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도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의 애청자였다. 그야말로 데굴데굴 구르며 웃으며 들었던 기억이 있다. DJ DOC가 사고를 쳐도 그렇겠거니. 오히려 호쾌함을 느꼈달까?
우리나라 무협소설 보면 그렇게 마교가 멋드러지게 나온다. 원래 사邪와 마魔란 정正에 반대되는 악으로써 만들어진 개념이었다. 마교란 역시 그런 악의 결집체였다.
물론 김용부터가 마교에 대해 달리 묘사하고 있었다. 소오강호는 물론이고 의천도룡기의 마교란 확실히 흔히 생각하는 마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반문화적인 현상이라.
소오강호서도 보면 정파의 명숙이랄 수 있는 악불군이나 좌랭선이나 위선자로써 그려지고 있었다. 의천도룡기에서도 멸절사태나 소림, 개방 등이 보인 모습을 보면 편협하고 이기적인 정파의 전형이 이때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교란 바로 그러한 타락한 정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원래는 악이었을 테지만 선이, 정의가 타락했으니 오히려 그 자체가 타락하지 않은 어떤 순수함과 올곧음을 보인다.
바로 그것이 반문화다. 히피같은 것이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반발이다. 기존의 타락하고 모순된 선과 정의, 도덕, 윤리에 대한 반발로써 그것을 부정하고 비웃고 조롱하고자 하는 것이다. 차라리 신보다는 악마를. 차라리 질서보다는 혼란을. 차라리 올바름보다는 타락을. 그것은 이 세상을 뒤집고자 했던 문화적인 혁명이었다.
락이란 바로 그러한 반문화의 중심이었다. 락을 이은 반문화의 중심이 힙합이었다. 도대체 약물중독에, 폭행사건에, 여성편력에, 그 사고뭉치 골치덩어리들이 뭐가 좋다고 - 심지어 범죄자들에 대해서까지 그리 열광하고 환호하는가. 그만큼 현실이 불만스럽다는 것이다. 그를 둘러싼 현실의 가치가, 질서가, 그리 모순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락이 청년문화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도 락이 갖고 있던 어떤 주류적인 모습들 - 그러한 화려함이 반문화적인 요소로부터 이탈케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것도 들어가면 복잡하므로 대충 여기까지. 이건 다른 블로그에 한 번 정리해 써 보련다.
아무튼 조선시대 도적에 불과하던 홍길동과 장길산이 민중에게 영웅으로 떠받들려지더 것과 관계가 있다 하겠다. 유럽에서도 로빈 후드 같은 의적에 대한 추앙이 있었다. 셜록 홈즈가 문화적 영웅이라면 아르센 뤼팽은 반문화적 반영웅이다. 슈퍼맨 또한 영웅이며 배트맨이란 반영웅이다. 그리고 그 반영웅의 끝에 조커가 있다. 아마 미국 영웅물의 악당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이 바로 저 조커가 아닐까.
사람들이 그 말도 안되는 욕배설방송인 "김구라와 황봉알의 시사대담"에 김구라의 표현처럼 "간첩 접선하듯" 달라붙어 듣고 했던 것은 그와 같은 심리였다. 이 모순된 하늘 아래, 이 불합리로 가득한 이 세상 어느 곳에, 이렇게 후련하게 질서를 거스르며 말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DJ DOC도 마찬가지다. 질풍노도의 시기야 지났다지만 1990년대, 2000년대 초 참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분노는 쌓이고, 좌절과 절망은 증오를 낳고, 이것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그런 때 어디선가는 DJ DOC가 스스럼없이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리 소심해서 휴지 하나 버리는 것도 그리 미안하고 꺼려지는데.
이윤석의 말마따나 데스메탈이니 그쪽 강한 음악을 즐겨듣던 사람 가운데는 소심한 사람들이 많았다. 소심하고 나약하고. 그래서 질서에 거스르지 못하는. 그러나 기존의 질서가 갖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그에 불만스러워하는. 그런 사람들이 듣던 것이 락이고, 힙합이고, 그리고 김구라와 황봉알의 시사대담같은 반문화적인 방송이었다. 이후 김구라와 황봉알을 흉내내어 이런저런 방송들이 나왔어도 두 사람을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것은 그만큼 그 시절 그들이 절실했다는 뜻이리라. 아니 공중파에까지 진출해 유화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거친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것들이 표면으로 떠올랐다는 뜻일 테고.
타블로 사태도 그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인터넷이란 반문화의 공간이다. 인터넷이란 기존의 질서로부터 벗어난 네티즌이라는 해방된 개인의 공간이다.
타블로 사태의 진행을 보더라도 그렇다. 방송내용을 못 믿겠다. 프로필을 못 믿겠다. 졸업장도 못 믿겠다. NSC도 못 믿겠다. 성적증명서도 못 믿겠다. 스탠포드 대학의 발표도 못 믿겠다. 공식화된 모든 증거나 발표들은 못 믿겠다. 대신 그들이 믿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이 생산한 의혹들. 타블로가 기존의 질서에 속한 인물이라면 네티즌이란 바로 그 질서에 반발하는 반문화적인 존재다. 네티즌들이 그렇게 타블로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러한 반문화적인 정의에 대한 집착이라 할 것이다. 기존의 질서에 지고 싶지 않은.
아무튼 덕분에 요즘 무협을 보더라도 진짜 재미가 없는 것이 협이 없다. 원래 협이라는 자체도 반문화다. 그런데 그 반문화에 대한 반문화로 협을 아예 배제해 버렸다. 수십만이 죽어나가는데도 자기 가족만 챙기겠다. 세상이 전쟁에 휩싸여도 자기 가까운 사람들과만 행복하면 좋겠다.
반문화적인 성향이 강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에 모순이 누적되어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구성원들이 그러한 모순들에 대해 자각하고 있다는 뜻일 테고. 그렇게 모순이 일상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은 반문화적인 어떤 것을 추구하게 된다. 과거에는 김구라였고, DJ DOC였고, 지금은 인터넷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달까?
확실히 글을 쓰다 보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들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인터넷이 과연 반문화적인 공간이었구나. 그동안 안개처럼 모호하던 것이 이로써 분명해진다. 인터넷과 네티즌과 악플러와 인터넷 문화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현명해지는 느낌? 글쓰며 노는 보람이라 할 것이다.
처음에는 DJ DOC가 또 사고를 쳤다길래, 그러다가 김구라가 떠오르고, 쓰다 보니 타블로가 생각나고, 그리고 인터넷... 조금 더 다듬으면 꽤 재미있는 글이 나오겠다. 일단 여기는 이걸로 썼으니 다른 블로그에서. 워낙 길을 그렇게 들여서 여기서는 괜히 쓸데없이 진지해지면 잘 읽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다는 거다. 대충.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는 걸 그대로 쓰는 것보다 그것을 어떻게 압축해 쓰느냐가 가장 어렵다. 글이 난잡하다.
'문화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W, 아마존의 약속 - 저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 (0) | 2010.08.07 |
---|---|
W, 아이티의 아이들 - IMF 때 우리도 저랬었다! (0) | 2010.08.07 |
주관적인 비판이란... (0) | 2010.08.06 |
군대가 값싸게 여겨질 때... (0) | 2010.08.05 |
악플이란 - 비판과 비난의 경계... (0) | 2010.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