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란 바로 정의다. 제국이란 정의를 생산하여 수출함으로써 완성된다. 정의는 누구나 동경하는 바다. 그리고 쫓으려 하는 바다.
19세기 일본 역시 근대화라고 하는 정의로써 조선을 매혹시켰었다. 근대화를 위해 조선이 일본의 지배를 받아도 좋다고 여기는 조선인마저 있었을 정도였다.
앞선 문명이란 그 자체로 정의다. 그리고 앞선 문명이란 생존의 방법을 안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다.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 나아가 그들은 그 세계를 더욱 넓혀 세계에서도 가장 약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배려한다.
한국인들에 뿌리깊은 미국에 대한 막연한 호감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과, 그리고 해방 이후 전쟁을 거치면서 세워진 무수한 고아원과, 미국으로부터 전해진 구호물자. 마음의 빚은 그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감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란 그러한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최소한의 생존조차 힘들었을 터이니.
저 먼 아마존으로 열대우림을 헤치고 들어가 의술을 베푸는 이들. 결코 쉬운 길이 아님에도 그 오지까지 아무런 이익 없이 찾아가 자신이 가진 바를 베풀고 그들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이들. 선진국이 괜히 선진국이 아니다. 그들이 생산해낸 가치가 괜히 다른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완고하던 중국마저, 그리 적대적이던 아랍세계마저 그 영향 아래 어느새 놓이고 있다. 단지 군사력이 강하고 경제적으로 잘 살아서? 그 이전에 가치로써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기에.
물론 우리도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조선시대 조선의 선비들은 과연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 보편적인 원리를 고민했었다. 그것이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의 최대 과제였다. 그래서 소중화라 자처할 수 있었던 것일 테지만. 그러나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고 하자 우리나라 가난한 사람부터 돌보라던 어떤 정의로운 사람들을 기억한다. 북한주민에 대한 구호에조차 우리부터 잘 살고 보자. 그저 국경이라는 울타리 안에 꽁꽁 갇혀서.
하긴 그러니까 국적을 따지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려는 사람마저 있는 것이다. 국적이 다르니 군대 안 간다. 그것을 가지고 비난하고 욕하고 내몰려 들고. 그런 주제에 강대국이라.
항상 감사하는 바다. 우리가 아직 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에. 아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이상 더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저들이 강한 이유. 그것을 알지 못하는 한.
이공계의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말하지만 인문학의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인문학이란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것이라. 새삼 깨닫는다. 내가 사는 곳이 대한민국임을. 다행스럽게도.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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