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영웅호걸에 대해 들었을 때 뭐 이런 막장이 다 있는가 싶었다. 출연하기로 되어 있던 니콜이 걱정되었다. 아무리 인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연예인에게, 그것도 연예인에게 그 인기도를 측정해서 서열을 정하고 팀을 나누어 게임을 하겠다니.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영웅호걸을 보며 전혀 부담없이 유쾌하게 웃고 있다. 즐겁지 아니한가. 전혀 음습함이 없다. 어색함도 없다. 거리낌도 없다. 출연자들 자신부터가 저리 즐거우니.
그러고 보면 멤버 구성부터가 적절하다. 노사연이 대학가요제로 데뷔한 것이 1978년, 아마 MC를 제외하고 가장 나이가 많은 이조차 이보다는 어릴 것이다. 아무리 인기가 있고 잘나가고 성격이 강해도 노사연 앞에 감히 목소리조차 크게 높이기 어려울 것이다. 확실한 중심이 되어 준다.
여기에 가장 어린 지연과 아이유, 그보다 두 살 많을 뿐인 어눌한 니콜, 유인나며, 홍수아며, 박가희며 목소리를 높이기엔 A급이라기에 손색이 있다. 서인영과 나르샤도 마찬가지다. 신봉선과 정가은은 예능인으로써 가벼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즉 나이차이가 있는데다 그다지 인기에 민감할만한 레벨이 아니다 보니 인기도를 측정해 순위를 정한다고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하지 않는다. 상처야 없겠냐만 어느새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낙천이 있다. 그게 첫째.
그리고 그런 안정된 구도 위에 만들어가는 관계라는 게 있다.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이 나이 많은 후배 박가희와 나이 어린 선배 서인영의 갈등관계. 덕분에 이진과 나르샤는 박가희와 또래로서 소외되었다. 아마 이들 사이에도 무언가 새로이 관계가 구축되지 않을까. 지연과 아이유는 동갑내기 친구로 그러나 약간의 경쟁심이, 니콜은 여기서 동떨어져 말귀를 못알아듣는 엉뚱녀로, 정가은과 신봉선 사이에도 경쟁심이 보이고, 특히 노사연은 젊고 예쁜 홍수아와 유인나와 노골적으로 톰과 제리의 천적관계를 만들고 있다.
덕분에 캐릭터도 어느새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해서, 특히 전문용어로 천연에 가까운 엉뚱발랄한 유인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다지 말을 잘하지도, 그렇다고 몸개그가 특출난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분위기를 자기에게로 이끄는 그런 매력이 있다. 물론 그것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그저 맥을 끊을 뿐이지만 노사연이며 신봉선이며 정가은이며 서인영이며 그것을 받아 살릴 줄 안다. 이휘재와 노홍철도 마찬가지. 어제는 지연이 남들 다 떡볶이를 만드는데 혼자 이것저것 주워먹으며 짓궂은 장난도 치는 애교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아이유는 특유의 순진함을 표정으로 드러내며 막내다운 귀여움을 내보이고 있었다. 뭘 해도 어설픈 정가운과 모태다혈질 서인영, 불끈하는 박가희, 야구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는 의외로 인기없는 홍수아, 그런 관계를 통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 캐릭터들이 다시 관계를 통해 극대화된다.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수다가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 말을 꺼내면 반드시 받는 누군가가 있다. 더 웃겨서가 아니다. 왁자하게 떠드는 가운데 드러나는 그런 자연스럼 모습들이 내가 지금 아이돌을, 여자연예인들을, 그 전에 여자들이 모여 노는 것을 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접시는 커녕 아파트가 무너지고 어제 타고 있던 경비정이 가라앉을 정도로 소란스럽고 유쾌한. 그 중심에 노사연이 있고, 그 주변에 지연과 아이유가 있고, 그 사이에 유인나와 서인영과 박가희가 있고, 그것을 이끄는 이휘재와 노홍철이 있고.
