봉서는 구봉서이듯.
정말 의미깊은 시간이었다. 참 오랜 시간이다. 세 사람의 방송활동 경력을 모두 더하니 130년이 넘는다던가. 그런 시간을 다시 끄집어내어 가장 인기 있는 토크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은. 한참 후배로써 역시나 최고의 MC로 불리우는 유재석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선배들을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그런 신구세대의 만남이라는 것이. 아름답고 훈훈하고. 이런 시간들이 자주 있었으면.
이런 시간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원로와 신진이 만나고, 중견과 신인이 만나고, 원로와 또 중견이 만나 어우러지고. 너무 세대단절이 심하다. 과거의 지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 과연 저들 없이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가. 우리 없이 지금의 다음 세대들이 있을 수 있을까.
의미깊었고 보람이 있었다. 무엇보다 반갑고 그리웠다. 뽀빠이 이상용. 송해. 이상벽은 좀 덜 되었다는 느낌이라. 이상벽이 허참보다도 두 살이나 많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송해가 노래를 부를 때 옆에서 같이 춤을 추던 이하늘과 길과. 그리 정겹고 즐거워 보였다. 그런 게 선배와 어울린다는 것일 텐데. 좋았다.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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