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을 평소 세 개 쓴다. 일하면서. 이동하는 동안에. 그리고 집에서. 모두 가격대와 메이커와 스타일이 다르다. 일하면서 듣는 건 오픈형, 집에서 듣는 건 밀폐형에 풀사이즈, 이동하면서는 클립폰. 이동하면서 듣는 놈이 저 유명한 코시의 KSC75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진가를 발휘한다.
아무튼 그런데 헤드폰이 다르다 보니 듣는 음악도 완전히 다르다. 분명 같은 음악이다. 같은 음원이다. 차이가 없을 터다. 그런데 어떤 헤드폰으로 듣느냐에 따라 악기구성이며 심지어 보컬의 목소리마저 다르다. 이것이 과연 같은 음악인가? 기껏해야 1만원 차이도 안 나는 고만고만한 구성이었음에도.
그래서다. 더 비싼 헤드폰에 눈이 돌아간 것은. 처음에는 가볍게 한 8만원 선에서 생각해 보았다. 후보에 오른 것이 젠하이저 HD538. 예전 젠하이저 HD202를 쓰며 무척 만족도가 높았던 터라. 그런데 돌아다니다 보니 슈어SRH440에 대한 호평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괜찮다고. 실제 이런저런 벤치들을 찾아보니 상당히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고 하고.
그래서 다시 고민. SRH440인가 그 두 배 가격의 SRH840인가. 그 사이에 위치한 데논1000이나 오르바나 라이브로 할 것인가. 그런데 그 순간 예전 들은 지인의 조언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은 경계를 넘으면서부터다."
역시나 음향에 빠져 스스로 스피커며 앰프까지 자작한다는 선배였는데, 귀에 돈 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경계를 잃고 사람이 아니게 된다고. 다만 그 경계가 어디인가. 아마 심리적으로 저항감이 덜한 10만원대 초반과 부담스럽기 시작한 10만원대 중반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결정. SRH440. 소리가 깨끗하고 해상력이 좋다는 말에 끌렸다. 저음만 강한 헤드폰도 조금 질린 상태고.
아직 이 물건이 어떤 성능을 보여줄까는 모른다. KSC75의 경우도 사흘 정도 써 보니 그때부터 제대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라. 전에 쓰던 헤드폰도 단지 보컬만 듣자고 하면 상당한 소리를 들려주던 놈이었다. 해상력도 좋고. 박력도 좋고. 임피던스가 70옴이나 되던 놈이라 소리를 짱짱하게 키워 들어도 - 아니 그렇게 들어야 맛이 나던 놈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한 귀에도 볼륨을 한참 낮춰놓아도 그 이상의 박력과 해상력을 들려주는게 들리네. 고작 이런 정도의 차이로 10만원 가까운 돈을 더 들일 필요가 있는가 싶으면서도,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 더 나아질 소리를 생각한다면 기대가 되기도 하고.
일단은 만족이다. 그동안은 헤드폰이란 그저 소리만 들리면 된다고 그리 크게 투자를 안 했는데, 어쩌다 동시에 세 가지의 전혀 다른 스타일과 가격대의 헤드폰을 쓰다 보니 괜한 욕심만 생겨서. 물론 이 이상은 헤드폰에 투자할 생각이 없다. 이 이상 투자한다고 구분해 들을 귀도 아니다.
하여튼 듣고 있을수록 신기하기는 하다. 여기서 이런 소리가 숨어 있었구나. 아니 숨어 있었던 게 아니지. 단지 주목해 듣지 않았을 뿐. 역시 음악에서 사운드를 이야기하자면 먼저 괜찮은 헤드폰부터 갖추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볼륨을 최대로 해 놓고 들을 때 그 세밀한 소리들까지 제대로 들릴 수 있으니.
원래는 프로푸스로 듀얼코어나 쿼드코어로 업글할까 했는데 괜한 헤드폰에 관심이 생겨서. 전혀 다른 음악을 들려주는 세 대의 헤드폰에 더 비싼 헤드폰에 욕심이 생겨 버렸다. 과연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조금 더 이것저것 들어봐야겠지만. 지금 당장도 좋다. 이래서 사람들이 헤드폰에 돈을 쓴다. 좋다.
'대중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크릿 - 마돈나... (0) | 2010.08.12 |
---|---|
레인보우 - A (0) | 2010.08.12 |
바닐라루시 - 참 고급스러운 어색함... (0) | 2010.08.11 |
아이유 - 여자라서... (0) | 2010.08.11 |
라디오스타 - 김흥국의 노래... (0) | 2010.08.05 |