확실히 포맷이며 소재 자체는 "청춘불패"가 더 좋다. 그냥 단순히 말로써 설명했을 때 척 듣기에도 청춘불패 쪽이 더 재미있어 보이고 가치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정작 프로그램 자체의 재미로만 보았을 때는 "영웅호걸"이 한 수, 아니 두어 수 위다.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벌써 시작한지 1년이 가까워 오는 "청춘불패보" 더 많은 가능성과 더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떻게?
그대로다. 이휘재와 노홍철이라는 확실한 MC가 있다. 왕언니 노사연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개성을 지닌 멤버들이 포진해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돌만 모인 청춘불패에 비해 서로 영역이 겹치는 것도 적고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 서인영과 정가은 같은 확실하게 예능을 보여줄 수 있는 멤버도 있다. 적당히 망가져주고 웃겨줄 수 있는 멤버들과 더불어 단지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멤버까지. 그리고 그런 점들이 이휘재와 노홍철이라는 나름 경험이 많은 MC들을 통해 일관된 이야기로 적절히 가공된다. 산만하게 흩어져 중구난방 떠들 뿐인 "청춘불패"에 비해 "영웅호걸"은 확실히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있다.
김신영에 비해 신봉선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개인적으로 김신영이 신봉선보다 더 감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웃긴다. 그러나 "영웅호걸"에서 신봉선은 마음껏 웃길 수 없다. 진행따위 신경쓰지 않고 그저 마음껏 망가지며 비호감까지 자초해가며 웃길 수 있다. 그에 비하면 김신영은 예능감 없는 일곱 아이돌을 이끌고 가야 하는 부담마저 더해지며 플레이 자체가 무척 위축되어 있는 중이다. 예능실미도도 김신영 혼자 했다면 그리 웃기고 재미있었을 테지만 어설프게 멤버들을 끌어들임으로써 괜한 비호감만 되고 있다. 김신영에게도 확실한 MC가 있어서 MC로서의 진행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면. 그랬다면 굳이 김신영 스타일로 "청춘불패"가 고착되어 버릴 일도 없었을 테고, 지금보다는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재미가 있었을 테지.
확실히 드라마든 영화든 예능이든 스토리보다는 텔링이랄까. 아무리 소재가 좋고 포맷이 좋고 구성이 좋아도 그것을 풀어가는 디테일함에 그 재미란 결정되는 것이다. 하긴 출발부터도 다르기는 했다. 오로지 아이돌이었던 청춘불패에 대해 벤치마킹이라도 한 듯 다양한 영령대의 다양한 개성으로 포진시킨 "영웅호걸"과.
청춘불패에서 기대하던 것을 이제 와서 영웅호걸을 통해 보게 될 줄이야. 그리 주장하면서도 비웃음당하고 말던 것들을 영웅호걸에서... 혹시 그런 이유로 시청율이 떨어지거나 폐지가 되지는 않을까. 내가 좋다고 하면 대개 그리 좋지 않다는 경우도 많아서. 내가 싫다 하면 반대다.
아무튼 정말 끊임없이 소소한 재미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바위 위에서 일광욕을 하던 아저씨를 돌려보내던 이진의 모습이나, 퀴즈게임에서 부진한 모습에 홍수아에 화를 내는 노사연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노사연의 분노를 몸으로 받던 홍수아, 떡볶이를 만들면서 벌어지는 자잘한 헤프닝들도.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친구처럼 가족처럼 끊임없이 떨어대는 수다들이. 저들은 이렇게 놀고 있구나.
재미있었다. 만일 그때 포맷에 대한 설명만 듣고 못 볼 프로그램이라 아예 외면했다면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을까. 오히려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만큼 더 재미있는 그런 느낌? 마음에 들었다. 사소한 부분만 조금 더 신경쓴다면 몇 배 재미있지 않을까. 초심을 잃지 말고 지금처럼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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